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첫 일본 수출 대극장 뮤지컬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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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창조주의 섭리에 맞서 굴복당했던 인간의 허물을 벗는 순간 이 순간부터 나를 창조주라 부를지어다."
'죽지 않는 군인'을 만들기 위해 시체를 살려내는 법을 연구하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친구 앙리가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후 '생명 창조'의 과업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앙리의 모습을 지켜본 후 도망치듯 귀가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앙리의 머리. 앙리의 몸과 머리를 접합하고 전기 충격을 주며 "눈을 떠라, 일어나라"고 외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대표 넘버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 과학자의 울부짖음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신이 되려 했던 인간과 인간이 되고자 한 피조물,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프랑켄슈타인'은 대극장 창작 뮤지컬 중 처음으로 일본 수출에 성공했다. 2014년 초연을 거쳐 2024년까지 10년 동안 다섯 시즌 공연을 이어나가며 국내 창작 뮤지컬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창작 초연작으로는 드물게 2014년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뮤지컬’과 ‘올해의 창작 뮤지컬’에 선정되는 등 총 9개 부문을 휩쓸며 호평을 받았다.
극한의 저음과 고음을 오가는 고난도 넘버, 화려한 무대 장치, 1800년대 유럽을 재현한 고풍스러운 의상, 쉴 새 없이 몰아치며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 등 한국 뮤지컬팬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고루 갖췄다.
특히 배우들의 1인 2역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인 2역은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 유준상·신성록·규현·전동석이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격투장 주인 자크를, 박은태·카이·이해준·고은성이 앙리 뒤프레와 괴물을 연기한다.
하이라이트는 괴물을 살해하고 북극에 홀로 남은 빅터가 절규하는 장면. 눈보라 치는 북극에서 괴물의 시신을 끌다가 넘어지는 빅터는 "차라리 내게 저주를 퍼부어라" 외친다.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에 의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 그의 절규는 거친 눈보라 소리에 묻혀 이내 사그라들고 깊은 연민을 남긴다.
규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광기와 그 속에 어린 슬픔, 격투장의 주인 자크의 비열한 면모를 살려냈다. 카이 역시 순수한 앙리 뒤프레와 강제로 '태어남'을 당한 괴물을 180도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다. 두 배우의 발성과 목소리의 합도 좋다. 킬링 넘버가 없다는 평도 있지만 연출과 연기, 극본 등 주요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뮤지컬을 비롯한 문화 산업을 가르치는 원종원 교수는 "생명의 의미, 인간의 한계 등 철학적인 고민을 적절하게 녹여낸 점이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쇼 뮤지컬이나 코미디 뮤지컬이 인기를 끄는 브로드웨이 시장과 달리 한국 관객들은 미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고급스러운 무대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득 대비 높은 뮤지컬 티켓값이 이런 '고급 경험 추구' 경향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공연은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8월 25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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