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거야 이젠 초유의 방통위 직무대행 탄핵…또 악순환 치닫는다

본문

17219387847521.jpg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가운데),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왼쪽), 한민수 과방위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상인)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22대 국회 들어 탄핵이란 말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지만, 아직까진 거야(巨野)의 정치적 수사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탄핵이 단순한 말을 넘어 조자룡 헌 칼 쓰듯 상대를 찌르는 무기로 쓰이는 곳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다. 이미 두 차례 탄핵 카드를 꺼내 들어 방통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야기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엔 방통위원장 대행 탄핵이란 초유의 수단을 동원했다.

민주당은 25일 오후 1시39분 국회 의안과에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상인) 탄핵소추안’을 접수했다. 민주당 의원 170명 전원이 서명했다. “탄핵안이 발의된 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보고한다”는 국회법 130조에 따라 탄핵안은 이날 본회의 개의 직후인 오후 2시 19분 보고됐다. 발의부터 보고까지 40분 걸렸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6월 각각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전 위원장은 탄핵 표결을 앞두고, 김 전 위원장은 탄핵안 본회의 보고 직전에 그만뒀다. 두 사람의 임기는 98일과 186일이었다.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길게는 수개월 동안 방통위 기능이 정지되는 탓에 이를 피하기 위한 우회로였다.

탄핵대상(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 직무대행에 대한 탄핵안 발의는 헌정사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은 “기관장이 아닌 부위원장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추경호 원내대표)고 반발했지만, 민주당은 “직무대행이라고 탄핵 못 하면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권한이 무력화된다”(윤종군 원내대변인)고 맞섰다. 지난해 5월 방통위 상임위원에 임명된 이 부위원장은 그해 9월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2일 김 전 위원장이 사퇴한 후 이날까지 24일째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17219387848952.jpg

지난 6월 당시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홍일 방통위원장(왼쪽)과 이상인 부위원장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은 본회의 보고 24~72시간 내 표결 원칙에 따라 26일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크다. 두 전직 위원장의 탄핵 국면 때와 마찬가지로 이 부위원장도 26일 오전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방통위는 초유의 ‘0인 체제’를 맞을 위기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25일 끝났지만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한 논의 절차가 남아있다. 5인 합의체 기구인 방통위의 의결 정족수는 상임위원 2인이다.

민주당이 유례가 없는 직무대행 탄핵을 추진하는 건 8월 중순부터 공영방송(KBS·MBC·EBS) 이사진의 임기가 순차적으로 끝나는 것과 직결돼있다. 특히,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진의 임기 만료일(8월 12일)이 목전이다. 이 부위원장 체제에서 방문진 이사 후보 32명의 명단을 공개한 방통위는 15~19일 국민 의견 청취도 마쳤다. 이진숙 후보자가 임명된 후 곧바로 선임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여권에서는 “민주당의 묻지마 탄핵은 MBC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공영방송인 MBC가 친민주당 성향의 뉴스를 계속 내보내왔다”며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현 방문진 이사 9명 모두 교체되면 MBC 경영진도 바뀔 것이라 보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라디오에서 “이 부위원장을 향해 ‘1인 체제에서 방문진 이사 및 KBS·EBS 이사 선임과 관련한 행정 절차를 밟는 것은 안된다’고 경고했다”며 “그런데도 불법행위가 이어져 오고 있어 가능한 수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7219387850432.jpg

25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로텐터 홀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양측의 타협이 불가능한 만큼 향후 수순도 사실상 예정돼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에서는 “이 부위원장 사퇴 직후 상임위원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서두르면 2인 체제를 곧 복원할 수 있다. 이후 방문진 이사 선임을 의결하면 된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상임위원은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민주당은 또다시 탄핵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김현 의원은 통화에서 “이 후보자가 임명된 뒤 불법행위를 하면 탄핵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결국 ‘임명→탄핵 추진→자진 사퇴’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안팎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계파색이 옅은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방문진 이사 교체를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게 민주당의 현실”이라며 “잇단 탄핵 카드에 여론이 등 돌릴까 우려된다”고 했다.

박명림 연세대(정치학) 교수는 “방통위는 독립적 위치에서 공공성과 공익성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인데 정파적으로 치닫고 있다”며 “정치권의 대결과 충돌의 장소로 쓰인다면 양쪽 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813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