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위스 워치스&원더스 박람회로 읽는 시계 트렌드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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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Palexpo)에서 이달 14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워치스&원더스 제네바(Watches&Wonders Geneva, 이하 WWG)’ 박람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올해 역대 최다인 66개 브랜드가 참가했고, 행사 기간 제네바 도심 방문객은 1만 명을 넘어섰다.
다운사이징 트렌드 이어져 #기술력 드러내는 시계 인기 #브랜드 헤리티지 재해석
박람회장 근처에선 주얼리 박람회 ‘오트 주얼 인 제네바(Haute Jewels in Geneva)’와 WWG에 참가하지 않은 시계 브랜드의 자체 행사가 동시에 열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계 축제처럼 활기를 띠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주일간 워치스&원더스 제네바가 열렸다. 올해는 박람회 주관 이래 최대 업체가 참가했다. 사진 워치스&원더스 제네바
올해 WWG는 브랜드 각각이 지닌 고유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자리였다. 특정 컴플리케이션 혹은 디자인 코드가 시장을 주도하던 이전 행사와 달리, 서로 다른 해석과 선택이 병렬적으로 펼쳐졌다. 그럼에도 흐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기술력을 드러내는 의지가 보였고, 헤리티지를 재해석하거나 브랜드의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는 모델도 다수 등장했다. 스위스 박람회를 현장에서 취재한 중앙일보는 박람회 출품작을 크게 8개 항목으로 나누고 대표 모델을 선정했다.
1. 올해도 이어진 ‘작은 시계’ 인기
2000년대 들어서며 시계 시장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지름 40㎜ 이상의 큰 시계였다. 스포츠 워치가 인기를 끌며 생긴 현상이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시계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며 다양한 손목에 어울리는 작은 사이즈 시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운사이징(downsizing) 흐름은 박람회에 참여한 여러 브랜드를 통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불가리(Bvlgari)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 37’은 지름 40㎜로 전개하던 모델의 비율을 유지한 채 케이스 크기를 줄여 다운사이징에 동참했다. 스위스 독립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모저앤씨(H.Moser & Cie) 역시 ‘스트림라이너’ 컬렉션에 변화를 줬다. 2020년 출시 후 지름 40㎜ 이상 사이즈로만 전개되던 스트림라이너에 처음으로 지름 34㎜ 모델을 추가했다. 샤넬 워치(Chanel Watches)는 ‘J12’ 컬렉션에 가장 작은 사이즈인 지름 28㎜ 모델을 더해 컬렉션 다변화에 나섰다.
시계의 크기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은 올해도 이어졌다. 왼쪽부터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 37, 모저앤씨 스트림라이너 투 핸즈, 샤넬 J12. 사진 각 브랜드
2. 시계의 심장 보여주는 ‘스켈레톤’ 다이얼
‘심장’인 무브먼트를 다이얼에 드러내는 스켈레톤 시계의 인기도 이어지고 있다. 스켈레톤 특유의 미학적 구조와 중성적인 디자인에 대한 선호가 맞물린 결과다. 에르메스(Hermès)의 ‘H08 스켈레트’가 대표적이다. H08은 2021년 출시한 남성 시계다. 에르메스는 이 컬렉션을 통해 디자인, 기능 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하고 있다. 스켈레톤 다이얼은 브랜드 기술력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파네라이(Panerai)는 31일에 달하는 긴 파워리저브를 갖춘 무브먼트의 주요 부품을 다이얼에 노출한 ‘루미노르 31 지오르니’를 내세웠다. 위블로(Hublot) 역시 여러가지 소재로 케이스를 제작한 ‘빅뱅 리로디드’를 통해 자체 개발한 합금 ‘매직 골드’ 케이스와 자체 제작 무브먼트 유니코의 우수함을 드러내는데 집중했다.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다이얼에서도 볼 수 있는 스켈레톤 다이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왼쪽부터 에르메스 H08 스켈레트, 파네라이 루미노르 31 지오르니, 위블로 빅뱅 리로디드. 사진 각 브랜드
3. 크로노그래프로 드러낸 브랜드 정체성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크로노그래프의 인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태그호이어(Tag Heuer)와 제니스(Zenith)가 대표적이다. 1969년 세계 최초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개발을 두고 경쟁을 펼쳤던 두 브랜드는 올해도 ‘모나코 에버그래프’와 ‘크로노마스터 스포츠 스켈레톤’으로 다시 맞붙었다. 태그호이어 모나코 에버그래프는 크로노그래프 작동 시 부품 간 마찰과 마모를 줄인 새로운 메커니즘을 접목한 기대주다.
