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주체적인 여성의 패션을 그려내다…미리 보는 에르메스의 올해 가을·겨울 컬렉션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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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프랑스 근위대의 기병 훈련장 ‘가르드 레퓌블리켄(Garde Républicaine)’. 지난 3월 초 이곳에서 에르메스의 올해 가을·겨울 컬렉션이 공개됐다. 말 훈련장인 이곳은 그야말로 승마와 함께해온 이들의 정체성과 완벽하게 맞닿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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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이 이어지는 순간을 황혼이라 명명하고 이를 테마로 한 에르메스 2026 가을겨울 컬렉션 쇼.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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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살아있는 이끼로 뒤덮인 초원 같은 공간에서, 빛에서 출발해 어둠으로 사라지는 모델의 동선을 통해 서사를 만들었다. 사진 에르메스

에르메스 여성복을 이끄는 나데주 바네시불스키(Nadège Vanhée-Cybulski) 아티스틱 디렉터는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을 조성하고, 바닥엔 실제 숲에서 옮겨온 듯한 생생한 이끼가 빈틈없이 깔았다. 무대에 어스름한 푸른 빛이 켜지자 승마 DNA를 장인 정신으로 담아낸 옷을 입은 모델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조명은 푸른색에서 점점 노랗고 빨갛게 변하면서, 낮과 밤이 교차하며 사물의 윤곽이 흐릿해지는 ‘황혼’이라는 테마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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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과 원단, 퍼를 다채롭게 사용한 룩을 선보인 모델.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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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시어링 칼라를 단 버건디 컬러 롱코트는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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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퍼 팬츠에 트라페즈 라인의 투톤 소재 롱 코트로 스타일링한 룩. 사진 에르메스

주체적 여성의 활동성 강조

이번 컬렉션은 공학적으로 설계된 실루엣과 소재 가공 기술이 유독 돋보인다. 실루엣 측면에서는 좁은 어깨 라인에서 아래로 갈수록 사다리꼴 모양으로 넓게 퍼지는 트라페즈(Trapeze) 라인을 많은 옷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죽과 원단을 촘촘히 박은 퀼팅 기법은 이번 컬렉션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진화했다. 특히 나데주 바네시불스키 아티스틱 디렉터는 에르메스가 1951년 아티스트 A.M.카산드르와 협업해 스카프로 선보였던 ‘퍼스펙티브(Perspective)’ 문양을 입체적인 퀼팅 기법으로 재탄생시켰다. 작품은 원근법을 기반으로 기하학적인 선과 구조를 활용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위로 상승하는 생동감을 통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그의 그림을 원단에 인쇄하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그 위에 정교한 박음질로 퀼팅해 공예적 깊이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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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펙티브 문양을 전면에 프린트한 지퍼 드러스를 입은 모델.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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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펙티브가 프린트된 원단 위를 촘촘하게 박음질해 공예적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 에르메스

이 디테일은 지퍼를 단 셔츠 드레스를 비롯해 조끼, 봄버 재킷, 셔츠 코트 등 컬렉션 전반의 주요 아이템에 두루 쓰였다. 평면적인 그래픽을 에르메스 고유의 공예 기술로 풀어내며 의상의 입체감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가죽 몸판에 부드러운 니트 소매를 이어 붙이거나, 탈부착이 가능한 양털(Shearling) 칼라를 더하는 등 기온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실용적인 변주도 잊지 않았다

우아하고 기능적인 지퍼 디테일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돋보인 디테일은 지퍼다. 일반적인 여밈 지퍼를 넘어, 가죽 코트와 스커트의 몸통부터 엉덩이까지 나선형으로 휘감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착용자가 지퍼 슬라이더를 위아래로 움직여 옷의 폭을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기능적 장치다. 드레스의 지퍼를 열어 다리를 드러내면 보폭을 크게 넓혀 거침없이 걸을 수 있고, 지퍼를 닫으면 몸을 단단히 감싸 온도와 실루엣을 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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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실루엣을 따라 앞에서부터 뒤까지 유려한 곡선으로 지퍼를 배치한 레더 드레스.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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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 디자인의 지퍼와 말 안장 모티프에서 영감받은 포켓을 단 코트.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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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 가죽에 지퍼와 안장 포켓 디테일, 시어링 칼라가 달린 코트. 사진 에르메스

이런 설계는 옷이 몸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춰 실루엣을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어깨는 좁고 하단으로 갈수록 사다리꼴로 넓어지는 트라페즈 형태의 코트들 역시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했다. 여성이 직접 옷의 열림 정도를 결정하며 당당하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 공학적인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승마 유산 담은 조드퍼 팬츠와 부츠

기능적 설계의 정점은 나선형 지퍼와 조드퍼 팬츠에서 드러났다. 가죽 코트와 스커트의 몸통부터 엉덩이까지 나선형으로 휘감는 지퍼 디자인은 단순한 장식의 기능을 넘어선다. 착용자가 지퍼 슬라이더를 직접 움직여 옷의 열림 정도와 폭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다. 지퍼를 열어 다리의 노출 범위를 넓히면 보폭을 크게 내디디며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지퍼를 닫으면 몸을 단단히 감싸 실루엣을 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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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 가죽 소재의 점프 수트엔 사이 하이 부츠와 메탈 장식이 달린 가는 벨트로 우아한 역동성을 표현했다. 사진 에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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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바지에서 온 조드퍼 팬츠에 사이 하이 부츠를 신은 모델. 손에 든 가방은 이번 시즌에 처음 선보인 미니 사이즈 피코탄 백이다. 사진 에르메스

브랜드의 뿌리인 승마 요소 역시 실제 활동에 최적화됐다. 조드퍼 팬츠는 허벅지 부분에 여유를 두어 앉고 일어서는 동작을 편하게 만들었으며,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디자인으로 무릎 위까지 올라온 사이 하이 부츠(Thigh-high boots)를 신기에 최적화된 형태를 갖췄다.
컬러는 황혼의 시간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다. 쇼 초반에는 노을의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색이 무대를 채웠다. 이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을 때 찰나에 보이는 초록색 섬광을 라임 그린 색상으로 표현했다. 쇼가 끝으로 갈수록 색은 짙은 남색과 회색, 그리고 깊은 밤의 검은색으로 변하며 시간의 서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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