[문화] 소리를 그리다…김 크리스틴 선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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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김 크리스틴 선(46).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여기, 오선 위의 마음(Mind here with staff)’ 앞에 섰다. 오선지와 음표, 미국 수어를 그리며 보이지 않는 언어와 소리를 시각화하는 게 그의 장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청각 장애인의 경험은 메아리로 가득 차 있어요. 어딜 가든 통역사를 거쳐야 대화를 할 수 있죠. 메아리 자체가 제 삶이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사운드아티스트 김 크리스틴 선(46)이 미국 수어(ASL·American Sign Language)로 말했다. 수어 통역사나 자막을 통해서만 정보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청각장애인의 경험을 ‘메아리’라고 토로했다. ASL 통역사가 그의 말을 영어로 반복했고, 다시 한국어 통역을 거쳐 기자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 한글 문장으로 독자에게 전해지는 중이다. ‘메아리’를 증폭하는 데 삼중 통역이 필요했다.

소리를 시각화하는 미술가, 한국 미디어 첫 인터뷰 #7월 MMCA×LG OLED 시리즈로 국내 첫 개인전

올 여름 전시 준비를 위해 방한한 김 크리스틴 선을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만났다. 한국 미디어로는 첫 인터뷰다. 음표와 악상 기호, ASL을 활용한 목탄 드로잉이 대표작이다. 재치있고 아름다운 한편, 사회에서 쉽게 간과되곤 하는 배제와 차별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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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Attention)’의 지난해 미국 휘트니 미술관 전시 장면. 남편인 토마스 마더와의 협업작이다. 끄트머리가 딱딱한 풍선 손가락이 바위를 쿡쿡 찌르는 모습이다. “애들이 늘 어깨를 쿡쿡 찌르며 ‘엄마’ 하고 부르는 경험에서 나왔다”고 김 크리스틴 선은 설명했다. 사진 론 암스투츠/ 휘트니 미술관

그는 지난해 2~7월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2007~2014년 이 미술관에서 ASL 에듀케이터로 일했기에, 전시는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큰 원을 완성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말엔 영국의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 선정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사(Power 100)’ 34위에 올랐다. 첫 진입이자 한국계 미술인으로 가장 높은 순위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MMCA × LG OLED 시리즈’에 선정돼 오는 7월 대규모 설치작품을 내놓는다. 한국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9월에는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한다. 이제 그는 스스로 메아리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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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바젤 홍콩 '인카운터스' 섹션에 출품한 '일련의 메아리 덫(A String of Echo Traps)’ 앞에 선 김 크리스틴 선. 사진 퍼시픽 플레이스

독일 베를린에 사는 그는 홍콩과 미니애폴리스를 거쳐 서울에 왔다. 미국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센터에선 지난달 28일  ‘김 크리스틴 선: 날마다 밤마다’를 개막했다. 휘트니 미술관과 워커 아트센터의 공동 기획이다. 지난달 열린 아트 바젤 홍콩의 대형 설치 특별전인 ‘인카운터스(Encounters)’ 섹션엔 ‘일련의 메아리 덫(A String of Echo Traps)’을 전시했다. 홍콩의 한 쇼핑몰에 검은 정육면체를 설치, 상자 속에 갇힌 메아리를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작품을 설명하면서 그는 왼손을 펼치고 거기 오른손을 부딪쳐 튕겨나가게 해 보였다. ‘메아리’의 미국 수어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시스템이 공고해 좀처럼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경험해 온 ‘메아리 속 삶’에서 나아가 오늘날 온라인의 확증 편향 문제까지 포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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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뉴욕 로체스터 공대 졸업 당시의 김 크리스틴 선과 아버지 아이번, 어머니 케이, 언니 제인 김(오른쪽부터). 사진 김 크리스틴 선

소리는 그의 오랜 관심사다. 그러나 소리를 다루는 예술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김 크리스틴 선은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미국에 이민 간 부모의 둘째 딸이다. 농인인 두 딸을 위해 청인 부모는 수어를 배웠다.