제니스 크로노마스터 스포츠 스켈레톤 모델의 베젤에는 1/10초 단위의 눈금을 새겼다. 분당 3만6000회의 고진동 무브먼트를 통해 측정의 정확성을 드러내려는 의지다.

시간을 계측하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도 올해 많은 브랜드에서 선보였다. 왼쪽부터 태그호이어 모나코 에버그래프, 제니스 크로노마스터 스포츠 스켈레톤. 사진 각 브랜드
4. 헤리티지 재해석
브랜드 역사에 중요한 시계를 재해석한 모델도 이번 박람회에 대거 등장했다. 단순한 복각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감성에 맞춰 해리티지를 재해석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까르띠에(Cartier)는 스포츠카에서 영감 받은 ‘로드스터’를 꺼내들었다. 2001년에 처음 출시한 컬렉션으로, 2012년 단종된 바 있다. 새 버전은 케이스 가운데가 볼록한 토노형 실루엣과 차량 계기판이 떠오르는 사이클롭스 스타일 날짜창 등 기존 디자인 코드는 유지하면서 세로로 길어진 비율이 특징이다.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은 1920년대 컬트 워치의 대명사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을 다시 선보였다. 쿠션형 케이스와 기울어진 다이얼, 12시 방향에 위치한 크라운(용두) 등 상징적 요소를 그대로 계승했다.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는 드레스 워치 마스터 컨트롤 컬렉션에 하위 라인업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를 추가했다. 케이스 일체형 브레이슬릿을 통해 디자인에 큰 변화를 줬다. 기존 클래식한 무드에 역동적인 느낌을 더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복각한 시계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까르띠에 로드스터는 2012년 단종 이후 14년만에 돌아왔다. 왼쪽부터 까르띠에 로드스터,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 사진 까르띠에 ©Laure Sée, 각 브랜드
5. 기술력 보여주는 ‘퍼페추얼 캘린더’
퍼페추얼 캘린더는 30일과 31일 등 매달 다른 날짜 수를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기능이다. 실용적인 컴플리케이션이지만, 부품 제작과 조립 난도가 높다. 대다수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을 선보인 가운데, 기술 진화를 보여주기 위해 이 메커니즘을 활용한 브랜드가 있다. 랑에 운트 죄네(A.Lange & Söhne)는 중력에 따른 오차를 줄이는 장치인 투르비용과 퍼페추얼 캘린더를 결합한 ‘랑에 1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을 공개했다. 스모키한 반투명 글라스를 통해 무브먼트를 드러내고, 디스크에 야광을 적용한 ‘루멘(Lumen)’ 테마가 특징이다.
