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각자도생 중동’ 신호탄 쏜 UAE…트럼프 웃고, 빈살만은 충격[view]
-
2회 연결
본문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중동 산유국들의 각자도생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아랍에미리트(UAE)가 내달 1일(현지시간)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확대 협의체 OPEC+(플러스) 탈퇴를 선언하면서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국제유가를 좌지우지해온 OPEC에 타격을 주는 발표로, 세계 에너지 판도뿐 아니라 중동과 미국 간 안보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8일 UAE는 성명을 통해 “장기적인 전략·경제 비전과 변화하는 에너지 구조를 반영한 결정”이라며 탈퇴 방침을 알렸다. OPEC은 1960년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정책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로, 사우디·UAE·쿠웨이트 등 13개 회원국이 산유량 할당을 정해 원유 생산을 제한해 왔다. 공급을 조절해 국제 유가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2017년 11월 30일(현지시간) 당시 칼리드 알 팔리흐 석유수출기구(OPEC) 의장 겸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이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OPEC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OPEC 로고 뒤에 서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석유 카르텔’로 불릴 만큼 산유국 이익을 위해 설립된 이 기구에서 UAE는 왜 발을 뺀 것일까. 석유를 ‘더 비싸게’ 팔고 싶은 사우디와 ‘더 많이’ 팔고 싶은 UAE의 이해가 충돌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UAE는 OPEC 내 3위권 산유국이다. 이란 전쟁 전 하루 340만~360만 배럴 안팎을 생산해 OPEC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 나라가 산유량을 하루 500만 배럴까지 늘리고 싶은데도, 사우디가 주축인 OPEC에 발목이 잡혀 증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는 감산을 통해 유가를 유지하려는 반면, UAE는 더 많은 원유를 시장에 내놓길 원했다”며 “2027년까지 500만 배럴로 생산을 늘리겠다며 더 많은 할당량을 요구해온 UAE의 불만이 누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 9월 2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석유 터미널에서 열린 초대형 유조선 부두 준공식에 한 남성이 서 있다. AFP=연합뉴스
UAE는 탈석유 시대를 오랫동안 준비하며 무역·관광·운송 등으로 경제를 다변화해온 덕에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비석유 부문에 기댈 수 있게 됐는데, 이로 인해 유가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유가가 낮더라도 석유를 최대한 많이 팔아 당장 수익을 늘리는 일이 더 중요해졌단 뜻이다. “UAE는 자국 재정 균형에 필요한 유가 수준이 (사우디보다) 낮아 유가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워싱턴포스트)는 분석도 있다. 반면 사우디는 GDP의 40~46%가량을 석유 부문에 기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만이 쌓이던 차에, 사우디와 외교적인 갈등도 커졌다. 양국은 본래 이란을 함께 견제해온 협력국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역내 패권 다툼으로 사이가 벌어졌다. 2014년 예멘 내전 발발 당시, 처음에는 함께 정부군을 지원했지만 추후 지지 세력이 달라지며 사실상의 대리전을 벌이기도 했다.
29일(현지시간) 미 해병대가 이란 항만 봉쇄를 위반하고 이란으로 향하려던 것으로 의심되는 상선 M/V 블루스타 III호에 승선했다. 사진 미 중부사령부
OPEC 탈퇴의 결정타가 된 것은 이란 전쟁이었다. UAE는 이번 전쟁에서 이란으로부터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주변국인데, 인근 국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길 주저하는 걸 보며 걸프국 공동 안보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일은 사우디-UAE 관계 변화의 절정”이라며 “아부다비가 사우디 영향권을 벗어나 미국·이스라엘과의 연대를 통해 탈걸프를 선언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됐지만, UAE는 지리적 특성상 수출하는 원유의 절반을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내보낼 수 있기도 하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으로 애를 먹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희소식이다. 가디언은 “무함마드 빈 살만의 사우디 위신에 타격을 주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승리”라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그간 OPEC이 유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다고 비판해왔다면서다. 마침 아부다비 국영 에너지그룹 아드녹(ADNOC)이 미국 천연가스 사업에 “수백억 달러” 투자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와 양국이 더욱 밀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 아랍에미리트 부통령 겸 부총리가 2025년 10월 13일(현지시간) 이집트에서 열린 가자 전쟁 종식 세계 정상 회담에서 악수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UAE의 탈퇴로 OPEC의 영향력은 다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 2024년 앙골라 등 소규모 산유국 탈퇴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라서다. 크리스티안 코츠 울릭센 미국 라이스대 베이커연구소 연구원은 28일 “OPEC의 시장 대응 능력은 크게 약화할 것"이라며 “반면 UAE는 시장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증산이나 감산을 할 수 있는 주요 ‘스윙 프로듀서’가 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FT는 “다른 국가들의 연쇄 탈퇴를 촉발하지 않는 한 OPEC에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OPEC을 넘어 전 세계 석유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OPEC+까지 하나로 묶는 것이 OPEC의 미래에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OPEC+는 러시아 등 산유국 10개국이 합쳐진 확대협의체다.

경주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자가 2025년 10월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일은 UAE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도 여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걸프 국가들이 더이상 하나의 블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도생 전략을 택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한국과 UAE는 아크부대 파병과 원전 협력 등으로 긴밀히 연결된 만큼 이런 변화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중동 질서가 사우디와 UAE 축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도 단일한 ‘걸프 전략’이 아닌 보다 다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남식 교수도 “탈OPEC과 친미·이스라엘 연대 강화라는 흐름 속에서 UAE가 새로운 질서를 선도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미국 중심 질서에 더 깊이 편입되는 UAE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우디 등 기존 파트너와의 균형도 함께 관리해야 하는 복합적인 외교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