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장 추진 기업 36% “상법 개정 시 상장계획 재검토 또는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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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상장기업 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설명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거래소

상장 추진 기업 3곳 중 1곳은 상법이 개정된다면 상장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할 계획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해 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재계가 난색을 표한 셈이다. 재계는 기업이 상장을 꺼린다면 상법 개정이 자본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8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 15~19일 국내 비상장기업 23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장 추진 기업 중 36.2%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상장 계획을 재검토(34.5%) 또는 철회(1.7%)하겠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기업은 55.2%였고, 밸류업 기대감으로 더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기업은 8.6%로 집계됐다.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은 전체 응답 기업의 46.4%였다.

국내 비상장기업의 73.0%는 ‘지금도 상장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주주소송 위험, 공시의무 부담 등 때문이다. 또 비상장기업의 67.9%는 상법 개정 시 지금보다 상장을 더 꺼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이유(복수응답)로는 ‘주주대표소송과 배임 등 이사의 책임 가중'(70.8%),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40.4%), ‘경영 보수화 우려’(37.3%), ‘지배구조 등 분쟁 가능성 확대’(28.0%) 등을 꼽았다.

대구의 제조업체 A사는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최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의가 이뤄지면서 상장 여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 중”이라며 “현재 수직 계열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상장하고 나면 주주들이 내부거래의 적절성과 효율성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배임죄로 신고할 우려가 커진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제조업체 B사는 “상장할 경우 첫 주주총회 개최 전까지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사외이사 선임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 상장을 꼭 해야 하는지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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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기업회관에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연합이 공동 주최한 '기업 밸류업 지배 구조 개선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장기업도 상법의 적용을 받지만, 만약 상장을 하게 되면 주식 수가 확 늘어나 주주대표소송 등 문제 제기 소지가 커지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비상장사들도 상장사와 마찬가지로 충실의무 확대시 이사의 책임 가중 및 경영 보수화, 주주 간 이견 등을 우려하고 있었다”며 “기업이 이런 문제로 상장을 꺼린다면 밸류업의 취지에 역행해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상법과 달리 상장사에만 적용되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하자는 논의도 최근 나왔으나, 재계에서는 이 또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시장법은 상법·민법 등 민사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을 개정한다 해도 자본 다수결 원칙과 법인 제도 등 우리 민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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