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주한 미대사 "모든 美전략자산, 언제든 한반도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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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터뷰 -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미국이 보유한 모든 전략자산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 협의 하에 언제든 (한반도로)불러들여 가동할 수 있게 됐다는(called in to use) 게 중요합니다. 특정 자산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닿는 모든 자산이 그 대상입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에서 만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의 말엔 힘이 실려 있었다.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더 확신에 찬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한·미가 합의한 '미국의 핵 자산에 대한 한반도 임무 부여'가 필요 시 특정 핵 자산이 한반도에 우선적으로 배치된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한반도 임무 수행을 위해)특정 자산을 확보해 놓는 게 아니라 모든 자산이 북핵 억제를 위해 불러들일 수 있는 상태에 있게 됐다는 얘기"라며 이처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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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미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앞서 한·미가 지난 11일(현지시간) 핵협의그룹(NCG) 공동지침 문서(가이드라인)에 합의한 뒤 윤석열 대통령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미국의 핵 자산에 한반도 임무를 특별 배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한반도 임무'와 관련한 구체적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미국 측 고위 당국자가 "미국의 모든 자산"이 임무 부여를 받은 것이라고 처음 밝힌 것이다. 이는 미국의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골드버그 대사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건 그가 외교관으로서 갖춘 다양한 경험 때문이다. 골드버그 대사는 지난 2022년 7월 주한 대사로 부임하기 전 콜롬비아, 쿠바(대사대리), 필리핀 대사 등을 역임했다.  동맹·우방·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상대해봤다. 미 대사의 말과 행동이 주재국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 지 잘 안다는 뜻이다.

볼리비아 대사로 재직할 때(2006~2008년)는 반미 성향의 에보 모랄레스 정권이 그를 외교상 기피인물(PNG)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는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잔뼈가 굵었다. 2018년 미 국무부에서 직업 외교관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인 '경력 대사'에 올랐다.

'트럼프 1기' 때도 대사로 일한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시 확장억제 관련 합의가 지켜지지 않을 우려에 대해선 "확장억제 관련 한·미 합의는 양국 모두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11월 대선 결과가 어떻든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확장억제 관련 질문마다 "미국의 모든 자산을 동원하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내가 확실히 설명했는가"라고 여러 차례 되물었다. 중요한 질문에는 "이전 질문에 대해 한 가지만 덧붙이겠다"며 수차례 순서를 되돌려 답변을 보충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약 45분 간 이어진 인터뷰에서 30여개의 질문에 빠짐없이 답했다. 불필요한 해석이나 추론이 없는 돌직구였다.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를 묻자 "김정은만 알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북한에 대한 통찰력을 모든 측면에서 갖출 수 없기 때문에 판단할 때 신중해야 한다. 독재자 김정은이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라는 이유였다. 김정은의 딸 주애에 대해서도 "김정은의 후계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보다 미사일 등 북한 무기를 과시하는 현장에 딸을 데려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가 더욱 우려스럽다"고만 했다.

그래도 유사한 질문을 던지자 "김정은에게 물어봐야 한다. 김정은이 여러분 인터뷰에 응하겠느냐"고 농담으로 받기도 했다.(기자는 "그러면 좋겠다. 꿈에서나 가능하겠지만"이라고 답했다.)

'베테랑 직업 외교관'인 그에게 한국 부임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서울이 아닌 워싱턴이었다"며 '워싱턴 선언'을 도출한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꼽았다.

사실 한국 대통령이 단독 방미가 아닌 다자회의 참석차 미국에 갈 때 주한 미 대사가 움직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골드버그 대사는 이달 초 윤 대통령의 하와이 인도-태평양 사령부 방문과 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동행했다. 작지만 상징적인 행보였다.