로저 드뷔(Roger Dubuis)는 ‘엑스칼리버 바이-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 캘린더’를 발표했다. 레트로그레이드는 반원 형태 창에서 바늘이 이동하다 끝에 도달하는 순간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기능이다. 이를 날짜와 요일 2가지에 적용해 ‘바이’를 붙였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제작 난이도가 높아 브랜드의 기술력을 집약해 보여주는 컴플리케이션으로 꼽힌다. 왼쪽부터 랑에 운트 죄네의 랑에 1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바이-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 캘린더. 사진 각 브랜드
6. 우주를 담아낸 시계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계의 특성상 천체와 우주는 자주 등장하는 테마다. 올해는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페이즈에서 탈피해 브랜드의 기발함과 혁신을 담은 제품이 주를 이뤘다.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미드나잇 데이 앤 나잇 페이즈 드 룬 워치’는 다이얼 위를 회전하는 태양과 달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시계다. 하루에 한 번 다이얼 위를 회전하는 디스크가 핵심이다.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은 천체 움직임 자체를 시계 위에 구현한 초복잡 시계를 선보였다. 여러 겹의 디스크를 통해 별의 이동과 달의 궤도를 정확하게 표현한 ‘6105G-001’ 모델이 주인공이다. 브랜드 최초로 일출과 일몰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까지 더했다.
IWC 샤프하우젠(IWC Schaffhausen)은 ‘파일럿 벤처러 버티컬 드라이브’ 모델을 내놨다. 활동에 제약이 많은 우주비행사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크라운을 없애는 대신 시계 조작이 가능한 회전식 베젤을 탑재했다. 기술적 진화를 통해 우주 시계를 구현한 좋은 예다.
천체와 우주를 테마로 한 시계의 인기도 이어졌다. 왼쪽부터 반클리프 아펠 미드나잇 데이 앤 나잇 페이즈 드 룬, 파텍 필립 6105G-001, IWC 파일럿 벤처러 버티컬 드라이브. 사진 각 브랜드
7. 유색 스톤으로 우아함을 드러내다
케이스 안팎으로 원석을 세팅해 눈부심을 강조하는 여성 시계가 강세인 가운데 천연 하드스톤으로 다이얼을 제작한 여성 시계가 트렌드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
피아제(Piaget)는 지난해 공개한 ‘식스티’ 컬렉션에 푸른빛 쿼츠를 얇게 저며 만든 다이얼 버전을 추가했다. 가죽 스트랩 장착도 처음이다.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는 조약돌에서 영감을 받아 타이거아이와 터쿼이즈를 조합한 ‘에타블리쇠르 갈레’를 선보였다. 조약돌 케이스에 맞춰 설계한 무브먼트가 돋보인다.
한편 오트 주얼 인 제네바에 참가한 이탈리아의 하이 주얼러 다미아니(Damiani)는 새로운 디자인의 마르게리타 워치를 공개했다. 베젤 위를 화려하게 장식한 꽃 모티프를 덜어내 일상에서도 착용 가능한 데일리 워치로 변화를 준 게 이번 신제품의 특징이다.
여성 시계 분야에서는 스톤 다이얼을 적용하는 등의 흐름이 이어졌다. 왼쪽부터 피아제 식스티, 오데마 피게 에타블리쇠르 갈레, 다미아니 마르게리타 워치. 사진 각 브랜드
8.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념 시계
올해도 여러 브랜드가 ‘애니버서리’ 모델을 내놨다. 기념 모델인만큼 브랜드 정체성과 유산을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쇼파드(Chopard)의 ‘L.U.C 1860 크로노미터’는 플러리에 매뉴팩처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다. 이에 매뉴팩처 인근 아뢰즈(Areuse) 강에서 영감 받은 블루 컬러 다이얼과 독자 개발한 루센트 스틸™ 케이스를 결합해 브랜드의 기술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롤렉스(Rolex)의 상징인 오이스터 케이스는 올해 탄생 100주년이 됐다. 롤렉스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이스터 퍼페츄얼 41’의 다이얼과 크라운에 숫자 100을 새겼다.
튜더(Tudor)는 새로운 컬렉션 ‘모나크’로 창립 100주년을 자축한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를 연상시키는 다이얼 위에 로마숫자와 아라비아숫자를 혼합한 인덱스를 얹었다.
많은 브랜드가 올해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왼쪽부터 쇼파드 L.U.C 1860 크로노미터,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 41, 튜더 모나크.사진 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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