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김일성의 개인숭배, ‘미국 장로교 선교사’가 싹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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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9일 일요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 군인들이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그려진 차량을 앞세워 행진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32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의 나라라고 『코리안 메시아』의 저자 조너선 청 WSJ 베이징 지국장은 말한다. AP=연합뉴스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습니다.”

김씨 왕조의 건국 신화 추적한 『코리안 메시아』 저자 조너선 청 WSJ 베이징 지국장 인터뷰

2017년 가을,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 서울지국장이던 조너선 청(44)은 북한 초청으로 방문한 평양에서 현지 목사에게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김일성 주의’와 ‘기독교’가 같은 수준의 ‘종교’임을 확신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미국 프린스턴대학 사학과에서 청일 갑오전쟁으로 졸업논문을 썼을 만큼 한반도의 역사와 북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후 북한 김씨 왕조의 탄생과 기독교의 관련성을 깊이 파헤쳤다.

그 집념의 결과가 지난달 15일 『코리안 메시아(Korean Messiah): 김일성과 북한 개인숭배의 기독교적 뿌리』(크노프, 2026)라는 책 한 권으로 미국에서 출간됐다. 한국엔 출간 전이지만, 그가 번역한 한글 제목은 ‘조선의 구세주’. 출판 직후 뉴욕타임스(NYT)·파이낸셜타임스(FT)·포린어페어스 등이 서평을 싣고 올해 가장 주목할 북한 역사서로 꼽았다. 북한 개인숭배의 뿌리가 기독교에 닿아 있다는 참신한 논지는 세계 북한학계의 이목도 끌었다.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서 현재 WSJ 베이징지국장으로 근무 중인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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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이 태어난 지난 4월 15일에 맞춰 『코리안 메시아』를 출간한 저자 조너선 청 월스트리트저널(WSJ) 베이징 지국장이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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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이 태어난 지난 4월 15일에 맞춰 북한 김일성주의에 깃든 기독교 영향을 파헤친 북한 역사서 『코리안 메시아』의 표지. 사진 아마존 킨들 캡처

김일성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13년 WSJ 서울 지국장에 부임하면서 북한 관련 문헌을 읽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김일성이 장로교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이 모든 책에서 늘 한두 줄로만 지나쳤다. 더 깊이 파고든 학술서나 대중서가 단 한 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없으니 직접 쓰기로 했다.”
책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북한은 정치체제가 아니라 종교사회라고 말하고 싶었다. 김일성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그 메커니즘을 이용해 자신만의 국가 종교를 만들었다. 가령 혁명의 10대 원칙은 십계명을 닮았다. 그의 어머니 강반석은 성모 마리아처럼 추앙받았다. 권력이 정점이던 말년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을 평양으로 초대했다. 1998년 개정 헌법의 첫 페이지에는 김일성의 이름이 17번 등장한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언급되는 횟수와 거의 일치한다.”
평양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나.
“2013년에 관광객 자격으로 다녀왔고, 2017년 북한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WSJ 기자 4명과 함께 방북했다. 북한 정부는 WSJ·NYT·뉴요커 세 언론사를 각각 별도 일정으로 초청했는데, 우리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묵었던 금수산태양궁전 근처 고방산 초대소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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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화염과 분노로 불리는 대북 압박이 고조됐을 당시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조너선 청(오른쪽) 월스트리트저널(WSJ) 당시 서울 지국장이 전시물을 살피고 있다. 사진 WSJ 캡처

2017년 방북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던 시기였다. 북한이 미국 언론을 초청한 이유는 하나였다. 압박 정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은 인터뷰, 핵시설 방문 등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 했다.”
대신 무엇을 보고 왔나.
“주말이 낀 일정이어서 ‘평양에 교회가 있다고 하던데,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겠느냐’고 요청해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방문했다. 놀랍게도 교회 내부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한 장도 없었다. 목사와 신도들 모두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고 있었다.”
평소 모습이었을까, 연출이었을까.
“그 중간 어디쯤이다. 북한 정부는 정권에 충성해 온 노년층 신도들에게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예배를 허용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하고 싶어서다. 예배가 끝난 후 목사에게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는 이유를 묻자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이는 북한 정권 스스로 ‘김일성주의’와 ‘기독교’가 같은 층위의 종교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일성은 기독교를 그저 도구화한 전략가였을까. 아니면 실제 신앙심이 깊었을까.
“솔직히 알 길이 없다. 그는 1994년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를 인터뷰한 적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의식적 차용이었다고 본다. 그는 목사들이 대중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보며 자랐고, 그 메커니즘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 소련군이 빠르게 남하하면서 즉각 권력을 잡았는데,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에게 정교한 사전 계획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믿는 것을 내가 통제한다면 충성한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간파했던 것 같다.”
간부층 등에 종교로부터 배울 것을 지시한 사례도 있나.
“김일성이 간부들에게 ‘교회로부터 배우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한 연설 기록이 남아있다. ‘목사들을 보라. 선물도 주고 함께 노래도 부르니까 사람들이 모인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 사례고, 핵심은 무의식적 차용이었다.”
미국 출신 선교사의 복음이 독재국가의 씨앗이 됐다는 아이러니가 흥미롭다.
“역사에는 의도치 않은 결과가 많다. 한반도 분단 자체도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면서 생긴 의도치 않은 결과였다. 나는 선교사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신앙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제안했을 뿐이다. 다만 평양에서 이토록 폭발적인 환영을 받을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 했을 거다.”
미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미국인들은 북한을 볼 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열병식만 떠올리며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김씨 일가가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의 상당 부분은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배운 것에 기반한다. 미국과 북한의 근본적 차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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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4월 28일 조너선 청의 신간 『코리안 메시아: 김일성과 북한 개인숭배의 기독교적 뿌리』(크노프, 2026)의 서평을 게재했다. 사진 FT 캡처

