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게임으로 아이 굳은 손 펴다…까르띠에가 지원한 ‘게임기획자’의 빛나는 도전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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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창업가는 한국에서 투자 받기, 정말 힘듭니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동아시아 지역 펠로우 김정은 대표 #뇌 병변 아동용 게임 잼잼400 개발 #사용 5일만에 손 꽉 쥔 몰입형 게임

발달 장애 및 뇌 병변 아이를 위한 게임 스타트업 잼잼테라퓨틱스의 김정은(41) 대표의 말이다. 실제로 글로벌 자본시장 데이터 분석 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전 세계 벤처 투자금 중 여성 창업팀에 돌아가는 몫은 단 2%에 불과하다. 특히 공익성을 띠는 ‘임팩트 비즈니스’라면 그 문턱은 더욱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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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잼잼테라퓨틱스 대표. 올해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의 동아시아 지역 펠로우로 선정됐다. 사진 까르띠에

최근 김 대표는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WI)’의 동아시아 지역 펠로우(후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CWI는 출범 이후 66개국 출신 330명의 여성 창업가에게 총 1410만 달러(약 208억 원)를 지원했다. 올해도 ‘길을 밝히는 여성들(Women lighting the path)’ 아래 30명의 펠로우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김 대표다. 넥슨에서 12년간 메이플스토리 등 메가 히트 게임을 일궈낸 베테랑 기획자 출신인 그는, 자신의 강점인 게임 기획력을 재활에 접목해 사회적 가치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절망 끝에서 찾은 해법, 재활 게임
김 대표의 창업은 가장 찬란했던 커리어가 꺾인 절망의 끝에서 시작했다. 서른둘에 낳은 쌍둥이 중 한 아이의 뇌 병변 판정과 복직 후 겪은 직장 내 차별은 그를 지독한 우울로 몰아넣었다. 지난 3일 만난 그는 “당시엔 끓는 물을 보며 내 몸에 부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마저 했다”면서 “결국 ‘엄마’라는 소명으로 다시 일어섰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이 재활을 위해 왕복 4시간 거리를 매일 운전하며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뎠다. 아이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저년차 치료사와의 만남, 돈에 따라 치료의 질이 결정되는 불균형한 재활 환경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아이를 위해 직접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넥슨 공채 3기 출신으로 누구보다 강력한 몰입 디자인 전문가였던 그의 이력은 ‘재활 게임’이라는 해법을 찾아냈다. 그의 재활 게임 ‘잼잼 400’은 2022년 아산나눔재단의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8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했고, 그는 이를 계기로 창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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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잼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잼잼400 게임으로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사진 잼잼테라퓨틱스

스스로 뇌와 손을 잇게 하다
잼잼 400은 병원 밖에서도 발달 지연 및 뇌 병변 아동이 재활을 지속할 수 있게 설계된 가정용 증강현실(AR) 재활 게임이다. 치료사를 따르는 수동적 방식 대신, 인공지능(AI) 기반 동작 인식 기술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뇌 신호를 보내 손을 움직이게 유도한다. 실제로 게임을 켜면 카메라가 아이의 손 움직임을 인식하고, 아이는 게임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야 한다. 게임 하나를 완료하는데 400회의 손 움직임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게임을 즐긴다.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계속하려면 아이가 기를 쓰고 손을 움직여야 해요. 하루 400번의 능동적 움직임을 끌어내죠. 사실 매우 가혹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의사·치료사가 커버하지 못하는 긴 시간을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 재활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났습니다.”

성과는 숫자로 증명됐다. 한 달을 치료해도 주먹을 못 쥐던 아이가 게임 5일 만에 손에 힘이 들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8주간의 프로그램 참여한 아이들의 손 기능은 평균 76% 개선됐다. 유타대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이 데이터에 주목해 뇌파 스캔 임상 협업에 나섰다.

여성 창업가, 연대로 길을 밝히다  
수익성보다 아이들의 변화를 좇는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은 CWI 심사 과정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최근 핑크퐁과 지식재산 사용 계약을 맺어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한편, 대근육을 움직일 수 있는 게임 사이트 ‘야호 놀이터’를 협약 맺은 재활센터를 통해 무료로 공개하며 상생을 실천하고 있다.

“병원이나 재활센터에서의 재활 시간은 너무 짧아요. 아이들이 집에서도 스스로 뇌를 자극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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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대표는 “장애는 완치되는 질병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마라톤과 같기에, 부모들이 겪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어둠”이라며 “잼잼 400이 그 어둠을 조금이나 밝힐 수 있는 한 조각 빛 같은 게임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까르띠에

그는 이번 CWI의 후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CWI는 매년 지원자 중 각 지역·분과별로 3명의 펠로우를 선정해 10만·6만·3만 달러의 후원금 수여한다. 이외에도 여성창업가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경영 능력 향상을 위해 1년의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이것은 김 대표가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여성을 위한 펀드와 프로그램이 워낙 많아 서로 도와줘요. 경쟁하지 않아도 기회가 많기 때문이죠. 오히려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줄까(How can I help you)’라고 물어요. CWI를 통해 글로벌 여성 창업가들과의 연대가 생긴다면 한국 여성 창업가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문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같은 처지의 여성 창업가들에게 “조급함을 잠재우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라”고 조언했다.

“대표가 되면 마치 3시간 이상 자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럴수록 한 걸음 떨어져 숲을 봐야 해요. 조급함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원칙과 기준을 세워 마인드셋을 관리하는 게 비즈니스의 핵심입니다. 할 수 있어요. 나 같은 아이 셋 엄마도 해냈잖아요.”

이달 16일 시작된 CWI의 2027년 에디션 모집은 오는 6월 16일까지 진행된다. 지원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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