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이종찬 "국정원 안일함에 정보원 희생…누가 정보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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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광복회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인텔리전스 커뮤니티(Intelligence community·정보 기관의 세계)에선 적과 동지가 없다. 오로지 국가 이익만 있을 뿐이다.”

미국 연방 검찰이 등록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한국의 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것과 관련, 이종찬(88) 전 국정원장(현 광복회장)이 18일 "국정원 요원들이 안일하게 행동해 정보원을 희생시켰다"고 비판했다. 주미 대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이 테리와 만나 식사를 하거나 명품백을 사주는 장면이 고스란히 미 연방수사국(FBI)에 포착되는 등 아마추어적 첩보 행태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의 초대 안전기획부장(1998 3월~99년 5월, 임기 중 국정원으로 개칭)을 지낸 원로다. 제11·12·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독립 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그가 친정 격인 국정원의 정보 활동 행태에 쓴 소리를 쏟아낸 건 누구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꿰뚫고 있어서다. 앞서 미 뉴욕 남부지검은 테리가 지난 2013년부터 10여년 간 적법한 신고 없이 한국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명품 가방·코트, 고급 식사와 금전 등을 받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로 그를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주미 대사관 정무2공사 등 국정원 요원들과 테리 간 대화 내용, 명품 가방을 공여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사진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터뷰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광복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이 전 원장과의 일문 일답.

파장이 크다. 통상적인 국정원의 정보 수집 관행과도 달랐다고 보나.
“그 사람(테리)에게 정보를 얻는 건 당연하고, 그런 일을 안 하면 국정원이 있을 이유가 없다. 또 그 사람(테리)이 (한국 정부)대리인으로 등록만 했으면 문제가 안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보관(국정원 요원)이 왜 명품 가방을 사주는 장면을 사진(CCTV)에 찍히고 ,결제하면서 외교관 면세 혜택은 왜 받나. 너무 안일하게 행동했다. 실망스럽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단기적으로 투자해 정보를 빼먹겠다는 얕은 생각으로 정보원을 희생시킨 것이다. FBI는 이 사건 수사를 위해 10년을 감시했다. 그 동안 워닝(경고)도 한 번 줬다는 거 아닌가.(2014년) 그 때 정신차렸어야 했다. 이 사람(테리)도 아주 똑똑하고 우리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미국 사회에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은근히 도와야지, 우리가 잘못했다. 특히 명품을 사주는 건 정보원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제 누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려 하겠나."
해외에서 정보 수집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76년 박동선 사건이 있고 나서 내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1981년), 미국에 가니 아무도 나를 안 만나줬다. 작은 선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미 관계가 심각하게 경색된 것이다. 이 때의 경각심을 계속 유지했어야 했다. 현장 정보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활동을 정밀화하고, 세심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박동선 사건은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가 한국계 미국인인 박씨를 동원해 미 의회에 현금 살포 등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 워싱턴 조야에 큰 파장을 남긴 정치 스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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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수미 테리 미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정보원을 관리할 땐 무조건 장기적으로, 그 사람이 그 사회에서 난처하지 않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텔리전스 커뮤니티에선 적과 동지가 없다. 오로지 국익만 있을 뿐이다. 우방국에서 활동하더라도 사방이 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가까운가. 하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한 유대인 조너선 폴라드를 잡아 종신형을 선고했다. 최근에야 석방(2015년)됐다. 내가 재직할 시절에도 우리 측 직원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다가 러시아가 이를 문제 삼아 PNG(외교상 기피 인물)를 내버렸다. 상호주의로 우리도 러시아 요원을 추방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정보관(국정원 요원)들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방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지금 국정원장(조태용)이 미국을 잘 아는 분이다. CIA(중앙정보국)를 넘어 대통령 직속 DNI(국가정보국장, 애브릴 헤인스)와 직접 이야기기해 바기닝(타협)을 해야 한다. ‘대리인 등록을 안 한 잘못은 있지만, 한국을 돕고 싶어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처벌하면 우리가 미국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 문제는 여기서 해결을 하자’고 아주 솔직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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