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조선시대 선비 스타일, 21세기 10대 스타일…내 눈에 천하제일 명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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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공부할 때는 물론, 갑자기 전화가 와서 중요한 내용을 메모할 때나 뒹굴뒹굴하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 친구에게 줄 선물 카드를 준비할 때 등등.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글씨를 쓰면서 지식과 정보를 전하고 의견과 마음을 나누죠. 때로는 글로 쓰인 내용이나 그 문자 자체보다 글씨의 형태에 더 시선이 가기도 합니다. 친구의 노트를 빌렸는데 필기해 둔 글씨체가 예뻐서 따라 쓰고 싶어지거나, 내 글씨를 칭찬하는 말에 어깨를 으쓱한 적 있지 않나요. 멋들어진 글씨를 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내 취향의 글씨를 찾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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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서예와 현대 캘리그래피를 한자리에서 만나고 자신의 글씨 취향을 알아볼 수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참여형 특별전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A House of Calligraphy’을 찾은 임서현·박소미 학생모델과 정은서 학생기자(왼쪽부터).

과거 조선시대에는 지식인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시·서·화(詩·書·畫)를 꼽았습니다.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난 이를 일컬어 시서화 삼절(三絶)이라고도 했죠. 그중 서(書)는 문자를 쓰는 것 또는 쓴 글씨를 뜻하며, 내용을 표기해 의미를 전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지만 동시에 아름답게 쓰는 것도 중요했어요. 지금도 학교에서 배우는 서예(書藝)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이죠. 문자의 모양과 뜻을 이용해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내용 전달이란 실용적 가치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죠. 또한 잘 쓰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했기에 정신 수양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서예를 영어로 번역하면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고 해요. 캘리그래피는 문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로, 넓은 의미로는 붓 또는 펜이나 새로운 도구를 사용한 활자 이외의 서체를 아우르죠. 우리나라에서 특히 한글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예를 계승하는 동시에 작가의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전통 서예와 현대 캘리그래피를 한자리에서 만나고 자신의 글씨 취향을 알아볼 수 있는 참여형 특별전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A House of Calligraphy’(이하 글씨상점) 소식에 박소미·임서현 학생모델과 정은서 학생기자가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찾았어요.

글씨상점에서 나를 위한 글씨 취향 쇼핑

‘글씨상점’을 기획한 최수지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어렵게 느껴지는 서예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글씨 취향을 쇼핑한다’는 이색 콘셉트를 도입했다”며 전시장 입구에 걸린 민트색 긴 종이를 가리켰어요. “위아래에 가로로 뚫린 구멍이 손잡이예요. 잘 맞물리게 반으로 접고 좌우 칼선을 맞춰 끼워 고정하면 장바구니가 됩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입장한 관람객은 세 개의 전시 공간을 돌아보며 마음에 드는 글씨 카드를 하나씩 골라 담을 수 있죠. 마지막 계산대에서 장바구니에 담았던 카드를 스캔하면 자신의 글씨 취향을 알려주는 영수증을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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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상점’을 기획한 최수지(맨 오른쪽)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영화 포스터, 책 표지, 음반과 뮤직비디오, 문자도 등을 통해 시대별로 글씨의 형태와 회화적 확장을 보여주는 ‘개성편집숍: 태’를 소개했다.

전시는 총 3부로 나뉘는데, 1부 ‘개성편집숍: 태’ 2부 ‘마음 선물가게: 결’ 3부 ‘주인의 작업실: 얼’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상점과 같이 이미지화했습니다. 가상현실 화면을 통해 상점가에 온 것처럼 발걸음을 옮겨 ‘개성편집숍: 태’에 들어서자 표지가 잘 보이도록 책장에 놓인 책들과 줄줄이 걸린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죠. “여긴 글씨의 개성을 만나는 상점으로 여러 일상용품을 통해 세상을 꾸미는 글씨의 디자인적 매력을 소개해요. 먼저 표지만 보고도 사고 싶어지는 글씨를 담은 책을 골라봤는데, 어떤가요.” 최 학예사의 말에 소중 학생기자단은 웬만한 그림이나 사진보다 멋진 글씨로 적힌 제목을 유심히 봤죠.

