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롤모델 삼았는데…유럽 삼킨 강경우파, ‘트럼프 손절’ 나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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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우향우’ 흐름이 심상찮다. 2010년대 중반 반(反)이민 정서를 발판으로 세력을 키운 강경 우파 정당들이 주변부를 넘어 주류 세력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독일에선 제1당 자리를 넘보고, 영국에선 양당 체제를 흔드는 등 강경 우파를 빼고 정부의 향방을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독일대안당(AfD)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왼쪽)과 티노 크루팔라가 지난 3월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의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제1당 넘보고 정부도 흔든다…주류로 올라선 강경 우파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강경 우파 집회 ‘두려움 없이, 유럽에선 우리가 집주인’에서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발언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강경 우파 독일대안당(AfD)의 지지율이 29%(여론조사기관 인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일이 대표적이다. 반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의 중도 우파 연합 지지율은 22%에 그쳐 4년 만의 최저치였다.
영국에선 강경 우파 영국개혁당이 전통적인 노동당·보수당 양강 구도를 깨뜨렸다. 지난 7일 잉글랜드 지방의회 선거에서 1451석을 추가 확보해 총 1453석으로 제1당이 된 것이다. 집권 노동당은 2564석에서 1068석으로 내려앉아 2024년 총선 압승 이후 불과 2년 만에 처절히 패배했다. 루마니아에선 좌파 사회민주당(PSD)이 강경 우파 결속동맹(AUR)과 연합해 일리에 볼로잔 총리의 중도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시켰다. “강경 우파가 부상하며 기존 주류 정당도 그들과 협력하지 않고서는 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워진 상황”(폴리티코)이 된 것이다.
유럽 내 강경 우파의 영향력은 지난달 헝가리 총선에서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던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피데스당이 패배하며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주요국에서의 지지세는 여전하다.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이탈리아에서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건재하다. 영국 가디언은 “현재 강경 우파 정당의 입지는 기존 주류 정당만큼이나 확고하다”고 평가했다.
유럽 강경 우파는 2010년대 중반 시리아 전쟁으로 불거진 난민 위기를 기점으로 성장했다.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과 이주민이 급증하며, 주거·복지·교육 등 사회 안전망의 부담을 둘러싼 갈등이 커졌다. 이들 정당은 반이민·반난민 기조를 앞세워 주류 정당에 대한 불만을 파고들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러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계기로 그 세력이 더욱 커졌다. 같은 해 도널드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의 출범은 유럽 강경 우파 진영에 ‘주류 정치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2022년,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이끈 조르자 멜로니가 이탈리아 총리로 취임하며 그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들이 집권 세력으로 부상한 데는, 극단적 이미지를 과감히 내던진 전략 변화가 있었다. 멜로니 총리는 집권 이후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틀을 유지하며 실용 노선을 걸어 ‘통치 가능한 세력’임을 증명했다. 마린 르펜은 2011년 당권을 잡은 뒤 거친 언사를 줄이고 생활물가와 치안 등 일상 의제를 내세워 중도층의 거부감을 낮췄다. 가디언은 르펜의 후계자로 부상한 조르당 바르델라에 대해 “부드럽고 침착한 말투, 정장과 넥타이를 갖춘 단정한 이미지로 극우의 메시지를 평범하고 주류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 유럽 경제 침체도 이들에는 도움이 됐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경제가 총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당으로도 안 되고 보수당으로도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결과적으로 강경 우파라는 새로운 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외교·안보 등을 둘러싼 노선에선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형제들(FDI)은 나토 협력과 우크라이나 지원에 우호적인 반면 AfD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식이다. 경제 정책에서도 복지 확대를 강조하는 포퓰리즘 성향과 감세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성향이 혼재돼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정치적 부담 될라…멀어지는 트럼프와 유럽 우파
유럽의 강경 우파가 한때 정치적 모델로 삼았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흐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유럽의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인 발언은 한때 그를 치켜세웠던 유럽 강경 우파 진영마저 그와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며 “트럼프는 이제 이들에게 정치적 부담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가 이들의 주류화에 주목하는 것은, 그 뿌리에 여전히 타자 배척과 자국 우선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영국 런던 보수 집회에서는 “잉글랜드를 다시 위대하게(MEGA)” “불법 이민자 수백만 명은 떠나야 한다”는 구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해외에 투입할 수 있는 외교 자산이 고갈되면서 리더십이 축소됐고, 자연히 유럽 국가들 간 자국 이기주의가 강해졌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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