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남의 대변 이식했더니”…암·치매까지 고치는 ‘제2의 뇌’ 비밀 [Health&]

본문

하 변화하는 치료 패러다임

위막성 장염·염증성 장 질환에 효과
무너진 장내 미생물 균형 복원시켜
시술 표준화·장기 안전성 확보해야

btc92c5f00056c445a70f4909a3519800d.jpg

마이크로바이옴으로 본 변화하는 치료 패러다임.

인간의 장(腸)은 단순한 소화기관이 아닌 ‘제2의 뇌’이자 거대한 면역 생태계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장내 미생물 군집인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주목한다. 생활습관 교정으로 장내 환경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질병 치료에 직접 활용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이른바 ‘미생물 기반 치료(Microbiome-based therapy)’의 핵심으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질병 극복의 길을 제시하며 미래 의학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42세 여성 A씨는 폐렴에 걸려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그런데 항생제 치료 후 심한 설사와 복통, 고열에 시달렸다. 증상이 좀처럼 낫지 않아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정밀 검사 결과,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CDI)에 의한 위막성 장염으로 진단됐다. 이는 항생제 사용으로 장내 정상 세균총이 파괴된 후 독소 생성균이 증식해 대장에 염증과 위막을 형성하는 질환이다. 위막은 실제 막과 달리 염증성 물질이 굳어지면서 생긴 막을 뜻한다.

건강한 미생물을 이식해 근본 치료 도모

치료제(반코마이신)를 쓰자 곧바로 복통이 줄고 열이 떨어지면서 증상이 나아졌다. 그러나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약을 일주일가량 사용했지만, A씨는 매일 5~10회 설사를 반복했다. 약으로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의료진이 시도한 치료는 바로 대변 이식술. 그는 대장 내시경을 통해 대변 이식술을 받은 직후 설사가 곧바로 멎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는 “위막성 장염 치료에는 보통 반코마이신·메트로니다졸 등의 항생제가 쓰인다. 유익균에 피해를 덜 끼치면서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증의 원인균을 죽이는 원리지만, 유익균 증가를 유도하지 못해 재발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반면 대변 이식술은 유익균을 주입해 재발의 원인이 되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균의 세력을 약화하는 논리여서 훨씬 생리적인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변이 약이 되는 시대다. 대변 이식술(FMT·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은 대변을 통해 얻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환자의 소화관에 이식해 무너진 미생물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장에는 수조 개의 미생물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면역 조절이나 염증 반응, 대사 기능, 신경계와의 상호작용 역할을 두루 한다.

장내 미생물은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전신 건강을 지킨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이나 노화의 영향으로 장내 미생물 수가 줄어들면 병원균이 과도하게 증식하거나 면역 반응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하면서 장내 생태계 균형이 깨진다. 대변 이식술은 이런 미생물 불균형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증자의 대변을 채취한 뒤 현탁액을 제조해 대장·위 내시경 혹은 캡슐로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의료센터 연구진이 CDI 환자를 대상으로 대변 이식술 치료군과 항생제 치료군을 비교했더니, 재발 없이 완치된 비율이 항생제 치료군은 30%에 그친 반면 대변 이식술 치료군은 81%에 달했다. 이런 임상 효과를 바탕으로 대변 이식술은 재발성·난치성 CDI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완치가 어려운 염증성 장 질환에도 대변 이식술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염증성 장 질환은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B(15)군은 궤양성 대장염 환자다. 그는 외할머니와 크론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지낸다. 문제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가 그에겐 잘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신 상태가 나빠져 일상생활이나 학교 출석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석·조퇴·지각을 자주 해 학년 승급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의료진은 B군을 대상으로 대변 이식술을 해보기로 했다. 기증자를 따로 섭외하려고 했지만, 의지가 확고한 외할머니의 대변을 활용했다. 기증받은 대변을 전처리한 후 두 차례에 걸쳐 이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증상이 사라지고 검사상 염증이 치료돼 정상에 가깝게 회복된 관해 상태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학교생활도 무리 없이 소화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고홍 교수는 “기존 치료가 특정 병원균을 억제하거나 염증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대변 이식술은 장내 생태계를 재구성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대변 이식술은 건강한 미생물 생태계 자체를 통째로 옮기는 원리다. 그러면 수조 개의 미생물이 상호 작용하며 억제돼 있던 면역력을 깨우고, 독소 생성을 막는 보호막을 형성한다. 그 덕분에 장 질환뿐만 아니라 대사·정신·피부·암 질환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심리적 거부감·건보 적용은 과제