“어, 스트레이 키즈다.” 음반 표지 사이에서 관심 그룹을 발견한 서현 학생모델에게 최 학예사는 “음반의 ‘특’ 글씨를 보면 글씨를 그림처럼 표현해 감상하는 문자도 느낌이 난다”며 “음반 외 영상에도 캘리그래피 작업을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고 화면을 가리켰죠. 영상서예가 이뿌리의 다국어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ARrC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어요.

맞은편에선 전시에 걸린 여러 작품을 작업한 1세대 캘리그래피 작가이자 서예가 강병인·이상현을 소개합니다. 영묵 강병인은 드라마 ‘미생’과 영화 ‘의형제’의 제목, 열라면·참이슬 같은 브랜드 로고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한글 멋글씨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글씨가 대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죠. 새터 이상현은 영화 ‘타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비롯해 여러 음반·서적 작업을 통해 대중문화 속 글씨의 표현 영역을 넓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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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속에 그림을 넣거나 글자의 획과 주변을 그림으로 구성한 문자도로 만든 병풍.

이상현의 현대 한글 캘리그래피 문자도를 AI 영상 작업한 작품과 조선 후기 문자도 병풍을 비교해 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질문 사다리타기를 통해 나온 첫 번째 글씨 취향 쇼핑 카드를 장바구니에 담았죠.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형‘태’의 글씨를 살펴본 다음에는 글씨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교류하던 선조들의 문화를 조명하는 ‘마음 선물가게: 결’로 향했습니다.
쓰는 이의 마음과 정신이 담기는 예술로 여겨진 서예 작품은 저마다 다른 필치와 형식으로 나타나 그 자체로 하나의 선물이 되기도 했죠. “예전부터 사람들은 소원이나 축하, 감사 등 말로 다 전하기 어려운 마음을 글로 써서 선물처럼 건넸어요. 그처럼 소통하고 연‘결’을 이루는 글씨를 다루는 이곳에 관람객이 들어오면서 처음 이 글씨를 보고 꽃처럼 봄처럼 환하게 즐겁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병인의 ‘날마다 꽃봄, 그대는 봄이오 꽃이라’ 족자를 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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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창 오세창의 탑원 집에서 연 시회를 기념해 엮은 시회도권. 잠시 현실을 떠나 친한 이들과 함께한 기쁨이 드러난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모여 시를 짓고 직접 쓴 글씨를 선물하던 문화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위창 오세창의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5가지 대표 한자 서체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등 전통 서예 감상법을 간단하게 배운 뒤 오세창이 조형성이 강한 전서체로 쓴 시 구절로 만든 6폭 병풍 한 쌍을 감상했죠. 탑원에 있는 오세창의 집에 모여 즉석에서 시와 글씨를 나누며 정취를 즐긴 모임인 시회를 연 기념으로 엮은 두루마리 ‘시회도권’도 살폈어요.

“위창 오세창은 일제강점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애국지사로, 한국 서화사의 계보를 정리한 서예가이자 우리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자 힘쓴 문예인이죠. ‘탑원시회’ 코너에서 그의 집에서 열린 시회를 체험해 볼까요.” 위창 오세창과 다섯 벗의 이름이 적힌 찻잔 중 하나를 골라 지정된 위치에 놓으면 그가 지은 시를 한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소미·서현 학생모델과 은서 학생기자는 영상에 국화꽃 그림과 함께 떠오르는 시를 읽으며 옛 문인의 마음을 느껴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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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원시회’ 코너에서 위창 오세창과 다섯 벗이 지은 시를 한글로 감상한 소중 학생기자단.

