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빅맨 허리 보이면 슛 찬스”…‘여자 커리’는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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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만지며 활짝 웃는 청주 KB의 특급 가드 허예은. 우상조 기자

“가드가 빅맨과 마주 서면 대부분 승부 대신 패스를 선택하겠죠. 저는 슛 던질 기회부터 봐요. 농구의 상식을 뒤엎는 플레이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1m65㎝의 작은 키로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WKBL) 무대를 평정한 청주 KB의 가드 허예은(25)이 직접 밝힌 맹활약 비결이다. KB는 지난 26일 용인 삼성생명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두고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리그 1위에 이어 챔프전까지 석권하며 통산 세 번째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당초 KB가 챔프전에서 고전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국보급 센터’ 박지수(1m93㎝)가 다쳐 골밑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예은이 한 발 더 뛰어 득점과 전술의 공백을 메웠다. 챔프전 3경기에서 평균 16점을 올린 그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1차전 2쿼터 종료 직전 자신보다 18㎝ 큰 삼성생명 센터 배혜윤을 앞에 두고 던진 11.2m짜리 초장거리 3점슛이 림에 빨려 들어간 순간은 챔프전의 백미로 꼽혔다.

허예은을 지난 28일 천안 KB 훈련장에서 만났다. 그는 “2021~22시즌 챔프전 우승을 해봤지만, 그땐 막내급이라 기여한 게 거의 없다”면서 “주축 멤버가 돼 우승하니 이번에야 말로 ‘진짜 챔피언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활짝 웃었다. 허예은은 불리한 신체 조건을 창의적인 패스와 정확한 슛으로 극복했다. 신인 시절(2020~21) 22%에 그친 3점슛 성공률을 올 시즌엔 37%(리그 4위)까지 끌어올렸다. 매일 새벽 혼자 훈련장에 나와 300개의 슈팅을 던지는 루틴을 꾸준히 이어 온 결과다. 전매특허인 플로터(슛 동작을 반 박자 빨리 가져가며 공을 높이 띄워 올려 상대 수비를 피하는 기술)도 함께 완성했다. 허예은은 “농구에서 작은 선수가 살아남으려면 남다른 재능 한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며 미소 지었다.

우승의 기쁨도 잠시, 허예은은 조만간 다시 ‘농구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여자 농구대표팀 멤버로 국제대회 대비 훈련에 나서기 때문이다. 여자대표팀은 오는 9월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독일)과 나고야(일본) 아시안게임 일정을 잇달아 소화한다. 국제 무대는 커녕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중국에 가로 막혀 3위권으로 추락한 한국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게 당면 과제다. 허예은은 “국제대회선 1m90㎝대 거구들이 즐비하다. 정면을 향하는 내 시선이 상대 허리춤에 머무는 상황을 종종 겪는다”면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가드라면 체격 차이와 상관 없이 싸워 이겨야 한다”고 투지를 드러냈다.

롤 모델로 미국프로농구(NBA) 수퍼스타 스테픈 커리를 꼽은 그는 “커리는 ‘3점슛은 2점슛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기존의 인식을 40%대에 달하는 높은 성공률로 뒤집었다”면서 “아시안게임과 월드컵 모두 한국 농구의 저력을 알릴 기회다. 커리처럼 승부처에 더욱 집중해 제대로 사고를 한번 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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