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죄수복? 톱10 반전 일냈다…무신사가 올림픽 단복 손 댄 이유 [비크닉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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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세련됐다”는 호평부터 “밋밋하다”는 혹평까지. 지난 9일 공개된 파리 올림픽 한국 국가대표 단복을 두고 반응이 냉·온탕을 오갔습니다. 전통적인 벽청색 옷감에 관복의 각대를 재해석한 벨트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에 대해 일부 해외 네티즌들이 죄수복이라 조롱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여론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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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단복 모델로 참여한 근대 5종 김선우 선수. 사진 무신사

단복 논쟁은 다른 나라 단복이 하나둘씩 공개되면서 더 뜨거워졌어요.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소속 프랑스 남성 명품 브랜드 ‘벨루티’가 고급스러운 느낌의 프랑스 단복을, ‘룰루레몬’이 화려한 캐나다 단복을, 또 ‘미셸앤드아마존카’가 국가 정체성을 잘 드러낸 몽골 단복을 내놓으면서 비교 아닌 비교가 시작된 거죠. 원래 개막식 이후 여러 매체에서 ‘베스트∙워스트 유니폼’을 뽑는데, 올해는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에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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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각국 선수단 단복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은 몽골 선수단의 유니폼. 몽골의 전통과 디자인을 잘 살려 후한 점수를 받았다. 사진 미셸 앤드 아마존카

하지만 개막을 이틀 앞둔 24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와 스타일이 만난 최고의 올림픽 유니폼 톱(TOP) 10’으로 한국 단복을 소개했습니다. IOC 측은 “깔끔하고 가벼운 벨트 수트로 세련미를 드러냈다”고 평가했죠. 앞서 지난 19일엔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한국 단복이 “젊은 감성이 느껴진다”며 ‘올림픽 단복 베스트 10’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단복이 이슈가 되는 건 그저 행사에 잠깐 입는 옷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전국의 전통과 철학, 정체성을 드러내며 각 나라의 ‘멋’을 뽐낼 기회죠. 올림픽 개∙폐회식이 총성 없는 패션 전쟁터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랄프 로렌’, 이탈리아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식으로 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나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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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 개막을 앞둔 23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개막식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올림픽에서 그 막중한 임무를 맡은 한국 브랜드는 ‘무신사 스탠다드(이하 무탠다드)’입니다. 패션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가 2017년 론칭한 PB이자 제조·유통 일괄(SPA) 브랜드죠. 그간 삼성물산, 코오롱 FnC 등 대기업 계열 패션 브랜드가 도맡아 온 올림픽 단복을 7년밖에 안 된 새내기 브랜드가 제작하는 건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입니다. 대체 이 루키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걸까요.

대한체육회가 ‘픽’…“MZ 선수 사로잡을 단복 만들자”

무탠다드가 파리 올림픽 단복을 만든 배경엔 '젊은 브랜드'라는 포지션이 자리합니다. 대한체육회가 10~30대로 구성된 국가대표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브랜드를 택한 거죠. 진병준 대한체육회 마케팅담당관은 “젊은 팀코리아 선수들의 ‘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국내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무탠다드와 손잡은 이유”라고 설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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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스탠다드가 지난해 제작한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복. 사진 무신사

사실 무탠다드는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단복 제작을 맡았습니다. ‘백의민족’ 테마로 흰색 데님 재킷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당시 단복을 입은 선수들은 “평소에도 입고 다녀도 될 멋진 옷”이라고 평가했대요.

슬랙스 한장으로 인기…커뮤니티에서 독보적 브랜드 되기까지

무탠다드는 태생 자체가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나왔습니다. 스트리트 패션 등 개성 강한 브랜드가 많이 입점한 무신사에서 화려한 옷에 매칭할만한 기본 아이템이 부족하다는데 착안, ‘뉴 베이직’ 스타일을 내세웠죠. 눈에 띄는 디자인이나 로고 대신 기본에 충실한 데일리룩을 주로 만들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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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스탠다드는 2022년 서울 성동구에서 슬랙스를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무신사

대표적인 게 슬랙스입니다. 2019년 당시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넣어 입는 ‘모나미룩’이 한창 유행일 때 인기를 끌었죠. 일주일 내내 입어도 좋아 ‘현대판 전투복’이라고 일컫던 모나미룩이 2030의 대세가 되면서, 무탠다드의 슬랙스가 날개 돋친 듯 팔립니다. 지금까지 판매된 수량만 550만장이 넘어요. 종류 역시 43가지로 다양하죠.

오프라인으로 외국인 모객…‘올∙무∙다’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

무탠다드는 2021년 서울 홍대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어요. 오프라인에 진출한 이유는 온라인으로 본 무탠다드의 옷을 직접 입어보고 구매하고 싶다는 소비자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래요. 지금까지 무탠다드는 전국에 11개 매장을 냈고, 3년 만에 누적 방문객 700만명을 넘어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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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에 있는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 사진 무신사

재밌는 건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는 소비자층이에요. 지난 3월 문을 연 서울 명동 매장의 외국인 매출 비율은 45%를 차지하죠. 매출 절반이 외국인들의 지갑에서 나온 거예요. 홍대점의 외국인 매출도 29.1%입니다. 지난 5월 기준, 전체 오프라인 매장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342% 증가했죠. 이들 대부분 SNS와 한국인 친구 추천을 받아 방문했는데, 별도의 외국인 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얻은 성과예요. 덕분에 외국인 관광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올∙무∙다’(올리브영∙무신사∙다이소)라는 별명도 얻었죠.

유니클로· H&M 넘는 한국 대표 SPA 브랜드 될까

오프라인 매장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무신사 플랫폼의 타깃층도 넓히고 있어요. 무신사의 주요 소비자는 2030 남성 고객인데,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최근 여성 소비자도 확보하고 있죠. 2020년부터 여성 의류 라인을 확대하고, 오프라인 매장 1층에 여성 코너를 마련한 덕분이에요. 오프라인 매장 방문을 통해 무신사 앱에 가입한 여성 고객은 지난 4월 기준 전년 대비 820% 증가했어요. 지금은 10대 후반~30대 초반 소비자가 대부분이지만, 오프라인 매장으로 고객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있죠.

온∙오프라인 시너지가 나면서 무신사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9930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해요. 이 가운데 무탠다드의 매출은 오프라인 매장을 열기 시작한 2021년엔 537억에서 지난해 2054억원으로 2년 만에 4배가량 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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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스탠다드가 공개한 파리 올림픽 단복. 사진 무신사

무탠다드의 다음 목표는 독보적인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에요. 한국의 유니클로를 목표로 하냐는 질문에 이건오 무신사 스탠다드 본부장은 “누군가랑 비교하기보다는 하나의 독자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다”며 “무신사 PB라는 인식도 넘어서고 싶다”고 말했어요.

‘비크닉’ 유튜브 채널의 ‘B사이드’에선 무신사가 단복을 만든 이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뤄봅니다. 음모론적인 질문으로 브랜드의 의도를 파헤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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