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셔츠 단추 2개를 푼 차림으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안티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반대) 진영이 큰 혼란에 빠졌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첫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완패한 조 바이든(81) 대통령 후보 교체론을 두고서다. 뉴욕타임스(NYT)ㆍ워싱턴포스트(WP) 등 반트럼프 성향의 미 주류 언론과 진보 진영에서 ‘바이든 교체론’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고, 대선 패배 위기감에 휩싸인 민주당에선 수면 아래 후보 교체 움직임이 포착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무익한 논쟁”이란 반론이 나온다. 무엇보다 바이든 본인의 돌파 의지가 강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자진사퇴론을 일축했다. 그는 29일 뉴욕주 이스트햄프턴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토론에 대한 여러분의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난 (토론이 열린 날) 좋은 밤을 보내지 못했지만, 도널드 트럼프(78)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 뒤 오히려 지지율이 약간 올랐다고 소개하며 “우리가 선거에서 이길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노스캐롤라이나 롤리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서는 노타이에 단추 2개를 풀어헤친 차림으로 나타나 사자후를 토했다. 그는 “나는 옛날만큼 잘 걷지 못하고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며 토론을 잘하지 못한다”고 인정한 뒤 “하지만 잘못된 일과 옳은 일을 구별할 줄 알고 이 일(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지를 잘 안다”고 역설했다. 또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안다”고 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며 “4년 더”를 외쳤다.

이날 질 바이든 여사는 ‘VOTE(투표하세요)’라는 글씨가 도배된 검은 원피스를 입고 바이든과 함께 나타났다. “바이든은 진실을 말했고, 트럼프는 거짓말을 반복했다”며 바이든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했다.

질 바이든 여사가 28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 'vote'라고 쓰여진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AFP=연합뉴

민주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도 바이든에 힘을 실으며 방어막을 치고 나섰다. 오바마는 28일 엑스(옛 트위터)에 “토론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진실을 말하며 옳고 그름을 아는 사람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어젯밤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썼다. 클린턴 역시 엑스에서 “토론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과 역사”라며 “바이든은 지난 3년 간 확고한 리더십을 통해 트럼프가 남긴 수렁에서 미국을 구했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교체 시 대체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사 중 하나다. AP=연합뉴스

하지만 패닉 상태에 빠진 민주당 일각에선 ‘교체 불가피론’ 기류가 감지된다. 익명의 한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은 “바이든 불출마를 설득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말했다.

바이든을 대신할 후보 이름도 나돈다. 당 안팎에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앤디 베셔 켄터키 주지사,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J 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다만 이들 중 공개적으로 후보 교체론을 펴는 인사는 아직 없다.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한때 ‘바이든 불출마’를 외치며 “민주당엔 뉴 리더가 많다”고 했던 민주당 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29일 “바이든이 사퇴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존 페터먼 민주당 상원의원은 “2022년 선거 때 제가 토론에서 패배한 다음날 파이브써티에잇은 2%포인트 차 패배를 예상했지만 나는 5%포인트 차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며 “진정들 하라”고 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나이 차이는 불과 세 살로, 고령이라는 점을 대통령 업무 적합도와 연결시켜 유불리를 따지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일부 있다.

바이든 캠프도 진화에 나섰다. 29일 미 CNBC 방송에 따르면 바이든 측은 토론이 벌어진 27일 밤부터 이튿날인 28일 밤까지 후원금 270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자진 사퇴를 촉구한 뉴욕타임스(NYT) 28일(현지시간) 사설. 사진 NYT 홈페이지 캡처

그럼에도 친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을 중심으로 바이든 하차론이 커지고 있다.

NYT는 ‘조국을 위해 바이든은 대선 경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민주당은 트럼프를 꺾을 유능한 후보 선출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9ㆍ11 이후 바이든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함께 여행하는 등 친분이 깊은 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도 “토론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바이든은 좋은 사람이지만 선거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잘 알려진 밥 우드워드 WP 부편집장은 “토론 때 바이든의 모습은 너무 나쁘고 끔찍했다”며 “바이든이 대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등에서 민주당을 후원하는 큰손들이 TV 토론 이후 바이든 재선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급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체 후보군 얘기를 나눴다는 소식이 AP통신, NYT 등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후보 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먼저 바이든이 민주당 전당대회 전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날 경우 그간 확보한 당 대의원 3894명(전체 3937명)은 각자 선택한 후보에 자유 투표를 할 수 있다. 바이든이 버티더라도 교체는 가능하다. 전당대회 절차 전문가인 일레인 카마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가능성이 작지만, 있긴 하다”며 “바이든 동의 없이 후보 교체가 가능한 길은 강력한 상대가 등장해 약 4000명의 대의원 과반을 설득하는 방식”이라고 WP에 말했다.

8월 전대가 끝난 뒤라도 후보 교체 가능성이 아예 닫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당규에는 당 의장이 새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전국위원회(DNC)를 소집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돼 있다. 다만 새 후보 선출 과정에서 더 큰 혼란이 올 거라는 우려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 대승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다음날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서 지지자 수천 명이 참석한 대규모 유세 집회를 가졌다. 그는 “바이든이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며 “(교체 후보군 중) 뉴섬 주지사는 주지사로도 출마하기 어렵고, 해리스 부통령은 논외 인사로 바보 같은 조 바이든이 가장 인기가 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트럼프와 경쟁했던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바이든을 그대로 후보로 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 젊고 활기차고 검증받은 사람을 데려올 것”이라며 “공화당은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