이처럼 대변 이식술이 난치병의 구원투수로 떠올랐으나 의료 현장의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안착하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고홍 교수는 “대변 이식술의 가장 큰 가능성은 기존 치료로 해결되지 않는 질환에서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치료 반응의 개인차 ▶최적의 공여자 선정 기준 부족 ▶투여 방식·횟수의 표준화 미흡 ▶장기 안전성 데이터 부족 등이 한계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환자 입장에선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큰 장벽이다. 대변을 이식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 비용도 문제다. 김나영 교수는 “대변 이식은 아직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아 115만원 정도로 치료 문턱이 높은 편”이라며 “위막성 장염처럼 효과가 확실한 질환부터 급여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내 미생물을 의약품으로 … 질환에 맞게 설계하는 맞춤 치료 가능

미 FDA 승인으로 유효성 확인
작용 기전 규명해 효능 높여야

btf5838358617cd6903e41c12a64ed6b8d.jpg

출처: GettyimagesBank

대변 이식술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의 길을 개척했다면, 특정 균주를 추출해 규격화된 알약이나 주사제로 만든 생균 치료제(Live Biotherapeutic Products·LBP)는 산업화의 신호탄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는 두 개뿐이다. 2022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리바이오타(Rebyota)가 최초다. 항생제에 반응 없는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CDI)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항문을 통해 투여한다. 이어 2023년 4월, 최초의 경구용 신약 보우스트(Vowst)가 추가로 승인받았다. 캡슐 형태로 복용 편의성을 높인 약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기업 ‘바이오미’ 대표인 연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윤상선 교수는 “미국 FDA에서 승인받은 리바이오타·보우스트의 등장은 장내 미생물이 의학적으로 유효한 치료 수단임을 입증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생균 치료제의 강점은 안전성이다. 인체 유래 미생물을 이용하므로 부작용 우려가 적다. 덕분에 규제 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독성 시험을 면제받거나 임상 1상을 생략하고 곧장 환자 대상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어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치료제로 거듭나려면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개인마다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달라 동일한 균주라도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윤 교수는 “미생물이 체내에서 어떤 분자적 기전으로 작동하는지를 얼마나 명확하게 규명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극복 가능한 영역”이라며 “장내 생태계라는 정글에서 무작정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일으키는 범인(분자)을 지목하고, 그 범인만 골라 잡는 해결사(미생물)를 투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생균 치료제 시장은 기존 약을 대체하기보다 표준 치료제와 결합해 동반 상승 효과를 창출하는 ‘애드온(Add-on)’ 시너지 전략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분야가 면역항암제다. 암 환자의 미생물 환경에 따라 항암제 반응률이 다른 만큼 특정 균주를 병용 투여해 기존 약의 저항성을 극복하고 치료율을 끌어올리는 식이다.

대사 질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사 질환 치료의 핵심은 혈관 독성 물질인 ‘TMAO(트리메틸아민-N-옥사이드)’ 관리다. 기존엔 간에서 생성된 TMAO가 심혈관·신장 질환을 악화시키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나 최근엔 전 단계인 ‘TMA(트리메틸아민)’에 주목한다. 음식물을 섭취할 때 장내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TMA는 간으로 이동해 독소인 TMAO로 변환된다. 따라서 장내에 TMA를 분해하는 특정 미생물을 직접 투여함으로써 혈중 TMAO 농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윤 교수는 “이런 방식은 기존의 심혈관·신장 질환 약물과 함께 쓸 경우 기존 약물만으로 도달하기 어려웠던 치료 영역까지 포괄하는 강력한 보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균 치료제는 아토피, 자폐스펙트럼장애, 치매 등 신경계 질환으로까지 연구 영역을 확장 중이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고홍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건강한 사람의 미생물을 그대로 옮기는 방식에서 질환에 맞게 설계된 미생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궁극적으론 장내 미생물이 개인 맞춤 의학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는 과학적 근거와 안전성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5,552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