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4시간 설탕물 먹여 만든다” 믿었던 사양꿀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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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양봉협회 부회장 양봉장 가보니
지난 1일 오전 10시 전북 김제시 용지면 한 양봉장. 소나무숲 속에 놓인 벌통 뚜껑을 열자 꿀벌이 바글바글했다. 48년째 양봉업에 종사해온 김종화(65) 한국양봉협회 수석부회장은 “꿀을 따려면 이 정도 세력은 돼야 한다”며 벌통 내부 ‘소비(벌집)’를 들어 올렸다. 2층짜리 벌통 한 통엔 소비 14~15장이 차 있고, 벌 5만~7만 마리가 산다.
현재 용지면 일대 2곳에 벌통 110개씩을 둔 김 부회장은 밀원(꿀을 주는 나무·꽃)을 쫓아 벌통을 옮기려고 준비 중이었다. 김 부회장은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에 맞춰 전주→충북 영동→전북 장수로 일주일 간격으로 움직이며 꿀을 채취한다”고 했다. 이후 야생화·때죽나무·옻나무 군락을 따라 임실 등지를 돌다가 밤꽃이 지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6월 말쯤 채밀(꿀을 뜸)을 마친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수석부회장이 지난 1일 전북 김제시 용지면 본인이 운영하는 양봉장에서 벌통 안에 있는 소비(벌집)를 꺼내 보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
“꿀벌 폐사, 수년째 골칫거리”
기온·날씨 등이 최적 조건이면 소비 한 틀이 2~3일 만에 가득 차지만, 기온이 맞지 않으면 꽃이 만개해도 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벌통 한 통당 채밀량이 2~20병(1병 2.4㎏) 천차만별인 이유다. 벌통 가격도 시기에 따라 12만~40만원 오르내린다. 김 부회장은 “양봉은 사실상 꽃이 피는 5~6월, 1년에 한두 달 수확으로 버티는 산업”이라고 했다.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북 양봉농가 1932호에서 25만6000군(벌통)을 사육 중이다. 전국 2만865호, 241만8000군의 10.6%를 차지한다. 꿀벌 폐사는 수년째 전국적인 골칫거리다. 전북도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도내 양봉농가 1221호를 대상으로 월동 전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겨울 전체 벌통 22만3000군 가운데 15%(464호, 3만3000군)가 피해를 입었다. 전북도는 주요 폐사 원인으로 2월 말~3월 초 추위로 인한 꿀벌 생육 지연과 체력 소모를 꼽았다. 전북 지역 월동 피해율은 2022~2023년 49%, 2023~2024년 27%, 2024~2025년 22% 등 해마다 줄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여전하다.
꿀벌이 바글바글한 소비(벌집). 김준희 기자
“설탕물로 만든 사양꿀”…2016년 합법화
꿀벌 실종 원인은 복합적이다. 기후 변화로 겨울 저온이 여왕벌 산란을 막고 봄 저온은 벌 성장을 지연시킨다. 진드기(응애) 같은 질병, 과수원에서 뿌리는 농약도 치명적이다. 배·사과 등 과일나무는 꽃가루 수분을 위해 꿀벌이 필요하지만, 최근 드론 방제 확대로 주변 밀원 식물까지 함께 오염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 부회장은 “벌이 농약에 오염된 꽃가루를 물고 돌아오면 유봉(새끼 벌)을 포함해 벌통 전체가 초토화된다”고 했다.
그러나 ‘벌이 사라진다’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국내 꿀벌 사육 군수는 10년 전보다 외려 늘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2014년 195만2962군이던 사육 규모는 2023년 257만6963군으로 증가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산림(밀원)은 줄어드는데 벌통 수는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설탕물 급여 등 인위적 관리에 의존하면서 벌 자생력이 떨어져 ‘많이 키우고 많이 죽는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분석했다.
