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요즘 힙스터는 궁능으로 간다…‘역사 서사’와 만난 프리미엄 체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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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문화축전 행사 중 덕수궁에서 열리는 '황제의 식탁' 프로그램 모습.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지난 16일 오후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서울 덕수궁. “황제 폐하의 귀빈들을 모시겠다”는 순검과 상궁, 근위대장의 안내를 받아 관람객들이 석조전에 도착했다. 1900년대 초 서구 신고전주의 양식의 열주식(列柱式, 줄지어 늘어섬) 기둥을 둘러보던 50대 부부가 연신 “운치 있다”고 감탄했다. 우아한 금실 무늬 한복을 차려입은 20대 여성은 “이직을 위해 쉬는 동안 나를 위한 힐링으로 프로그램을 예약했다”고 했다. 대한제국(1897~1910) 시대 황실의 공간을 엿본 뒤 2층 테라스석에서 실내악 연주와 함께 가배(커피의 옛말)와 다과를 즐기는 ‘덕수궁 밤의 석조전’은 올해 예매권 추첨 경쟁이 137대 1에 이르렀다.

궁궐 정비 복원에 힘입어 볼거리 늘어 #‘달빛기행’ ‘밤의 석조전’ 등 체험형 인기 #“활용이 보존”…문화재 관리엔 신중론도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인 궁능(궁궐과 왕릉)과 종묘가 감성적 취향을 과시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해 궁능 및 종묘 방문객은 1781만484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올해도 지난 19일까지 누적 방문객 407만635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16만1558명)보다 13.1% 늘었다. 봄·가을마다 열리는 궁중문화축전과 경복궁·창덕궁 등 5대 궁궐 체험 행사는 아이돌 공연 못지않은 ‘피켓팅(피를 튀는 티켓팅)’으로 소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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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활용 프로그램 '덕수궁 밤의 석조전'.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궁궐이 핫해진 이유는 실제로 볼거리가 늘었기 때문이다. 경복궁의 경우 1990년대 시작한 정비·복원 사업에 힘입어 36동이던 전각이 현재 148동으로 늘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의 김철용 복원정비과장은 “하드웨어 측면에서 전각이 늘어나면서 관람 동선이 커진 데다 왕실 부엌이던 소주방을 복원하면서 ‘경복궁 생과방’ 같은 행사도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2014년 시작된 궁중문화축전 뿐 아니라 ‘창덕궁 달빛기행’처럼 각 공간의 역사성과 특색에 맞춤한 활용 프로그램이 꾸준히 늘어난 것도 방문객 증가에 한몫했다. 한양대 이훈 교수(관광학부)는 “궁궐은 멈춰 있는 공간이지만 콘텐트와 이벤트가 더해지면서 방문객들은 마치 살아 있는 역사를 체험하는 듯한 ‘실존적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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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창덕궁 달빛기행’ 사전 행사가 열린 지난 14일 밤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참가자들이 인정전을 관람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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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활용 프로그램 '창덕궁 달빛기행'(2022).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이는 2000년대 이후,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가 강세를 보이는 것과도 맞물린다. 소비의 중심이 물건에서 경험으로 이동하면서 이른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 높은 소비가 트렌드가 됐다. ‘밤의 석조전’의 경우 문화 복지 차원에서 국고가 지원돼 1인당 3만5000원으로 경성시대 상류층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궁능이 애초부터 왕과 의례, 금기와 권력의 이야기가 축적된 장소라는 점에서 교육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에듀테인먼트’ 효과도 낸다. 165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과 조선 왕조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영월 장릉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국가유산청도 이에 맞춤한 특별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달 27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경복궁 생과방에서는 단종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궁중 별식 체험 ‘유주(幼主), 생과방의 봄’을 진행한다. 조선왕릉길 여행프로그램 ‘왕릉팔(八)경’에도 단종 부부의 능과 종묘를 연계한 투어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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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활용 프로그램 '경복궁 생과방'.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이처럼 궁능이 힙한 소비공간이 되면서 각종 브랜드들의 협업도 늘고 있다. 올해 축전의 경우 설화수·테라로사·농심 등 뷰티·식음 브랜드뿐 아니라 ‘밀리의 서재’ 같은 플랫폼 업체까지 협업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방탄소년단(BTS) 공연이 보여줬듯, 궁궐은 역사적 자산에서 현대 K컬처의 메카로 확장하고 있다”면서 “활용이 보존이라는 선순환의 맥락에서 더 다채로운 이벤트로 관광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방문객이 늘수록 최근 경복궁 내 화재 사고 같은 불상사의 위험도 커진다. 궁능유적본부의 안호 서비스기획과장은 “프로그램 확대 요청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보존·관리가 가능한 틀 안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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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궁궐과 종묘 방문객 10년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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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40기 방문객 10년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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