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세계유산' 日사도광산 가보니…곳곳에 조선인 노동자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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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27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놨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일본의 보물에서 세계의 보물이 됐다"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현지를 방문해 사도광산 가치를 접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X(옛 트위터)에도 글을 올려 “전통 수공업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유럽과 미국의 기계화와 비견할만한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외상도 입장문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세계유산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세계유산 등재 소식에 이날 사도 주민들은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숙박업 관계자는 환한 표정으로 “사도시민들이 세계유산 등재 발표를 다 함께 지켜봤다”면서 “자축의 의미를 더해서 오늘밤 축제에서 봉오도리(盆踊り·백중맞이 춤)도 출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령화 등으로 인구가 5만명에 불과한 사도는 광업이 쇠퇴하면서 주요 상점가가 텅빌 정도로 쇄락을 거듭해왔다. 주민들 입장에선 세계유산 등재가 관광업으로 도시를 살릴 호재인 셈이다.

세계유산된 사도광산 가보니

기자는 세계유산 등재 결정 하루 전인 지난 26일 일본 니가타현에서 사도섬으로 향하는 배편에 올랐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 기간이 시작된 이날 사도섬으로 향하는 쾌속선은 만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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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에도시대 금맥을 따라 채굴작업이 이뤄지면서 산이 갈라진 형태로 남아있다. 사도=김현예 특파원

배 안에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추천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시간 넘게 달리자 보이기 시작하는 사도섬. 관광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다.

사도섬에 내려 자동차로 40여 분 달려 사도광산에 도착했다. 매표소 앞 정류장으로 손님을 가득 태운 버스들이 속속 도착했다. 사도광산 내의 갱도는 약 400㎞. 일본은 이중 두 곳을 관광코스로 전시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사도광산 관계자는 “일 년에 14만~15만명이 찾아오는데 세계유산 등재가 되면 관광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도광산엔 “조선인 모집, 귀국” 두줄 기록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갱도는 두 곳. 세계유산 등재 기간으로 일본이 정했던 에도시대(1603~1868)에 손으로 금을 채굴했던 당시를 재현한 소다유(宗太夫)갱도가 첫 번째다. 돌아보는데 약 30분이 소요되는데 400년 전 이뤄진 채굴방식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마네킹 인형 등을 동원했다. “빨리 일 마치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인부들의 모습을 재현해놨다.

또 다른 한 곳은 근대기인 메이지(1868~1912년) 시대 이후 광석을 캐내는 데 쓰인 도유(道遊 )갱도. 광석을 빠르게 실어나르기 위해 바닥엔 철로가 깔렸고, 한쪽엔 당시에 사용했던 광석운반차가 전시돼 있었다. 총 길이는 1.5㎞ 정도로, 둘러보는 데 40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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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도유 갱도. 김현예 특파원

도유갱도를 나서면 근대 기술을 도입한 기계공장 유적이 있다. 이곳 벽면에 일본은 사도광산의 역사를 일본어로만 정리해놨는데, 조선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단 두 번. ‘쇼와 14년(1939년) 노무동원 계획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으로의 모집이 시작된다’와 ‘쇼와 20년(1945년) 9월 패전으로 조선인 노동자가 귀국했다’는 것이다. 1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단 사실은 빠져있었다.

사도섬 곳곳에 남아있는 조선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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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8일 사도광산에 끌려와 강제로 일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역사를 공개할 예정인 아이카와향토박물관..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선광장. 김현예 특파원.

사도광산에선 조선인 노동자들의 흔적은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광산촌’ 지역인 아이카와((相川) 일대에선 달랐다. 이곳엔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며 별도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전시실을 만든 아이카와((相川)향토박물관을 비롯해 조선인 노동자들의 기숙사와 취사장터가 남아있다.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은 내진 공사를 거쳐 올해 5월 새단장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는데,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전시실이 마련된 지역(2층 E구역)으로 가는 길은 오는 28일 일반공개를 앞두고 출입 금지 상태였다.

이곳은 과거 일본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곳으로 사도광산관리사무소로 쓰이다 사도시가 관리하는 현재 형태의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총 5개 구역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란 이름으로 전시실을 꾸렸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발령한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조선인 근로자들이 동원돼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1000명 이상의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이곳에서 일했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강제동원 사실은 빠졌지만 당시 조선인 노동자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사료 등이 전시된다. 셔틀외교 재개와 함께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는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발언도 함께 다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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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남아있는 조선인 취사장터. 표지판 하나 없어 주민의 도움을 받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취사장터는 잡초가 우거진 채 한켠엔 빨래 건조대가 놓여있을 정도로 방치된 상태였다. 김현예 특파원

이곳 대각선 맞은편엔 세계유산에서 제외된 부유선광(浮遊選鉱)장이 위치해있다. 근대시설로 이곳에선 사도광산서 캐낸 광석을 분류해 금과 은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언덕배기 마을인 다이쿠(大工町)마치. 이곳 주민인 나가하마(81)는 잡초가 우거진 터를 가리키며 “이곳이 바로 조선인 취사장이 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취사장이 있던 곳은 표지판 하나 없는 상태였다. 나가하마는 “탄광에 끌려온 조선인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이후에 이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조선인 출신 친구들이 같은 반에도 7~8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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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에 끌려와 강제로 일했던 조선인 기숙사가 있던 터. 조선인 기숙사가 사라진 이곳엔 구치소가 들어섰고, 이곳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현예 특파원

취사장터에서 걸어 5분도 채 되지 않는 곳엔 조선인 기숙사 터가 있다. 현재는 구치소 표지판만 걸려있는데, 일본 정부는 이곳에 조선인 기숙사가 있다는 안내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일본은 1954년 이곳에 구치소를 세워 1972년까지 사용했는데, 국가 문화재로 등록돼있다. 이곳 마을 주민은 “이곳에 조선인 기숙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면서 “어떤 경위로 조선인 기숙사 터에 구치소가 들어섰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구치소 안에 비치된 내부 자료나 시설물엔 구치소 폐쇄 후엔 창고로 쓰이다가 지난 2010년 수리를 거쳐 문화재로 공개되고 있다는 설명만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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