오래도록 좋은 복을 받으라고 기원하는 글 ‘영수가복(永受嘉福)’을 써서 선물한 인천 출신 서예가 검여 유희강의 마음, 병중에도 불경 간행에 도움을 준 이에게 감사를 전하는 편지를 쓴 추사 김정희의 마음을 통해 글씨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가 되는 것을 실감했어요. “지금도 글을 적어 보낼 때 카드나 편지지를 정성껏 고르죠. 두루마리·병풍·족자·첩 등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고 보관하기 쉽게 꾸며 아름답게 완성하는 걸 장황이라고 해요. 일종의 선물 포장이랄까요. 어디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확 달라지기에 글씨에 어울리는 비단 등을 고르는 것도 중요했죠. 그럼 병풍과 족자 중 원하는 선물 포장 카드를 골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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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강 필 영수가복. 영수가복이란 오래도록 좋은 복을 받으라는 뜻으로, 받는 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주인의 작업실: 얼’에서는 글씨가 어떻게 쓰는 이의 정신(얼)과 마음, 개성을 담아 표현해내는지 그 과정을 다룹니다. 좋은 글씨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죠. 수많은 연습이 반복되는 가운데 안목을 기르는 탐구도 오래 계속해야 해요. 최 학예사는 명대 말기 편찬된 『쾌설당법서』를 가리켰죠. “중국 역대 명필의 글씨 약 80종을 모아 돌에 새기고 탁본해서 엮은 서예 본보기 책이에요. 문인들이 옛 명필의 글씨를 익히고 자신만의 글씨체를 탐구하는 데 쓰였죠. 옛날에도 잘 쓴 교본을 보고 따라 쓰며 열심히 연습했음을 알려줘요.” ‘천하제일행서’로 일컬어지며 예서·초서·해서·행서에 모두 능통해 서성(書聖)이라고도 불린 왕희지의 글씨, 고려에서도 유행한 ‘송설체’를 개발한 조맹부의 글씨가 함께 실린 면이 펼쳐져 있었죠.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여러 도구가 필요합니다. 옛 선비들은 늘 방에 갖추고 사용하던 붓·먹·종이·벼루를 문방사우라 하여 도구를 넘어 친구로 여겼죠. 한쪽 벽면에 문방사우뿐 아니라 각종 도구가 전시됐어요. 그중 나뭇가지·칫솔·숟가락이 시선을 끌었죠. “이건 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실제로 작업에 쓴 거예요. 칫솔이나 숟가락으로 어떻게 어떤 글씨를 쓰는지 궁금하다면 옆에 이상현 작가의 영상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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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한글 서체로 새겨 서예의 조형미와 재료의 물성을 한번에 보여주는 조용연 작가의 전각 작품들.

서예의 조형미와 재료의 물성을 한번에 보여주는 조용연 작가의 전각 작품도 전시됐습니다. 일반 도장처럼 생긴 것부터 다양한 조각과 특이한 돌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전각이 빼곡했어요. 한켠에는 조용연 작가의 작업실이 재현돼 창작 과정을 짐작해보게 했죠. 이어 우봉 조희룡이 붓 쓰는 법을 탐구해 쓰고 그린 ‘홍매도’, 전통 서법을 바탕으로 한글의 조형미를 탐구하며 한글 서예의 현대화를 이끈 평보 서희환의 ‘보람’과 ‘뿌리 깊은 나무’ 등을 살펴봤어요.

조용연 작가의 전각을 찍어 세 번째 상점 카드를 완성한 뒤, 전시와 연계해 이상현·조용연 작가가 사전 진행한 캘리그래피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중·고생의 작품을 둘러봤죠. 또래 친구들의 글씨를 감상하고 장바구니를 비울 차례. 3장의 글씨 취향 쇼핑 카드를 계산대에 찍자 서현 학생모델은 ‘꽉찬글씨형’, 소미 학생모델과 은서 학생기자는 ‘글씨탐구형’이 나왔죠. “글씨 취향 유형과 추천 작품은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영수증에 나온 작품과 비슷한 결의 작품을 상설전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의 질문에 최 학예사는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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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현·박소미 학생모델과 정은서 학생기자(왼쪽부터)가 조용연 작가의 작업대를 통해 돌에 글씨를 쓰고 새기고 찍는 전각 작업 과정을 짐작해봤다.

