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이태원 참사 구조 도운 영웅, 그 후…비극의 ‘이태원 클라쓰’
-
2회 연결
본문
10·29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상인 A씨의 가족 사진. 사진 유족
실종 전에도 이미 두 차례 극단적 시도가 있었어요. 병원 가자고 해도 ‘왜 정신병자 취급하냐’고 거부하니 데려가지도 못하고….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30대 상인의 아버지 백모씨는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백씨의 아들은 참사 이후 트라우마와 우울감에 시달리다 지난 29일 경기 포천시 왕방산 중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전에도 이미 두 차례 극단적 시도가 있었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다.
‘이태원 클라쓰’ 포차 운영…참사 현장 달려가
백씨에 따르면 아들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 2022년,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JTBC·2020)’ 배경이 된 포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고 장소인 해밀톤 호텔 골목에서 약 50m 떨어진 곳이다. 덩치와 힘이 좋았던 그는 참사 현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성인 남성 희생자들 시신을 옮기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참사를 피한 것이 다행이란 생각도, ‘의인’으로 자란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잠시였다. 고통은 참사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태원 일대 상권 침체가 이어지며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졌고, 결국 5년간 운영해 온 가게는 1년 반 전쯤 폐업했다. 우울감도 깊어졌다. 백씨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오지 않았다”며 “예전엔 안 그러던 아이가 조금만 신경을 거스르는 말을 들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를 냈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은 지난해 10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골목에서 10시 29분을 기해 추모 사이렌이 울리자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트라우마 상담 지원 대상…치료 거부
이후 아들은 행정안전부로부터 이태원 참사 피해자로 공식 인정돼 지원금과 국가트라우마센터 상담 지원 대상이 됐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은 당시 긴급구조 및 수습에 참여한 이도 피해자 인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이 병원과 센터 방문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치료는 쉽지 않았다. 백씨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대신 내가 센터에 가서 10번 넘게 상담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 사이 아들은 이미 두 차례 유서까지 남기고 극단적 시도를 했다고 한다.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 이태원 근처에서 자취하던 때였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입원 치료를 할 수 있는 ‘보호입원’ 등의 제도가 있지만, 백씨는 이런 제도의 존재를 몰랐다. 그는 “트라우마센터에서 아들 문제로 여러 차례 상담했지만, 당사자 동의 없는 입원 치료 등에 대해선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가 인정한 참사 피해자인데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30일 백씨 아들에 대한 부검을 실시했고, 시신을 인계받은 가족들은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내원 권유만으론 한계”
이태원 참사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극단적 시도로 이어진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경남 고성군의 40대 소방관과 인천의 30대 소방관이 극단적 시도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민간인 구조자나 공무원 등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정신건강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백씨 아들의 사례처럼 치료를 거부하는 일은 한국 사회 정신질환자들에게 흔한 일이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4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국민의 비율은 73.6%에 달했지만, 그중 73%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
국립부곡병원장 재직 당시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피해자 심리지원을 총괄했던 이영렬 국립법무병원장은 “트라우마나 우울을 겪는 이들은 외출 자체를 꺼리고 정신적 어려움을 숨기려고 하는 게 기본 상태”라면서 “단순히 내원을 권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주거지에 찾아가는 방문상담 등 보다 촘촘하고 깊숙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명재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커 피해자 스스로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기 어렵다”며 “치료를 강제할 수 없다면 최소한 고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는 정신건강평가라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he JoongAngPlus: PTSD와 동거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2415
“회식서 일부러 폭탄주 마셨다” PTSD 기자, 파우치에 숨긴 것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4407
병원은 가까운 게 최고라고? 1시간 거리 정신과 가는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6351
죄책감 때문에 병원도 못갔다…‘살아남은 자’ 덮친 슬픔의 무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8196
PTSD 환자엔 ‘최악의 위로’다…당신도 뱉었을 이 3가지 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0054
시간 지났으니 참사 얘기 마라? 정신과 의사 “韓 아직 멀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2009
발바닥 들었다 ‘쿵’ 내려놓자…PTSD 환자에 생긴 놀라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4000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