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코로나 트라우마 덮쳤다…‘죽음의 크루즈’ 입항에 들끓는 이곳

본문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으로 3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루즈선이 바다 위 기피 시설로 전락했다. 주변 국가들이 줄줄이 하선을 거부하자 스페인 정부가 마지못해 자치령인 카나리아제도 입항을 허가했지만 현지에선 “왜 하필 우리냐”는 반발이 거세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대규모 격리 사태를 겪었던 이 지역 주민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bt5f3e7fd2e25110b4140adffec08ead93.jpg

카보베르데 영해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MV 혼디우스'. AP=연합뉴스

기항국 줄줄이 하선 거부…스페인이 떠안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는 현재 서아프리카 앞바다 군도 카보베르데를 떠나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섬으로 향하고 있다. 오는 9일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디우스호는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카보베르데 앞바다에 닻을 내린 채 발이 묶였다. 출항지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카보베르데 당국이 감염 우려를 이유로 승객 하선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 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요청을 수용해 이 배의 입항을 허가했다. 카나리아제도가 의료·방역 역량을 갖춘 가장 가까운 지역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스페인 국적자 14명이 이 배에 타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배가 도착하면 의료진이 승객과 승무원을 검진하고 증상이 없는 외국인은 본국으로 돌려보낼 예정이다. 배에 탄 스페인 국민 14명은 마드리드의 군 병원으로 이송돼 격리된다고 한다.

btb5f9b2107b6e9560eb9102218aac44cf.jpg

김영옥 기자

“마치 코로나 때 같다”…방역 트라우마에 현지 반발

현지 반발은 거세다. 페르난도 클라비호 카나리아제도 자치정부 수반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입항을 허용할 수 없다”며 “이 결정은 충분한 기술적 기준에 근거하지 않은 데다, 주민 안전을 보장할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그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의 긴급 면담도 요구했다.

카나리아제도는 2020년 2월 테네리페섬의 한 호텔에서 휴양객 700여 명이 14일간 격리되며 유럽에서 가장 먼저 봉쇄 조치를 겪은 곳이다. 현지 간호사는 로이터통신에 “마치 코로나 때 같다”며 “ 주민들은 이미 어린아이와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우리는 이미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충분히 유연하게 대처해 왔다”며 “스페인에는 크루즈선이 갈 수 있는 다른 항구가 많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라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호르헤 마리찰 테네리페호텔협회 회장은 “카나리아와 경쟁하는 모로코 등 다른 국제 관광지는 (입항 후보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며 “카나리아 입항 결정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3주 새 3명 사망…치사율 38%에 치료제도 없어 불안 가중

감염원과 전파 경로 등 이번 사태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147명을 태우고 지난달 1일 우수아이아를 출항해 1인당 1만4000~2만2000유로(약 2100만~3300만원), 33~43박 일정으로 남극과 남대서양 외딴 섬을 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bt7d1390e01ce846567210660a75af88d0.jpg

카보베르데 프라이아 항구에서 6일(현지시간)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의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AP=연합뉴스

WHO가 4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진자 2명, 의심 환자 5명이 나왔고 이 중 3명이 사망했다. 첫 번째 사망자는 70세 네덜란드인 남성으로, 승선 닷새 뒤인 4월 6일 발열·두통, 경미한 설사 증상을 호소하다 11일 호흡 곤란으로 선상에서 숨졌다. 69세 부인은 구토·설사 증상 끝에 2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사망했다. 남아공 보건당국은 사후 검사에서 부인이 한타바이러스 양성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 번째 사망자는 지난 2일 폐렴으로 선상에서 숨진 독일인 여성이다. 시신은 여전히 배 안에 안치된 상태다. 지난달 27일 증세를 보인 영국인 남성은 요하네스버그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으며, 역시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됐다. 승무원 2명도 급성 호흡기 증상을 호소해 의료 후송이 추진되고 있다.

설치류의 소변·분변·타액 등을 통해 사람에게 옮는 해당 바이러스는 한국인 미생물학자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6년 한탄강 유역에서 처음 발견해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폐 손상과 급성 호흡곤란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기준 사망률이 약 38%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특정 치료제가 없어 수액 공급 등 대증 치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배에 쥐 없었다”…WHO 이례적 ‘사람 간 전파’ 주시

핵심 쟁점은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혼디우스호에 유입됐는지다. WHO는 1~6주인 바이러스 잠복기를 고려할 때, 사망한 부부가 승선 전 아르헨티나 체류 중 감염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 기항지 설치류 노출과 선내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된다. 선사 측은 “선내에 쥐는 없었다”고 WHO에 보고했다.

WHO는 사람 간 전파 정황을 주시하고 있다. 마리아 반 케르크호브 WHO 전염병 대응 국장은 5일 “일부 환자 사이에 매우 밀접한 접촉이 확인됐으며, 사람 간 전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부분 한타바이러스는 사람 사이에서 쉽게 퍼지지 않지만 한타바이러스 계열 안데스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파가 입증된 사례가 있다.

bt7b7e746e70c2286a382a537c3d761019.jpg

카보베르데 수도 프라이아 항구 앞바다에 정박한 MV 혼디우스호에서 6일(현지시간)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한타바이러스 감염 의심 환자들을 보트로 이송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침 그 사례가 보고된 곳도 사망한 부부가 다녀온 아르헨티나다. 안데스바이러스는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집단 감염이 시작돼 이듬해 초까지 확산됐다. 진원지로 지목된 우수아이아가 속한 주 보건당국은 “지역 내에서 한타바이러스가 보고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WHO는 한타바이러스가 아르헨티나·칠레 일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고 보고 있다. 잠복기가 길게는 8주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승객들이 아르헨티나 다른 지역이나 제3국에서 이미 감염된 상태로 승선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5,950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