“예를 들어 ‘꽉찬글씨형’의 추천 작품은 평보 서희환의 ‘보람’이죠. 간결하면서도 굵고 힘 있는 글자가 ‘꽉찬글씨형’과 딱 맞지 않나요.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을 들 수 있겠네요. 광개토대왕릉비는 6m 넘는 높이에 4면 가득 바둑판처럼 선을 그어 글자를 가득 새겨넣었는데, 고풍스럽고 힘이 넘치는 예서의 정수를 느낄 수 있죠. 탐구와 분석을 좋아하는 ‘글씨탐구형’의 경우 5대 서체의 대표적인 유물을 볼 수 있는 ‘서체’ 코너가 재밌을 거예요. 우리나라 글씨 문화는 단지 내용이나 모양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둘을 함께 복합적으로 가져가요. 좋은 내용을 좋은 모양으로 표현하는 거죠. 용비어천가의 ‘뿌리 깊은 나무’ 구절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내용이지만 서희환의 글씨가 주는 울림이 다른 것처럼요. 요즘 어린이들은 글씨 쓸 일이 줄었다고 하는데, 꼭 쓰지 않더라도 이런 글씨가 내 맘에 든다는 걸 알고, 글씨와 나를 연결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시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글씨를 써보겠다는 마음이 들면 더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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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탐구형’ 영수증을 받은 박소미 학생모델이 추천 작품인 ‘조희룡 필 홍매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예가 조용연 작가와의 만남

소중 학생기자단은 전시 연계 문화행사인 ‘조용연 작가와의 대화’에도 참여했어요. 조 작가는 “서예는 그냥 보면 글씨는 다 똑같아 보이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하다 보니 관객에게 불친절한 예술로 꼽힌다”며 작업 과정과 작품 이야기를 풀어냈죠. 전통 서예부터 이번 전시에도 출품한 전각, 현대 캘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에 얽힌 에피소드가 흥미로웠어요. “한자·한글 서예를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 위해 회화적인 느낌을 더하거나,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전통 서예와 현대적 시도 그 사이에서 이뤄지는 조화를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50여 분간 작가와의 대화를 마친 후엔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글씨와 서예 작품, 캘리그래피 작업과 글씨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냈죠.

소미: 언제 어떻게 글씨에 관심을 갖고 서예 캘리그래피를 시작하셨는지,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그래도 계속한 이유는 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생 때 형 따라 서예학원에 간 게 시작이에요. 열심히 쓰다 보니 소질 있다 해서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자신감도 얻고 그러면서 계속하게 됐죠. 정작 형은 그만뒀지만요(웃음).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됐어요. 불친절한 서예에 쉽고 재밌게 다가가는 작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서예는 배울 것도 너무 많고 항상 어려워요. 근데 거기서 오는 매력과 재미도 상당하다 보니 계속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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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한글을 아우르는 글씨와 전각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서예가 우현 조용연.

서현: 글씨에 감정을 담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어요. 글씨가 사람을 닮는다는 거죠. 글씨에 그 사람이 묻어나오는 만큼 글씨를 쓸 때 감정도 담겨요. 왕희지에 버금가는 명필로 꼽히는 안진경의 ‘제질문고’란 서첩이 있는데요.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조카를 위해 쓴 제문으로 피붙이를 잃은 비통한 심정이 담긴 서예사에서 최고로 손꼽는 걸작이죠. 캘리그래피는 그런 걸 잘 표현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쓰는 순간의 감정뿐 아니라 이를 떠나 글씨의 내용과 주제에 맞춰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스포츠카라는 글씨를 쓴다면 속도감 같은 걸 잘 나타나도록 쓰는 거죠. 이번 전시의 ‘개성편집숍: 태’ ‘마음 선물가게: 결’ ‘주인의 작업실: 얼’ 글씨는 코너별로 각각 내용과 분위기에 최대한 맞는 느낌으로 쓰면서, 하나의 전시라는 통일감을 부여하느라 고민이 많았어요.