김정은은 기독교의 영향을 적게 받지 않았을까.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가 49년간 구축한 시스템의 상속자다. 김정일은 그 시스템을 거의 바꾸지 않았고, 김정은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지금도 본질은 여전히 김일성이 만든 북한이다.”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까.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주애가 지금 13~14세이고 김정은은 40대 초반이다. 앞으로 30~40년을 더 통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기간 주민들을 김주애에게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가부장적 북한에서 여성 지도자가 가능한가.
“가능하다. 30년이라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교리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집단이다. 권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집단이기도 하다.”
경제 제재나 인센티브 같은 기존 대북 접근법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이 종교사회라면, 경제적 접근은 본질적 한계를 가진다. 이단 종교집단에 ‘돈을 더 줄 테니 신앙을 바꾸라’고 말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돈이 아니라 신앙과 권력이다. 개성공단이나 ‘핵을 포기하면 경제를 도와주겠다’는 접근법의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다.”
통일이 된다면 개인숭배에 익숙한 북한 주민의 심리가 장애물이 될까.
“그렇다. 탈북 후 기독교인이 된 이들조차 ‘유년기 김일성에게 느꼈던 사랑과 충성심을 예수에게 다 주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2500만 주민의 마음이 오랜 세월 김씨 일가에게 통째로 맡겨져 있다. 우리가 심각하게 과소평가하는 문제다.”
중국과 북한의 개인숭배를 비교할 수 있을까.
“둘을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마오쩌둥의 개인숭배는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6년부터 69년 사이 3년간 정점을 찍었다가 꺾였고, 덩샤오핑이 이를 타파했다. 스탈린도 마찬가지다. 사후에 흐루쇼프가 해체했다. 반면 북한의 개인숭배는 81년째 단 한 번도 완화된 적이 없이 오직 공고해지기만 했다.”
중국에서 북한 수준의 개인숭배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건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76년부터 50년 동안 중국인들은 극단적 개인숭배 없이 살아왔다. 베이징에 살면서 지도자 얼굴을 하루에 몇 번이나 마주치나. 관영 매체를 찾아보지 않는 한 거의 없다. 2013년 평양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도자의 초상이 모든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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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빌리 그레이엄(왼쪽) 미국 목사가 김일성(오른쪽) 북한 주석과 포옹하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의 아내 루스 벨 그레이엄은 1930년대 평양의 장로교 선교 단지의 고등학교를 다녔다. 중앙포토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통일교의 문선명을 초대한 김일성의 속내는.
“빌리 그레이엄과의 만남에는 정치적 계산과 어린 시절 기독교에 대한 향수가 함께 작용했다. 반면 문선명과의 만남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었다. 두 사람 모두 평안도 출신의 장로교 집안 출신이고 8세 차이였다. 김일성은 문선명이 신앙으로 거대한 추종 세력을 구축한 것에 묘한 동질감과 존경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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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문선명(왼쪽) 통일교 교주를 김일성(오른쪽)이 포옹하며 환영하고 있다. 코리안 메시아 캡처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교수가 저서를 비판했다.
“마이어스 교수는 ‘기독교 영향을 너무 소심하게 다뤘다’면서 동시에 ‘과장했다’라고 했다. 모순된 비평이다. 북한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개인화된 국가다. 이런 나라를 이해하려면 지도자의 유년기 20년을 반드시 봐야 한다. 나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반(反)나치주의자가 된 경우, 그의 삶은 나치라는 환경에 반응한 결과물이다. 김일성 역시 평생 기독교라는 배경에 반응하며 살았다.”
한국 독자에 전하고 싶은 말은.
“지난 150년간 기독교는 한반도를 뒤흔든 가장 거대한 에너지였다. 흔히 남한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중심지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의 평양이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뿌리에 기독교 유산이 깊이 얽혀 있다는 걸 가장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김씨 왕조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북한에게 핵무기는 대외 보험, 개인숭배는 대내 보험이다. 이 두 보험이 작동하는 한 김씨 왕조가 100년을 넘어 지속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부 쿠데타나 예측 불가한 변화가 올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데이터로 본 분석은 그렇다. 미래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보는 역사가이자 기자로서 냉정하게 바라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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