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끝까지 함께 못해서 미안해”…이선균 그 대사, 삭제 고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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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은 이선균(왼쪽) 첫 재난영화 . 김태곤 감독은 “ 스펙트럼 넓은 배우가 재난물을 안했단 게 신선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사진 CJ ENM ]

“지난주 금요일까지 영화 후반작업을 했는데, 편집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끝까지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그게 형을 위하는 길이니까요.”

1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곤(44) 감독의 목소리는 고(故) 이선균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이선균의 유작이 됐다. 그의 또 다른 유작 ‘행복의 나라’는 다음달 14일 개봉한다.

‘탈출’은 올 여름 한국영화 중 최대 규모(순제작비 185억원)다. ‘신과함께’ ‘더 문’의 김용화 감독이 시각특수효과(VFX) 전문회사 덱스터스튜디오를 통해 제작 및 공동각본에 참여했다.

영화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위기의 인천 공항대교에서 차량 100중 추돌이 벌어지고,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이 풀려나며 벌어지는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렸다. 이선균이 유학을 떠나는 중학생 딸 경민(김수안)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던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정원 역을 맡았다. 지난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이선균의 또 다른 주연작 ‘잠’과 나란히 초청돼 상영 후 4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말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개봉이 불투명해졌다가, 올 여름 관객과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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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곤

김 감독은 “촬영 당시 팬데믹 기간이라 선균 형과 방에서 술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면서 “칸 영화제 첫 상영 때 관객 반응이 좋아서 저희끼리 자축했던 기억이 난다”고 돌이켰다.

긴박하게 물량 공세를 쏟아내는 초반부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12.3㎞의 왕복 6차선 교량을 촬영 스튜디오에 세트로 지어 300대 이상 차량을 동원했다. VFX로 만든 11마리 군견의 정교한 구현을 위해 무술팀이 수개월 간 개의 움직임을 마스터해 컴퓨터그래픽(CG)용 블루 수트를 입고 배우·카메라와 동선을 맞췄다.

하지만 중반 이후 전개 및 인물 사연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칸 영화제 당시 현지 외신에서도 “‘괴물’ ‘부산행’ ‘해운대’ 같은 재난영화의 나쁜 복제판”(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등의 평가가 나왔다. 군견 CG도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이같은 지적을 감안해 김 감독은 후반 작업을 추가로 진행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했다. “개가 착지할 때 근육·털 움직임에 사실적인 무게감을 주기 위해 추가 CG 작업을 했다”면서 “상영시간을 줄이고 음악 등 감정 과잉된 부분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재난 상황을 견인하는 이선균의 연기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영화 ‘킹메이커’의 정치 모사꾼, ‘끝까지 간다’의 부패 형사, ‘기생충’의 이기적인 사장 등 전작의 캐릭터들이 연상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쓸쓸한 얼굴, ‘하얀 거탑’의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면모도 스쳐 지나간다.

김 감독은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로 ‘넓은 스펙트럼’을 꼽았다. “(이선균이) 재난영화를 한번도 안해서 오히려 신선했다”고 했다.

드라마의 주축은 정원과 경민의 부녀 관계다. 정원은 자신이 모시는 국가 안보실장(김태우)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권력지향형 야심가다. 동화작가 아내와 사별한 뒤 그가 홀로 키운 딸은 그런 아빠가 실망스럽다.

10대의 두 아들을 둔 이선균이 정원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김 감독은 “선균 형이 ‘츤데레’(보이지 않게 챙겨주는 것을 뜻하는 일본 속어) 같다. 자식들한테도 그런 듯하다. 그런 면모를 정원에게 투영했다”고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정원이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아내의 동화책 속 문장을 읽는 대목은 실제 이선균의 부재를 떠올리게 한다. 김 감독은 “관객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어 편집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남겨 뒀다”고 말했다.

‘탈출’은 칸 영화제 초청 당시 프랑스·미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홍콩·일본 등 전 세계 140개국에 판매됐다. 손익분기점은 400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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