은서: 글씨를 쓸 때 참고 대상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일단 뭘 전달하려는지 그 내용과 그에 따른 감성도 중요하고, 예술적인 형태 부분도 중요하죠. 저는 특히 치밀하면서도 대담하게, 정성을 넣어 일종의 혼이 담기게 하는 걸 중요시해요.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사상이나 메시지를 담아 관객들이 좀 더 재밌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고 기술적인 건 그다음이죠. 참고랄까 아이디어를 얻는 대상도 많아요. 길을 가다가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든가 주차 금지 등 경고 문구 보면 생각지 못했던 형태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빛과 그림자, 풍경 속 눈에 들어오는 공백 같은 공간에서 구성적 영감을 얻기도 하죠. 명필 왕희지는 거위가 목을 움직이는 동작에 착안해 필법을 만들었다는데요. 자연이든 인공물이든 뭔가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자료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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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 비친 한 줄기 빛과 그 사이 정돈된 글씨들이 인상 깊은 조용연 작가의 ‘양의(兩儀)의 방’.

서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보통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작업이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또 작가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그때그때 달라요. 수백수천 장을 쓸 때도 있고, 일필휘지로 한 장 만에 완성할 때도 있죠. 글씨도 안 써지고 힘들 땐 붓을 아예 놓고 잠을 자거나 문화생활 하며 회복 시간을 가져요. 꼭 글씨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보고 영화도 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좀 편하게 하죠. 이번 전시를 비롯해 이때껏 많은 전시를 해왔는데, 전시가 성공적일 때 보람을 느끼고요. 글씨 작업한 드라마나 가게가 잘되거나 작품이 팔릴 때도 보람을 느끼죠(웃음).

은서: 작가님 글씨만의 특징은 뭔지, 추사체처럼 작가님 글씨체를 만드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가게 간판이나 드라마 제호와 대필 화면, 행사 퍼포먼스 등으로 제 글씨를 본 여러 사람이 딱 보면 ‘조용연 글씨’라고 알아보시고 그런 걸 보고 제게 배우러 오시는 분들도 있긴 한데 말로 그 특징이 뭔지 표현하려니 좀 어렵네요. 몇 가지 글씨체가 있긴 한데 아직 이름은 없습니다. 다양하게 많은 걸 해보고 언젠가는 정신이 깃든 글씨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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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연 작가는 중첩된 문자의 착시현상을 통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수류화개(水流花開)’의 모습을 담아냈다.

서현: 디지털 시대 손글씨의 가치, AI나 디지털 폰트와 비교했을 때 서예만의 매력을 꼽아주신다면.
아무래도 손으로 직접 작업하니 그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 정신, 태도 등이 들어가고 또 드러난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고 다른 점이겠죠. 앞서 말한 안진경의 ‘제질문고’가 얼핏 보면 곳곳에 고친 글자도 있고 하지만 적에게 살해당한 조카를 회상하며 떠올리는 슬픔과 적에 대한 증오 등 격앙된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해 예술적으로 승화하며 고금의 명필 가운데 하나가 된 것처럼요.

은서: 손글씨 실력이 없어도 캘리그래피를 할 수 있을까요. 글씨를 잘 쓰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초보자가 하기 쉬운 팁이나 추천 도구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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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조용연 작가의 현대 캘리그래피 작품.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글씨를 쓰면 악필이 되곤 해요. 천천히 또박또박 정성을 들여 쓰는 게 반이죠. 사람마다 글씨의 매력이 다 있고 못났다 생각하는 글씨도 차분하게 생각을 하면서 쓰고 기술적으로 배우고 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글씨가 될 수 있죠. 처음에는 멋진 글씨를 따라 쓰는 걸 많이 해보세요. 계속 반복하다 보면 나만의 틀이 생기고 내 느낌을 넣어 발전할 수 있게 됩니다. 좋은 글씨가 뭔지 보는 눈이 없을 수 있으니 이번 전시에서 추천받은 글씨를 참고하거나,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겠죠. 노래 가사나 책 구절 등 써보고 싶은 글귀를 써보다가 내가 원하는 느낌의 문장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좋죠. 도구는 사실 어려워도 붓을 쓰는 게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서 추천해요. 인조모를 사용한 붓펜도 괜찮고, 연필도 좋은데 볼펜은 추천하지 않아요. 뭐든 필압을 조절할 수 있는 도구를 쓰는 게 좋아요.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은 실제 느낌과는 다르긴 해도 붓과 흡사하게 표현할 수 있어 손쉽게 활용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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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이 조용연 작가를 인터뷰하며 글씨와 서예 작품, 캘리그래피 작업과 글씨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소미: 전통과 현대 우리나라 글씨 문화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무엇인가요.
다 멋있어요(웃음). 개인적으로 ‘현판’을 좋아합니다. 글씨나 그림을 새겨 궁궐 등 건물이나 문에 다는 일종의 액자인데요. 왕부터 그 시대의 명필과 문장가들의 글씨로 만들었죠. 다른 나라 글씨 문화와의 차이점이라고도 생각해요. 제가 작업한 전각 중 수파리(守破離)라고 한자로 지킬 수, 깰 파, 떠날 리를 새긴 게 있는데요. 예술적으로 해석하면 옛 전통과 기본을 지키며 공부하고, 이를 깨서 본인만의 창작을 펼치고, 그걸 다 떠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말해요.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추사 김정희가 쓴 봉은사 판전 현판입니다.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썼다고 하는데, 수파리를 거쳐 어린아이처럼 청정무구한 경지에 다다른 글씨라고 하죠.

