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101화. 장송의 프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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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짧은 순간인데도 오래 마음에 남는 까닭은 

프리렌은 엘프입니다. 판타지 세상에서 인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죠. 엘프 프리렌에게도 오래 마음에 남은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용사 힘멜 일행과 함께 마왕을 쓰러뜨리러 떠났던 모험이에요. 인간에게는 인생을 바꿀 만큼 커다란 여행이었겠지만, 엘프인 프리렌에게는 긴 삶 속의 짧은 한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이상하게도 프리렌의 마음에 남았어요. 처음부터 그 의미를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힘멜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프리렌은 자신이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죠. 그래서 프리렌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옛 추억을 돌아보는 장송의 여행. 그 여정에서 프리렌은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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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송의 프리렌』의 엘프처럼 오래 살지 못하더라도 인생의 모든 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에 따라 우리에게 오래 남는 기억이 될 것이다. ⓒ Getty Images Bank

보통 판타지에서는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면 이야기가 끝나죠. 세상은 구원받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용사 일행의 모험은 전설이 됩니다. 하지만 『장송의 프리렌』은 바로 그다음에서 시작해요. 용사 힘멜은 세상을 떠나고, 함께 여행했던 동료들도 하나둘 나이를 먹죠. 인간의 시간은 빠르게 흐릅니다. 하지만 엘프인 프리렌은 계속 살아갑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왜 그 짧은 시간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아 있을까.

『장송의 프리렌』이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엘프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사람에게는 누구나 추억이 있습니다. 즐거웠던 기억도 있고, 조금 부끄러운 기억도 있죠. 다시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 기억도 있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모든 추억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겠죠. 어떤 기억은 별로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기억들도 모두 내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어요. 어떤 일은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뚜렷하게 떠오르죠. 어렸을 때 친구와 놀았던 일, 처음 칭찬받았던 일, 가족과 함께했던 어느 하루,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일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최근인데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일도 있어요. 분명히 지나간 하루인데, 무엇을 했는지 희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왜 어떤 기억은 오래 남고, 어떤 기억은 금방 흐려질까요. 그 차이는 어쩌면 그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담았는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는 이야기로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여기에 용사의 동료 중 포프라는 소년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강한 영웅은 아니고 모험을 거치며 점점 성장하는 인물이죠. 포프는 어릴 때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 무서워 울었던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어릴 때 한번쯤 해보는 생각이죠. 저 역시도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른들도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어른들도 잘 모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포프가 울었을 때,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단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거야.”

그래서 무서운 마왕 앞에서 모두가 절망에 빠졌을 때 포프는 말합니다. 한순간을 살더라도 불꽃처럼 살겠다고요. 그 말이 용사에게 용기를 주죠. 단순히 멋있는 대사가 아닙니다. 불꽃처럼 산다는 것은 짧게 살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을 아무렇게나 보내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죠.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 좋아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것. 누군가의 말을 소중히 듣는 것. 그런 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프리렌은 아주 오래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녀의 긴 삶 속 모든 시간이 똑같이 마음에 남은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용사 일행과 함께한 시간은 특별했죠. 그 시간에는 함께 걸어간 길이 있었습니다. 나눈 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프리렌 자신도 미처 몰랐던 마음이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프리렌은 그 시간을 다시 돌아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그 시간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품은 채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죠.

『장송의 프리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어요. 오래 사는 엘프가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긴 수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짧은 시간이 한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우리는 프리렌처럼 오래 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오래 남을 순간은 있어요. 그것은 아주 특별한 사건일 수도 있고, 평범한 하루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일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먹은 저녁일 수도 있죠. 좋아하는 책을 읽던 시간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순간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에 내가 어떤 마음을 담았는가. 그 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 그 기억이 나를 어떻게 앞으로 걷게 하는가. 프리렌의 여행은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남깁니다.

오래 산다고 해서 모든 순간이 소중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짧은 삶이라고 해서 기억할 것이 적은 것도 아니죠. 마음을 담은 순간은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을 담아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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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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