그는 로체스터 공대 졸업 후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전업 작가로 사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환점은 2008년 베를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다. 도시 곳곳에서 사운드 아트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소리는 듣는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에 두려웠지만, 스스로 소리에 대한 권한을 되찾아오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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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유머가 돋보이는 ‘일상 상황에서의 청각 장애인의 분노 정도’(2018). 사진 양 하오/화이트 스페이스 베이징

잘 알려진 작품은 종이에 목탄으로 그리고 쓴 ‘청각 장애인의 분노(Deaf Rage)’ 시리즈다. 2018년 베이징에서 첫선을 보였고, 이듬해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공개됐다. 일상 상황, 여행하는 동안, 미술계에서, 미술관과 일할 때 등 각각의 상황에서 느끼는 분노를 정도에 따라 묘사했다. 미팅에 통역이 없거나 마치 농인이 그 자리에 없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 수어를 배우려 들지 않는 가족·친지 등이다. “커리어 초반부터 분노를 드러내면 ‘저 작가는 늘 화가 나 있구나’ 생각들 할까봐 오래 기다렸다.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 좀 앓았다. 그만큼 분노를 꾹꾹 누르고 살았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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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슈퍼볼에서 미국 국가를 수어로 부르는 김 크리스틴 선. 사진 FOX 중계화면 캡처

2020년 슈퍼볼(미국 미식축구 NFL 리그 결승전)에서 미국 국가를 수어로 부르도록 초청받았다. 아시아계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수어가 정확히 노래 가사와 맞아 떨어져 입체적인 안무처럼 보일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했지만 중계 카메라에는 거의 잡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칼럼으로 이때의 경험을 알리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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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탄 드로잉 ‘Mind touch touch touch touch touch’(2025) 앞에 선 김 크리스틴 선. 미국 수어는 손으로 얼굴의 어디를 건드리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손자국과 번짐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목탄 드로잉에서도 '건드림'은 중요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양인 여성이자 청각장애인, 그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지도 모른다. 독일 예술가 토마스 마더와 결혼해 베를린에서 두 살, 여덟 살 두 딸을 키우며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족 중 유일한 청각장애인인 그는 큰딸 루가 한 살 때 ‘루를 위한 일주일치 자장가’(2018)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자동으로 자장가가 재생되는 베이비 모니터(아기용 CCTV) 속 노래를 알 수 없어 아이가 있는 동료 예술가 7명에게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단어가 없을 것, 그리고 그가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저주파 사운드여야 할 것 등의 조건을 달았다. 이 작품은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소장한 첫 사운드 아트에요. 멋지지 않나요!”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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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1기이던 2019년 뉴욕의 전화박스에 붙인 포스터 ‘너를 사랑하기는 고단해(Loving You is Exhausting)’. 당시 베를린에 살면서 미국의 소식을 접하던 김 크리스틴 선은 미 대통령의 문장을 크게 확대한 배경 위에 '사랑해'의 수어가 사람처럼 찌푸린 듯한 모습의 공공미술을 내놓았다.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예요'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루나 박

인터뷰를 앞두고 그는 석 장짜리 ‘접근성 가이드’를 보내왔다. ASL에 대한 설명과 함께 “‘농인 작가 김 크리스틴 선’ ‘청각 손상자(hearing-impaired)’ 같은 표현은 지양해 달라”는 요구를 상세히 적었다.

5년쯤 전 베를린의 어느 큰 미술관 큐레이터가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45분 내내 농인의 삶에 대해서만 물었어요. 작품 얘기는 15분밖에 못했죠. 

가이드를 만든 배경이다.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백인들과 처음 대화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기사 제목에 ‘청각 장애인’이 너무 부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을까.

인생을 즐기는 예술가, 최선을 다한 부모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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