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근육의 기억이었다”…백악관 총격범 마주친 기자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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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그날 밤 기삿거리가 제발로 찾아왔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 연례 만찬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을 놓고 AP통신은 이 같은 표현과 함께 언론인들의 치열했던 취재 후일담을 전했다. 사교장이 순식간에 사건 현장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기자정신은 테이블 밑에서도 작동했다. 본능이 만들어낸 결정적 특종은 물론 긴박함 속에 빚어진 오보도 모두 한자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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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요원들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백악관출입기자협회 만찬장에서 총격 용의자 콜 토머스 앨런을 제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통신 불량·폰카가 빚어낸 결정적 특종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용의자가 체포된 모습이 발 빠르게 사진으로 담길 수 있었던 데는 행사장 특유의 통신 불량이 한 몫 했다. 특종의 주인공 AP 사진기자 알렉스 브랜던은 취재진이 아닌 손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초청돼 평소 쓰던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앞두고 총성이 울렸을 때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브랜던은 비밀경호국 요원들에 둘러싸여 단상에서 황급히 끌려 내려가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문제는 송고였다. 휴대전화 신호를 찾아 만찬장 밖으로 뛰쳐나간 그의 눈앞에 한 남성이 셔츠가 벗겨진 채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브랜던은 직감적으로 이 남성이 용의자라고 판단한 뒤 다시 셔터를 눌렀다. 그는 “솔직히 말해 그건 근육의 기억이었다”고 회고했다.

화장실 앞 총격범 마주친 앵커, 만찬장은 임시 프레스룸으로

아찔한 대면도 있었다. CNN의 간판 앵커 울프 블리처는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중 제압 당하기 직전의 총격범과 마주쳤다. 경찰은 블리처를 바닥으로 밀쳐 넘어뜨린 뒤 안전을 위해 다시 남자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수많은 분쟁 지역을 누빈 베테랑인 그 역시 “나를 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쳤고 정말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혼란한 현장은 사실상 프레스룸이 됐다. 워싱턴포스트(WP)의 모라 주드키스는 “인쇄 매체 기자들은 웅크린 채로 주변 목격자들을 인터뷰했고 방송 기자들은 텅 빈 단상이 배경에 나오도록 각도를 맞춘 뒤 셀카 모드로 생방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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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요원들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출입기자협회 만찬장 밖 총격 사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채 단상에서 대피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속도와 정확성 사이 시험대…오보도 나왔다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CNN의 앵커 케이틀란 콜린스는 생방송 중 인근에 앉아 있던 한 보안 관계자를 인용해 “용의자 사망이 확인됐다”고 보도했지만 오보였다. 주드키스는 테이블 밑에서 회사에 ‘총성’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후회했다. “정말 총소리였는지, 다른 소리였는지 그 순간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확인이라는 단서를 달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현장이 속도와 정확성 사이,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오래된 시험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행사 전 농담도 다시 부각됐다. 레빗 대변인은 행사 레드카펫에서 대통령 연설을 예고하며 “즐거운 자리가 될 것”이라며 “방 안에서 몇 발의 총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랄한 농담이나 공격적 발언을 재치 있게 표현하기 위해 총격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이다. AP통신은 “이후 실제 총격이 발생하면서 시점 상 부적절한 발언이 됐다”고 꼬집었다.

잠시 화합 말한 트럼프, 곧장 언론 공격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에도 묘한 장면을 남겼다. 해당 만찬은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들어 처음 참석한 자리였다. 사건 직후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사랑과 화합을 봤다”며 “완전히 하나가 된 방이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표현의 자유에 바쳐진 자리였고 양당 인사와 언론인을 한자리에 모으려는 행사였다”면서다. 주류 매체의 기자들과 격한 설전을 벌여온 트럼프의 행보를 고려하면 이례적이었다. CBS의 수잔 지린스키는 “트럼프의 발언에서 새로운 존중의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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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셋째)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기자단과의 연례 만찬 행사 도중 총성이 들리자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 언론관이 금세 다시 나타났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CBS의 노라 오도넬이 자신의 방송 ‘60 미니트’에서 용의자가 쓴 메시지를 인용한 데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에서 그걸 읽으면 안 된다”며 “당신(오도넬)은 수치스러운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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