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이벌은 나" "오늘 후회없이"…파리 영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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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남자 리커브 단체전 우승을 이끈 2004년생 김제덕. 2000년대에 출생한 대한민국 올림피언들은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경기를 맘껏 즐긴 뒤 그에 따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뉴스1]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이 대회 초반 순항하고 있다. 한국의 돌풍은 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 즉 ‘영 코리아(Young Korea)’가 주도하고 있다.

사격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에서 2위를 차지해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박하준과 금지현은 2000년생 동갑내기다. 공기권총 10m에서 사격 첫 금메달을 따낸 오예진은 2005년생이다. 올림픽 역사상 대한민국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여고생 사수’ 반효진은 2007년생이다. 반효진은 한국의 역대 최연소 메달리스트 기록(만 16세10개월18일)도 갈아치웠다.

사격 여자 공기권총 10m 금메달리스트 2005년생 오예진. 2000년대에 출 생한 대한민국 올림피언들은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경기를 맘껏 즐긴 뒤 그에 따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연합뉴스]

단체전에서 나란히 정상에 오른 남녀 양궁 대표팀의 막내 김제덕과 남수현은 각각 2004년, 2005년에 태어났다. 여자 유도 은메달리스트 허미미도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박태환 이후 12년 만에 수영에서 메달을 따낸 김우민은 2001년생이다. 이 밖에도 배드민턴의 안세영(2002년),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2003년), 탁구의 신유빈(2004년)도 2000년대에 태어난 대표적인 밀레니얼 세대다.

1990년대까지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영웅 서사’의 전형이었다. 신체 조건이 좋거나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체육 교사나 운동부 코치의 추천을 받아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끝에 세계 정상에 올라 ‘국위선양’을 한 뒤엔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펑펑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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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안세영2002년생(22세)

2000년대에 태어난 ‘영 코리아’는 다르다. 경기를 마음껏 즐긴 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올림픽 무대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선수가 대부분인데, 주눅이 들기는커녕 자신감이 넘쳐난다. 국위 선양을 위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 영 코리아에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운동일 뿐이다.

여고생 사수 반효진은 어렸을 때부터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그의 부모는 “사격을 하겠다”는 딸을 말렸다. 그래도 딸이 고집을 굽히지 않자 반효진의 엄마는 “올림픽 금메달을 딸 거 아니면 그만두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엄마 생각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겠다”면서 훈련을 거듭했다. 반효진의 좌우명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후회 없이’다. 반효진은 좌우명처럼 후회 없이 총을 쏜 결과 사격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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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김우민2001년생(23세)

사격 오예진도 전형적인 밀레니얼 세대다. 그는 인생의 라이벌로 자기 자신을 꼽았다.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심정을 물으면 그는 “내가 그만큼 노력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오예진의 좌우명은 ‘내 갈 길은 내가 정한다’다.

사격 선수 금지현은 2022년 10월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카이로 월드컵을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긴 비행과 빡빡한 일정을 우려하는 이가 많았지만 그는 꿋꿋이 출전했고, 결국 올림픽행 티켓을 따냈다. 그 이후 금지현은 만삭의 몸으로 여러 차례 대회에 출전했다. “배 속의 아기가 불쌍하지도 않으냐” “쟤 또 나왔네”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금지현은 이런 시선을 꿋꿋이 이겨냈다. 출산한 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 당당히 메달을 따낸 그는 딸 서아의 사진을 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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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박하준2000년생(24세)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사격 3관왕 이대명(36) 해설위원은 “요즘 선수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다. 똑똑하고 자기만의 논리가 확실하다. 본인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잘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 요즘 선수들은 예전 선배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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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2003년생(21세)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영 코리아’는 힘든 훈련도 즐겁게 받아들인다. ‘사생결단’으로 나서던 선배들과 달리 올림픽이란 큰 무대도 즐길 줄 안다. 최선을 다한 뒤엔 어떤 결과든 승복하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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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허미미 2002년생(22세)

여자 유도 결승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놓친 허미미는 눈물 대신 미소를 지었다. 특히 은메달을 목에 건 뒤엔 활짝 웃으며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김미정 여자 유도 감독은 “허미미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대표 선수들이 단체로 심리 테스트를 받았는데 허미미는 부정적인 생각이 ‘0’에 가깝게 나왔다. 무엇보다도 밝고, 긍정적이고 대범하다. 좀처럼 긴장하지도 않는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접해도 곧 툭툭 털어버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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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반효진 2007년생(17세)

그러나 경기에 나서는 자세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다. 남자 양궁 단체전 준결승전에 나선 김제덕이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벌이 그의 손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나 김제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과감하게 화살을 날려 과녁 중앙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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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남수현(사진 왼쪽) 2005년생(19세)

김제덕은 “벌이 손 주위를 날아다녔지만 ‘올림픽인데 여기서 손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다. 10점을 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목표’와 ‘결과’에 집착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도전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진행 과정이 공정하다고 느끼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반대로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분노를 표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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