김 부회장은 벌들이 죽어가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사양(飼養)꿀’을 지목했다. 사양꿀은 벌에게 설탕물을 먹여 만든 꿀을 말한다. 한국은 2016년 식품공전(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식품 등 표시 기준을 수록한 공정서) 개정으로 설탕물 꿀을 ‘꿀’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설탕은 자연물이 아닌데 ‘자연물에서 얻은 꿀’이란 정의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양봉농가 요구를 반영해 사양꿀을 합법화했다. 농진청은 전체 양봉농가 3분의 1~절반이 설탕을 벌 먹이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수석부회장이 꿀벌에게 설탕물을 먹여 만든 일명 '됫박꿀'. 사진 김종화 부회장
“설탕물 과도하게 먹이면 벌 면역력 약해져”
김 부회장은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꿀 상당수는 사양꿀”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양봉협회가 지난해 양봉농가가 제출한 벌꿀 샘플(약 300g) 6397건을 검사한 결과 천연꿀은 5312건, 사양꿀은 1085건으로 판정됐다. 이 중 38건은 항생제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 김 부회장은 “봄·여름에 벌이 모아둔 꿀을 인간이 채취해 가기 때문에 9월 중순~10월 중순 벌이 겨울을 나도록 설탕물을 식량으로 주는 건 어쩔 수 없다”며 “그런데 꿀을 따기 위해 하루 24시간 설탕물을 과도하게 먹이면 벌 수명이 단축되고 면역력이 약해져 결국 폐사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격 차이도 크다. 사양꿀은 천연꿀(2.4kg 기준 5만~6만원)의 절반도 안 되는 2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김 부회장은 “심지어 일부 소비자는 ‘사양꿀’을 사양나무에서 채취한 꿀로 오인하기도 한다”며 “설탕물을 먹였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은 소비자 기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24년부터 천연벌꿀연합회 소속 농민 200여명과 함께 ‘설탕꿀’ 표기 의무화를 요구하며 대통령실·국회·농식품부·식약처 등 앞에서 시위·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집회 현장엔 직접 설탕물을 먹여 만든 벌집을 들고 나간다. 겉모습만으론 천연꿀과 사양꿀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올해 초엔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수석부회장 등 천연벌꿀연합회 소속 농민들이 지난해 9월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설탕꿀' 표기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김종화 부회장
윤준병, 설탕꿀로 명칭 바꾸는 법안 발의
정치권에서도 제도 개선 움직임이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정읍·고창)은 지난 3월 사양벌꿀 명칭을 ‘설탕꿀’로 바꾸고, 이를 벌꿀로 속여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일명 ‘사양벌꿀 명칭 개선법’을 대표 발의했다.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현행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꿀벌을 사육해 판매하거나 꿀벌을 사육·관리해 얻어지는 벌꿀·로열젤리·화분·봉독·프로폴리스·밀랍 등 양봉의 산물 및 부산물을 생산·가공·유통·판매하는 사업을 양봉산업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벌꿀에 대한 세부 정의는 없다. 윤 의원은 “‘사양’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축을 기른다’는 추상적 한자어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사양벌꿀을) 벌꿀과 유사한 제품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설탕을 원료로 했음을 명확히 알려 선택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양봉산업은 이미 골병이 든 상태다. 2층짜리 벌통 80개 기준 연 매출 3000만~4000만원에서 이동비·인건비 등을 빼면 실제 소득은 1000만~1500만원 수준이다. 이용국(72) 한국양봉협회 김제시지부장은 “양봉농가 10명 중에서 3명은 적자, 4명은 현상 유지, 3명만 돈을 번다”며 “대부분 생계 유지 수준이라 종사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청년 유입도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베트남산 꿀은 1㎏당 3500원 수준으로 국내 천연꿀보다 현저히 싸다. 2014년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으로 2029년 베트남산 꿀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면 국내 양봉업은 붕괴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 꿀벌위원장에 임명된 김 부회장은 “벌꿀 시장이 품질 경쟁이 아니라 ‘가짜 경쟁’으로 가고 있다”며 “소비자 신뢰가 무너지면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직접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고 싶다”고 했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8월 벌에게 먹일 설탕물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통에 설탕을 쏟아붓고 있다. 김 부회장은 "100% 설탕물로 만든 사양꿀은 천연꿀과 외관상 차이가 없다"고 했다. 사진 김종화 부회장
“밀원수부터 채밀·유통까지 전 과정 관리해야”
한편, 지자체마다 양봉농가 소득원 향상을 위해 밀원수 조성에 나서고 있다. 2015년부터 해당 사업을 추진해 온 전북도가 대표적이다. 도는 2024~2028년 158억4000만원을 들여 2200ha에 백합·헛개·아까시·옻·두릅·음나무 등을 심겠단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뉴질랜드 ‘마누카꿀’처럼 밀원 확보부터 채밀·유통까지 전 과정에 철저한 위생·품질·질병·이력 관리 제도 도입과 브랜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진청 한상미 양봉과장은 “영세 농가 난립을 막고 I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양봉과 청년층 유입을 통해 전업농 중심의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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