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이돌 공부 중” 환갑 산부인과 의사는 왜 케이컬처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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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돈암수정캠퍼스 성신관 강의실에서 'K-뮤직비즈니스론'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박래옥씨가 팀 프로젝트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이아미 기자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돈암수정캠퍼스의 한 강의실. ‘K-뮤직비즈니스론’ 수업이 한창인 가운데, 앳된 얼굴의 학생들 사이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케이컬처·엔터테인먼트 전공 석사 과정에 입학한 산부인과 의사 박래옥(63)씨다. 그는 강의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고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많게는 40살 넘게 차이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씨는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뒤 21년간 개인 산부인과를 운영해왔다. 지난 2003년엔 난소암의 암세포를 파괴하는 ‘시자르’라는 치료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수업을 듣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병원 문을 일찍 닫고 학교에 온다”며 “우리 세대는 케이팝(K-POP)을 하나도 접해보지 못한 세대지만, 젊은 학생들과 섞여 공부하고 대화하면서 난생처음 아이돌 앨범도 주문해봤다”고 웃었다.
나이 차이 때문에 팀 프로젝트 등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는 그와는 전혀 상관 없는 얘기였다. 박씨는 강의 후 이어진 최근 데뷔한 아이돌 그룹 관련 발표 세션에 직접 나서 ‘르세라핌’, ‘베이비몬스터’, ‘아일릿’ 등의 대표 멤버와 앨범을 긴장된 목소리로 소개하기도 했다.
봄 학기부터 성신여대 케이컬처·엔터테인먼트 전공 석사 과정 수업을 듣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 박래옥씨. 사진 박씨
박씨가 특히 흥미를 가진 건 케이팝 산업의 성장 과정이다. 그는 “케이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단기간에 세계 정상에 올랐는지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다”며 “성공 공식을 내 직업인 의료 분야에도 접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을 이과적 사고를 중심으로 살아왔는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언어적, 예술적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도 크다”고 덧붙였다.
6년 차 응급실 간호사도 ‘케이컬처(K-Culture) 공부’
이 수업에는 박씨처럼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학생들이 또 있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6년 차 간호사 박현식(31)씨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아티스트 ‘디롤링(de-rolling)’ 개념에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이번 학기 수업을 수강하게 됐다고 한다. 디롤링은 배우 등의 아티스트가 배역과 직무에 깊이 몰입한 상황에서 본래의 자아로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신 상태를 정리·회복하는 기법이다. 박씨는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아티스트들을 실제로 접하게 된다”며 “간호학과 정신건강 분야에 이 개념을 접목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케이컬처의 확산은 문화산업을 넘어 의료계 등 전문직 영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를 융합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케이헬스케어(K-Healthcare) 등 한국의 의료 분야 역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문화산업에서 통용되는 감각이나 성공 방식을 다른 비즈니스에 접목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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