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간처럼 말하는 AI, 인간의 소통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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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말하지 않고 말하기
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

걸출한 입담으로 방송계를 누비던 유명인이었다. 김정운 전 명지대 심리학과 교수. 정치권의 유혹까지 받던 그가 대학을 때려치우고, 일본에서 일본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여수에 정착한 지 10년이다. 이제는 여수 앞바다 섬에서 그림 그리고 낚시하는 안빈낙도의 삶을 살면서 꾸준히 집필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문화심리학자 30년 내공을 담은 책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펴냈다. “지난 30년간 너무도 쓰고 싶었던 책”이다.

책은 인간의 ‘소통’의 비밀을 파헤친다. 말로 하지 않는 비언어적 소통이 말하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때문에 아무리 AI가 인간처럼 말하면서 인간을 흉내 내도 쉽게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책이다. SNS로 소통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도리어 더 외로워지는 것도 비언어적 소통이 줄어들며 진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SNS나 온라인에서 반문명적 폭력이 쉽게 일어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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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작가. 2017년 모습이다. [중앙포토]

이런 비언어적 소통에는 ‘터치’ ‘눈맞춤’ ‘정서조율’이 있다. 이를 입증하는 여러 심리학 실험과 자료들이 있다. 가령 식당에서 손님에게 계산서를 줄 때 종업원이 손님의 어깨나 손바닥을 잠깐이라도 터치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0~30% 많은 팁을 받았다(터치). 손님들은 터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모종의 친밀감이 형성됐다. 초창기 디즈니 캐릭터 미키마우스는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었고 인기도 없었다. 눈 모양이 달랐다. 한 애니메이터가 까만 콩 두 개 같은 눈에 움직이는 눈동자와 흰자위를 그려 넣자 ‘살아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다’ ‘귀엽다’며 인기가 폭발했다. 나와 소통하는 것 같은 미키마우스의 눈이 성공 요인이 됐다(눈맞춤). 아기나 침팬지나 다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침팬지가 배 고프니 바나나를 달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과 달리, 아기는 목적이나 요구 없이 그저 예쁜 것을 보고 좋아하면서도 손가락질 한다(정서조율).

비언어적 소통의 핵심에 있는 것이 ‘상호주관성’이다. 주관과 객관을 뛰어넘는 소통의 기초다. 철학적 개념인 상호주관성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것이 책의 키포인트인데, 이는 저자가 독일 유학에서 전공한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상호작용론의 요체이기도 하다(귀국하면서 “대중적인 비고츠키 입문서를 쓰고 싶다”던 꿈이 30년 만에 이뤄졌다). 이에 따르면 의사소통은 수신자→메시지→송신자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 이전에 서로 터치하고, 눈 맞추고, 감각을 공유하면서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형성하는, 상호주관적인 것이다.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은 터치, 눈맞춤, 정서조율에 이어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를 통해 완성된다.

부제는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심리학’. 꽤 두툼한 분량에 심리학, 철학, 사회비평을 아우르지만 ‘합니다’체의 입말, 소 챕터 구성, 편안한 글쓰기로 술술 읽힌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저작이다. 글쓰기에 집중한 저자 사진을 표지 하단에 실었는데,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혀 내밀기’ 사진이 떠올라 잠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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