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가난한데 전쟁 휩쓸리면 끝장…파키스탄, 필사 중재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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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가상의 미국과 이란 종전 협상장 모습. JD밴스 미국 부통령(왼쪽 첫번째)과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오른쪽 첫번째)이 언성을 높이는 걸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왼쪽 두번째)와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군 총사령관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 제미나이
파키스탄의 마음이 급해졌다. 오는 21일로 다가온 휴전 종료를 앞두고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상대국 선박과 군함을 공격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어서다.
양국의 휴전과 1차 종전 협상을 이끈 파키스탄은 최고위급 외교채널을 가동해 2차 협상 성사에 힘을 쏟고 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19일(현지시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며 협상 재개를 설득했다. 지난 15~18일엔 미국의 주요 중동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튀르키예를 돌며 협상 재개에 힘써 줄 것을 요청했다. 실권자인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군 총사령관도 같은 기간 이란을 찾아 협상장 복귀를 설득했다.
사우디와 방위협정…참전 요청땐 전쟁해야
지난 1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왼쪽)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파키스탄이 중재에 총력을 기울이는 건 이번 전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서다. 확전을 못 막으면 자신들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당장 두려운 건 사우디의 참전이다.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카타르를 기습적으로 공습한 뒤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 안보보장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이에 같은 달 핵보유국인 파키스탄과 전략적 상호방위협정을 맺었다.
어느 한 나라를 향한 공격은 양국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내용이 골자다. 협정에 따르면 전쟁에서 이란이 사우디 정유시설 등을 공격한 건 파키스탄을 향한 공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파키스탄이 지난 10일 사우디 킹압둘아지즈 공군기지에 전투기 18대와 공중급유기, 수송기, 방공무기 등을 보내며 군사 지원에 나선 이유다. 사우디는 경제 지원으로 화답했다. 15일 파키스탄 중앙은행에 30억 달러(약 4조4400억원)를 추가 예금하고, 기존에 맡긴 50억 달러(약 7조4000억원)의 만기도 연장했다.
문제는 전쟁이 격화돼 사우디가 이란을 직접 공격할 경우다. 협정국인 사우디의 동참 요청이 올 경우 파키스탄은 약 900㎞의 국경을 맞댄 이란과 직접 맞붙어야 할 수 있다. 파키스탄 싱크탱크 베르소 컨설팅의 아지마 치마 소장은 알자지라에 “파키스탄으로선 이란과의 전쟁은 원치 않는 시나리오”라며 “최대한 중재를 통해 상황 악화를 막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걸프 위기=파키스탄 경제 위기
지난 1월 파키스탄 페샤와르주에서 한 남성이 액화석유가스(LPG) 통을 옮기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우디 등 걸프 지역 국가 위기는 파키스탄 경제에도 직격탄이다.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걸프국 경제가 파키스탄을 먹여살리고 있다. AP통신은 “걸프 지역에서 일하는 500만명의 파키스탄인이 매년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이 파키스탄 전체 수출액과 맞먹는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이 이 지역에서 수입하는 원유와 가스 비중도 81%나 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걸프 공습이 이어지면 파키스탄이 받을 돈과 에너지도 끊기는 셈이다.
국가별 걸프지역 원유 가스 수입 비중 및 총 수입액
세계 2위 규모 시아파 반발 걱정
지난 13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열린 쿠드스(예루살렘)의 날 행사에서 시아파 무슬림 여성 어린이들이 이란 역대 최고지도자 모습 앞에서 장난감 총을 든 채 행진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내 혼란도 두렵다. 파키스탄의 시아파 무슬림 규모는 전체 인구의 약 20%(4000만명)다. 인구 수로만 보면 시아파 맹주 이란 다음인 세계 2위다. 이란의 전쟁 피해가 늘어날수록 시아파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1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사망에 격분한 친(親)이란 시아파 시위대가 파키스탄 카라치 주재 미국 영사관을 습격해 9명이 숨졌다.
파키스탄 종교 분포(자료 : 파키스탄 통계청)
영토 44% 발루치스탄 분리 독립 우려
지난 2월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에서 발루치족 분리독립 무장세력의 공격에 의해 차량이 불에 탄 채 방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내전 우려도 있다. 파키스탄과 이란에 걸쳐 사는 발루치족은 분리독립을 외치며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에도 발루치스탄해방군(BLA)과 파키스탄군 간 교전으로 200여명이 숨졌다. 이들이 사는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州)는 파키스탄 영토의 44%, 이란 시스탄 발루치스탄주는 이란 국토의 11%를 차지한다.
전쟁 장기화로 이란 정권의 힘이 빠질 경우 발루치스탄 통제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 여파는 파키스탄에도 미치게 된다. 미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이란 발루치족 난민이 파키스탄 국경으로 향할 수 있다”며 “발루치스탄 무장단체의 세력 확장 욕구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 파키스탄 발루치족 분포지역
테러 유발·중국 투자 감소 걱정도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발루치스탄엔 이슬람국가(IS) 호라산 지부, 파키스탄 탈레반 등 테러 조직도 활동 중이다. BLA와 이들 조직은 발루치스탄에서 일하는 중국인을 향한 테러를 수년 전부터 저지르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위해 온 중국인에 대한 테러가 심해진다면 중국의 파키스탄의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이란의 휴전 과정에서도 파키스탄에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파키스탄의 노력 끝에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되더라도 한계는 명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는 “‘힘없는 비둘기’인 파키스탄의 역할은 협상장으로 미국과 이란을 이끄는 것이 최대치”라며 “핵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 미국과 이란이 실질적 접점을 도출하지 않는다면 종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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