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페라 연출 데뷔하는 박종원 감독 “베르테르의 슬픔, 나만의 해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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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루하루가 도전인데요, 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영원한 제국’(1995)으로 시대의 얼굴을 스크린에 담아냈던 영화감독 박종원(66)이 오페라 연출로 데뷔하는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23~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올리는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의 ‘베르테르’ 연출을 맡았다. 영화감독이 국립오페라단 무대 연출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때 늦은 도전이 쑥스러우면서도 “관객을 만날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최상호 전임 단장에게서 3년 전쯤 제의를 받았어요. ‘봉준호 감독을 모시고 싶었는데…’라는 농담도 곁들여서요.(웃음) 꽤 진지한 제의에, 1주일을 고민했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원래 오페라를 좋아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국립오페라단 공연도 자주 보러 갔지만 제가 무대를 직접 연출한다는 건 상상만 한 일이었거든요.”
박 감독이 공개한 연출 노트와 악보. 그가 해석한 내용이 빼곡히 연필로 적혀있었다. 최민지 기자
박 감독은 “연주나 가창 실력이 없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출이 뭘까 고민한 끝에 인물의 심리 선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년 동안 ‘베르테르’ 작품을 공부하면서 한글·프랑스어 대본집으로 먼저 내러티브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악보와 가사를 보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한 인물의 심리를 최대한 자세히 배우들에게 설명했죠.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 안에 슬픔만 있는 건 아니라고, 남들과 똑같이 걷더라도 베르테르는 항상 생각하지 않으면 걷지 않는 친구라는 배경을 충분히 말해줬죠.”
지난해 12월엔 ‘연기 콘티’와 80페이지 분량의 ‘블로킹 맵(배우의 동선·거리·움직임을 설계한 가이드북)’을 만들어서 배우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처음엔 배우들도 이런 일을 했던 제작진이 없어서 당황했던 듯하다”면서 “실제 배우들이 노래하기 힘들다거나 동작이 어려운 부분은 조금씩 수정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무대에는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의 복잡한 심경을 춤으로 나타내 줄 ‘아바타’도 추가했다. 박 감독은 “주인공과 비슷한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발레리노가 주인공의 아리아에 맞춰 춤을 춘다”며 “안무는 조주현 한예종 무용원 교수가 맡아줬다”고 설명했다.
베르테르 연습 현장. [사진 국립오페라단]
해석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4막이다. “자살율이 높은 한국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귀결되는 베르테르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가 고민스러웠다”고 했다. “결말을 바꾸거나 비트는 대신,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좀 다르게 해석하기로 했어요. 베르테르 우울한 면모를 강조하기 보다는, 자연과 아이를 사랑하는 순수함이 많이 비춰지도록 캐릭터를 연출했어요. 하늘나라에서라도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이게끔요.”
그는 “앞으로도 무대 연출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원한 제국’을 만들 때부터는 저만의 새로운 영화적 문법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뒀어요. 지금도 그때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무대든, 스크린이든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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