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표작이 바뀔 겁니다” 새 소설 내고 연극 도전하는 차인표 [송원섭의 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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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섯 번째 장편 소설 '우리 동네 도서관'을 출간한 작가 차인표. 사진 TKC픽처스
“사람들은 자기가 못 보는 걸 보는 사람을 미워한다.”
“넌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야. 그래서 나 없이는 살 수가 없어.”
‘기록 속 용은 한 가지만 먹는 듯했다. 소문, 그것이 용의 먹이였다.’
소설가 차인표의 신작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제가 감탄하며 밑줄을 친 문장들입니다. 벌써 다섯 번째 장편 소설. 이제 아무도 그에게 ‘배우가 소설까지 쓴다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데뷔작인 ‘잘 가요 언덕’(2009)을 개작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2021)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한국어 교재로 선택됐고, ‘인어사냥’(2022)으로 황순원 문학상신진상을 받았습니다.
차인표의 신작 소설 '우리 동네 도서관'. 송원섭 기자
‘우리 동네 도서관’은 소설 속 공간인 광개토대왕 시대의 고구려, 그리고 작가인 내가 실제로 그 작품을 쓰고 있는 동네 도서관이 수시로 교차하는 구조로 쓰여졌습니다. 이 두 시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상상 속 동물인 ‘용’이라는 존재입니다.
작품 속 고구려의 권력자 진 대인은 화공 번각에게 자신이 잡아 온 용의 모습을 그리라고 명하지만, 정작 용을 보여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가 자신에게는 어느새 용이 나타나 말을 걸어오죠. 이 용들은 언뜻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상인 듯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과 동시대의 다른 이들을 연결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작가와 대상을 동시에 바라보기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 차인표는 피카소의 ‘뜨개질하는 여인’이라는 그림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피카소의 스케치 '뜨개질하는 여인'. [사진 뉴욕현대미술관]
“그림을 그리는 작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 그리고 그 결과로 그려진 작품을 동시에 하나의 화폭 안에 담았더라고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뭘 써야 할지, 머릿속에 불이 확 켜지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배우 차인표’가 아닌, ‘작가 차인표’ 내지는 ‘강연자 차인표’로서 활동했던 최근 수년간의 경험 때문입니다. 1997년, ‘훈 할머니’로 알려진 위안부 이남이 씨가55년 만에 귀국하는 뉴스를 보고 느낀 감정을 데뷔작 ‘잘 가요 언덕’으로 쓴 것이 벌써 17년 전이네요. 그동안 글을 쓰면서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눈이 생긴 거죠. 특히 북 콘서트나 강연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껏 해보지 못한 경험의 원천이었던 겁니다.
“유방암 4기라는 분을 비롯해 다양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제가 하는 말을 들으러 오시고, 경청하고, 노트에 그 말을 받아 적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흔히 연기자는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어떤 분들이 그동안 나를 지켜봐 주었는지, 현장에서 만나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거예요. ‘이분들이 지금까지 나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주신 분들이구나’ 하는 걸 느낀 거죠.”
나의 용은 어떤 모습인가
작가가 책을 쓰고, 배우가 연기해도, 결국 독자나 관객이 각자 느끼고 해석해주지 않으면 어떤 작품도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우리 동네 도서관’의 이야기 구조가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차인표가 생각하는 용은 무엇일까요. 동양과 서양에는 모습과 능력치는 다르지만 모두 용이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그 용을 권력자가 가진 신성한 힘의 원천으로 삼아 숭배하게 하든, 혹은 악의 존재로서 오직 권력자만이 퇴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놓든, 인류 역사를 통틀어 힘을 가진 자들이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 용이라는 존재를 활용했다는 생각이 이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저에게도 저만의 용이 있었겠죠.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그 용도 쪼그라드는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웃음).”
7월18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포스터. 차인표는 키팅 선생님 역을 맡았다. [사진 MASTA]
33년만에 연극에 도전한 이유
대중과의 만남 덕분에 차인표는 최근 새로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오는 7월 공개되는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역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서게 된 것입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로 잘 알려진 ‘죽은 시인의 사회’는 아이비리그 진학을 지상 목표로 하는 명문 기숙학교에 문학 교사 키팅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키팅은 입시 교육에 찌든 학생들에게 남이 준 목표를 쫓지 말고,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가 극 중에서 말하는 ‘오늘을 살아라(Carpe Diem)’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유명한 격언이기도 합니다.
“다른 작품이었으면 안 했을지도 몰라요. 제의를 받고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어요. 데뷔 전인 1990년, 미국 유학 중에 어머니와 함께 봤거든요. 벅찬 감정을 안고 극장 문을 나서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다른 관객들도 죄다 열에 들뜬 듯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고 있더라고요.”
‘자, 이제부터 네 인생을 어떻게 살 건데?’라는 질문이 관객을 압도한 작품. 그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차인표는 키팅 역에 도전하기로 선뜻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직 연습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벌써 대본을 30번 정도 읽었네요.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대본에 푹 빠져 읽었던 작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로빈 윌리엄스의 열연이 전설이 된 1990년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주)피터팬픽쳐스]
차인표에게 문득 극중 역할을 선택할 때, 악역을 선택하는 데 부담감 같은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꼭 악역이라서가 아니라, 인물의 동기가 납득이 가지 않으면 저는 연기가 너무 힘들어요. 예를 들어 악역의 경우에는, ‘이런 짓까지 한다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싶은 경우가 많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체면도, 존엄성마저 버리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설득이 되지 않으면 연기하고 싶지가 않았던 거죠.”
도전: 대표작을 바꾸자
반면 키팅 선생님 역할은 꼭 해보고 싶은 역할. 그런 면에서 이번 연극은 차인표에게 의미 있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강연장에서 오신 분들에게 물어봤어요. ‘여러분, 저 아시죠? 제가 나왔던 작품 중에 가장 기억나시는 작품이 뭔가요?’ 제일 많이 나오는 답이 ‘사랑을 그대 품 안에’였어요. 33년 동안 데뷔작을 넘어서는 작품이 없었다는 걸 잠시 반성하면서(웃음), 이 연극이야말로 저의 대표작이 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어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기생활 33년의 대표작으로 삼겠다는 차인표. 사진 TKC픽처스
이미 500명 이상의 학교 폭력 피해자와 자립 준비 청년 등 사회적 약자들을 자비로 공연장에 초대하기로 한 상황. 이 연극이야말로 지금 같은 시대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메시지라는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를 밝혔습니다.
"아무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가는 외로운 존재들이 제 글을 읽고, 연기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너희를 지켜보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는 걸, 당신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꼭 전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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