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내한 앞둔 ‘인코그니토’ 리더 블루이 “파킨슨에 왼손 마비…그래도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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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내한하는 인코그니토 멤버들. 가운데 앉은 이가 프류듀서 블루이. [사진 프라이빗커브]
재즈 펑크 사관학교, 뮤지션들의 뮤지션, 애시드 재즈 생존자…. 다음 달 12~13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14년만의 단독 내한 공연을 여는 영국 밴드 ‘인코그니토(Incognito)’에게 따라붙는 별명들이다. 1979년 ‘파리지앵 걸(Parisienne Girl)’ 음원을 발표하며 데뷔한 ‘인코그니토’는 ‘브랜뉴 헤비스’ ‘자미로콰이’와 함께 3대 애시드 재즈 밴드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이들의 히트곡 ‘스틸 어 프렌드 오브 마인(Still a Friend of Mine)’ ‘기빙 잇 업(Givin’ It Up)’ 등이 수록된 앨범 ‘파지티비티(Positivity, 1993)’는 전 세계에서 100만 장이 팔렸다. 이들은 조지 벤슨, 스티비 원더, 샤카 칸, 마커스 밀러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이어가면서도 지난해 19집 앨범 ‘인투 유(Into you)’를 발매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코그니토’를 만들고 이끌어온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 장 폴 블루이 마우닉(69, 이하 블루이)는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공연은 우리 멤버 모두 올해 가장 고대하고 있는 일정”이라며 “지난해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며 경험했던 한국 기술진들의 높은 수준, ‘불에 뛰어드는 나방’ 같은 관객들의 순수한 에너지 등은 우리들이 늘 꿈꿨던 모습이었고, 이에 대해 아직도 멤버들과 그때 공연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인코그니토’의 사전적 의미는 영어로 신분을 숨긴 상태인 ‘익명의’ ‘가명의’ 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다. 이는 40년 넘게 1000여 명의 객원 멤버들이 오고 간 팀 운영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인코그니토’는 매번 보컬부터 브라스까지 10명 이상의 큰 편성을 유지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새로운 보컬·연주자를 영입해왔다. 블루이는 “밴드 특유의 패거리 심리(gang mentality)를 없애고 어떤 이름에도 얽매이지 않는 ‘음악적 공동체’를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며 “항상 내 노래와 스튜디오 작업, 라이브 공연에 도움이 될 인재를 찾고 있으며 밴드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대역이나 후임자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인코그니토. [사진 프라이빗커브]
‘인코그니토’가 등용문 역할만 했던 건 아니다. 블루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곡을 리메이크 하거나 함께 협업하는 데 상당히 적극적인 ‘성덕(성공한 팬)’이다. 그가 항상 “영웅”이라 칭하는 스티비 원더가 ‘인코그니토’ 콘서트에 몰래 찾아와 무대에 오른 건 유명한 일화다. ‘인코그니토’가 리메이크 한 스티비 원더의 노래 ‘돈트 유 워리 어바웃 띵(Don't You Worry 'bout a Thing)’이 계기가 됐다. “30년 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할 때였다. 눈을 감고 ‘돈트 유 워리 어바웃 띵’의 전주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메이사(당시 보컬) 대신 스티비가 걸어 나와 노래를 불렀다. 정말 넋이 나갔었다.”
그래미 어워즈 10관왕의 전설적인 미국의 보컬리스트 샤카 칸은 그의 유럽 투어에 인코그니토가 밴드 연주를 맡게 되며 인연이 시작됐다. 샤카 칸은 블루이가 어린 시절 방 벽에 포스터를 붙여놓을 정도로 좋아하던 스타였다. 블루이는 “첫 투어 리허설 때였는데, 그녀가 장거리를 이동해 오느라 발이 아프다고 하길래 리허설을 중단시키고 그녀의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근 채 발 마사지를 해줬다. 그렇게 샤카 칸과 평생의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인코그니토는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일본의 댄서들과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등 협업의 기반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블루이는 향후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뮤지션으로 단박에 “방탄소년단(BTS)”을 꼽기도 했다.
인코그니토의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 블루이. [사진 서울재즈페스티벌]
인코그니토는 지난 2024년 이후 또 다른 변곡점에 섰다. 프로듀서인 블루이가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블루이는 지난해 인코그니토의 해외 투어 콘서트와 신보 발매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초까지도 무대에서 기타를 메고 백보컬에 나서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상태가 악화하며 한국 공연에서는 기타 연주가 불투명한 상태다. 블루이는 “관절염과 파킨슨병으로 왼쪽 손이 부분적으로 마비됐고 오십견까지 겹쳐 안타깝게도 예전처럼 기타를 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내 영혼에는 음악이 있고 뇌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며 “팬들의 엄청난 지지로 겸허하게 병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모리셔스 해변에서 친구들과 함께 통조림 캔과 상자로 악기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했던 유년기, 런던의 인종차별주의자 불량배들에게 주기적으로 매 맞아야 했던 청소년기, 공장에서 일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을 듣고 일터를 뛰쳐나왔던 20대…. 블루이는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음악을 나의 인생으로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낼 수 있어 기쁘다”며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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