서현: 작가님에게 ‘글씨’란 어떤 의미고,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작업이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게 글씨란 제가 할 줄 아는 것이자 제 모든 것이에요. 계속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듭하며 작품을 만들고 전시도 많이 해서 대중에 선보이고 그러면서 글씨로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죠. 가깝게로는 내년 여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10번 개인전을 했는데, 딱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제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느낌으로 잘 준비해서 좀 큰 규모로 해볼 생각입니다. 이번 글씨상점을 통해 글씨에 관심이 생겼다면 한번 보러 오세요.
동행취재=박소미(서울 흑석초 5)·임서현(서울 한영중 2) 학생모델·정은서(경기도 위례한빛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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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보 서희환이 『용비어천가』의 ‘뿌리 깊은 나무’를 쓴 작품. 판본체를 바탕으로 한글 글자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A House of Calligraphy’ 전시가 열리는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갔어요. 서예가 조용연 작가님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인터뷰를 했습니다. 서예에 관심이 크지도 않았고, 재능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요. 작가님이 형을 따라 우연히 서예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서예에 조금 관심이 생겼죠. 또 이번 전시를 기획하신 학예사님과 글씨상점을 돌아봤어요. 세 코너에서 각각 마음에 드는 상품을 하나씩 가져가면, 마지막에 자신의 글씨 취향을 알려주는 콘셉트가 너무 재미있고 신박했죠. 제 취향은 글씨탐구형이었습니다. 가장 맘에 든 작품은 강병인 작가님의 ‘춤춰봐, 기쁨이야’와 ‘웃어봐, 행복이야’였죠. 춤 글자 모양은 춤추는 것 같고, 웃 글자 모양도 웃는 입 같아 인상 깊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전시였습니다.
-박소미(서울 흑석초 5)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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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ㅎ’ 95개를 통해 한글 글자 형태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강병인 작가의 ‘ㅎ모음’을 감상한 임서현(왼쪽) 학생모델과 정은서 학생기자.

박물관은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는 곳이죠. 이번에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서예 캘리그래피 작가 조용언 선생님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평소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캘리그래피가 단순히 글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또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A House of Calligraphy’ 전시도 취재하며 서예 캘리그래피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우며 뜻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글씨를 쓸 때 단순히 예쁘게 쓰는 것보다 마음을 담아 표현해 보고 싶어요.
-임서현(서울 한영중 2) 학생모델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예쁘게 글씨를 쓰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있어서 이번에 조용연 작가님을 만나고 ‘글씨상점’ 전시를 취재한 게 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작가님의 작업 이야기를 듣고, 전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글씨를 찾고 알아보는 활동을 하며 자신의 글씨 취향을 알아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전시 마지막에 글씨 취향 영수증을 받았는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전시회 작품을 추천해 주길래 다시 전시장에 돌아가 추천 작품을 보니 더 재밌고 인상 깊었죠. 다양한 형태의 글씨체들을 접하고 저의 취향에 맞는 글씨체를 확인한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정은서(경기도 위례한빛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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