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입에서 쇠맛” 1460m 비밀훈련…그뒤엔 홍명보호 ‘대박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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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타주 고지대에서 적응 훈련중인 축구 국가대표팀. [연합뉴스]
불과 400~500m를 달렸을 뿐인데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단거리 전력질주를 마친 것처럼 호흡은 단숨에 가빠졌고, 목구멍에선 쇠맛이 났다. 평소 한국에서 4~5㎞쯤은 가볍게 소화하던 기자였지만, 고작 500m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다.
이를 악물고 1㎞를 더 달려봤다. 허파 깊은 곳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뇌가 산소 결핍이라는 비명을 질러 관자놀이가 찌릿하게 울렸고, 시야는 흐려졌다. 다리는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완주하겠다는 호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걷다 서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걸음걸이는 갈지(之)자로 휘청였고, 막판에는 다리의 감각마저 무뎌졌다. 고지대가 외지인에게 던지는 가혹한 텃세였다. 이 낯선 고통은 솔트레이크시티에 체류한 지 사흘째가 되어서야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고지대 적응 훈련 중인 이강인(왼쪽)과 손흥민. 연합뉴스
해발 1300m의 솔트레이크시티 시내를 직접 달려보고 나서야 비로소 대표팀 선수들이 토해냈던 거친 숨소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인근의 자이언스뱅크 축구트레이닝센터. 로키산맥 자락의 해발 1460m 고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극한 환경을 이겨내고 지치지 않는 ‘강철 심장’을 가진 전사로 거듭나는 비밀 훈련소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달 19일부터 이곳에 월드컵 사전캠프를 차리고 고강도 적응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월드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트레이닝센터를 둘러싼 강철 문은 경비 인력의 삼엄한 통제 속에 굳게 닫혀 있었다. 대표팀과 스태프 외에는 출입이 철저히 제한된 공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아크론 스타디움. [로이터=연합뉴스]
홍명보호가 솔트레이크시티를 사전캠프지로 낙점한 이유는 월드컵 조별리그 1, 2차전이 열리는 멕시코 과달라하라(해발 1571m)와 기후 및 고도 환경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고지대에서는 산소 희박으로 인해 심박수가 급증하고 유산소 운동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물론, 회복 속도도 한참 느려진다. 대표팀 수석주치의 송준섭 박사에 따르면 고지대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는 이르면 2주, 길게는 4주까지 소요된다.
이 때문에 태극전사들도 캠프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드필더 배준호(스토크시티)는 “물도 못 마시고 말도 못 하겠다”며 혀를 내둘렀고, 공격수 오현규(베식타시) 역시 “확실히 회복이 더딘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은 이런 조건에서 90분간 평균 11㎞ 이상을 뛰어야 한다.
훈련 12일 차였던 지난달 31일에도 선수들은 여전히 고지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공격수 조규성(미트윌란)은 솔트레이크 인근 브리검영대(BYU) 사우스필드에서 열린 트리니다드토바고전(5-0 승)을 마친 뒤 “(여전히) 몸이 힘들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결국 우리가 이겨내고 적응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현지 적응 훈련에 나서는 것을 선택한 홍명보 대표팀 감독(가운데), 뉴스1
반면 현지인들에게선 이러한 고통을 찾아볼 수 없다. 솔트레이크시티 토박이인 40대 윌리엄 씨는 “주 3~4회 조깅을 즐기지만 숨이 차서 힘들었던 적은 없다”며 “고지대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이곳 주민들만의 축복인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한국은 이번 조별리그 예선 3경기를 모두 해발 500m에서 1500m 사이의 중고지대에서 치른다. 만약 고지대 ‘현지화’를 완벽하게 마친다면 본선에서 엄청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멕시코를 제외하면 A조의 다른 경쟁국들은 조별리그 내내 고지대와 저지대를 수시로 오가며 피로 누적과 싸워야 한다. 한국이 유리하다.
더 큰 대박 시나리오도 열려 있다.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오른다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개최국 멕시코를 위해 고지대 도시들에 깔아놓은 ‘고속도로’를 한국이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홍명보호가 이번 고지대 정복에 성공한다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질주할 가능성도 있다. 홍명보호는 4일 오전 10시 엘살바도르와 최종 평가전을 치른 뒤, 5일 결전지인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입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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