그는 서울에 대해 "진정한 역동성(dynamism)의 도시"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식을 먹는 사진을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종종 올린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순두부와 비빔밥을 꼽았다. 그는 "김치도 여러 번 만들었다"고 했는데, 실제 지난해 11월엔 윤 대통령 부부와 함께 지역 소외 계층을 위해 직접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한번 맛봤으나 다시 먹어보고 싶지 않은 음식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없지만, 도전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은 음식은 있다"고 했다. 그가 "살아 움직이는 작은 문어"라 표현한 건 산낙지였다. 곧이어 본격적인 확장억제와 관련한 질문을 시작하려 하자 "음식 질문은 더 할 게 없느냐"고 웃으며 한국 음식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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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NCG 가이드라인에 담긴 '일체형 확장억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나. 
재래식 전력뿐 아니라 전략 자산에 이르기까지 가용한 모든 수단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미국의 핵과 전략 자산 운용 관련 계획 수립부터 정보 공유, 결정 과정에 전부 포함된다. 억제를 위해서든 아니면 실제 위기의 상황이든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관련 한·미 협의는 NCG 뿐 아니라 정상 간에도 이뤄질 것이다.
특정 자산에 우선적으로 한반도 임무가 배정되는 것인가.
특정 자산(certain assets) 아닌 모든 자산(all the assets)이 해당한다. 한·미가 합의할 경우 북핵 억제를 위해서라면 모든 자산을 불러들일 수 있다. 지금도 미국의 전략자산은 한반도에 상시 배치돼 있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내려보내자 한국은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는데.
북한의 우려스러운(disturbing) 도발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대응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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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미국의 확장억제와 관련해 "가용한 모든 자산을 활용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북한의 도발과 북·러 밀착으로 인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원하는 여론이 상당하다.
미국의 핵우산이야말로 동맹이 더 잘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이다. 미국의 전략 무기를 한·미 동맹의 일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밝혔다. 
대북 제재가 소용 없다는 의견도 많은데.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재를 통해 북핵 프로그램 진전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원한다는 것만 봐도 제재의 효과는 증명됐다. 제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달성을 위한 정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던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 지난 4월 해체됐다. 대체 메커니즘 구축 논의는 어떤가.
두세달 안에 가시적인 결과를 볼 수 있길 바란다. 새 메커니즘은 가능하다면 유엔 안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기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며 패널을 없애버린 러시아의 고집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다.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주의 세계에서 거부 당한 두 명의 고립된 지도자 간 협력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각각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최대 침략자'다. 그런 이들이 합의(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를 맺고 미래 침공에 함께 대비하겠다는 건 매우 위선적(hypocritical)이다.
북·러 밀착에 대응해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재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그간 인도적 지원, 재건 지원을 통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기 위한 국제사회 연대에 함께한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살상 무기 지원 여부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문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모두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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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북한 수도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골드버그 대사는 한반도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해 "중국이 문제의 일부가 될 게 아니라 해법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두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또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뇌관인 대만 해협,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 '유사시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윤 대통령이 이미 꽤 명확히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규칙에 기반한 질서와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했다"면서다.

미국의 대중 정책인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small yard, high fence·제한된 분야에서 강도 높은 규제)와 관련, '마당'이 점점 넓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이렇게 묻겠다. 중국이 군사·경제적으로 유용한 최첨단 기술을 과연 우리에게 팔까. (기자: 아니다.) 그러면 반대로 왜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쓰일 수도 있는 기술을 내줘야 하나. 나는 (대중 견제의) 마당이 넓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울타리는 여전히 매우 높게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미국이 마련한 가드레일과 수출통제를 피할 수 없길 바란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레임덕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 동맹에 영향을 줄까. 
바이든 행정부는 반년이나 남았다. 한·미 동맹은 71년 동안 유지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일들을 했다. 한·미·일 협력 체계를 구축한 것도 성과인데 이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윤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 덕분에 가능했다.
한국 정부가 현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해 트럼프 측 접촉에 소극적이란 분석도 있다.
(미 대선 국면에서) 각국 정부가 양쪽 캠프 모두와 관여(engage)하는 건 적절한 일이다. 한국 선거 때 미국이 그랬듯 한국도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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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국 대선 후보 첫 TV토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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