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챙길 건 챙기고, 돌연 문 잠궜다…개방 약속한 아파트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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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에는 공공개방시설로 한강 뷰를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한은화 기자

일부 아파트 단지가 시설을 공공에 개방키로 하고 인센티브를 받은 뒤 다시 문을 걸어 잠그면서 논란이 일자 서울시가 대책을 내놨다. 입주자 대표회의도 개방 약속을 지키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부 단지는 규제를 피했다며 반기고 있다.

서울시 아파트 공동시설 개방 운영 기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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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위치한 스카이브리지 카페에는 이런 그네 의자를 갖춘 야외공간이 있다. 한은화 기자

서울시는 7일 “‘공동주택 주민공동시설 개방운영 관련 기준’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우선 건축위원회 심의·분양·준공 등 단계별로 시설개방에 관한 사항을 알리고, 특별건축구역 지정 고시문·사업시행인가 조건·분양계약서·건축물대장 등 공식 문서에도 명시하기로 했다.

공동주택관리법도 개정한다. 재건축 사업 주체가 시설 개방을 약속하면 입주자 대표회의도 이를 준수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형식적으로 개방했지만, 외부인에게 이용료를 비싸게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민 공동시설 운영권을 자치구에 위탁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자치구 결정에 따라 운영 방식과 요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외부인 출입을 막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공공시설을 계속 개방하지 않으면 강력한 행정 조치도 한다.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고 건축물대장에 해당 아파트를 위반건축물로 올린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실장은 “주민 공동시설 개방을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받고, 이를 어기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잘못”이라고 말했다.

10만㎡ 공원, 일부 단지 앞마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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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정문 출입구 보행통로에 철제 담장이 설치돼있다. 아파트 입주민 출입증을 찍어야 진입할 수 있다. 장서윤 기자

서울시가 이런 대책을 내놓은 계기는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래미안원베일리와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때문이다.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한강 변에 나란히 자리한 이들 단지는 서울시에서 건설 허가를 받을 당시에 아파트 단지 내부 시설을 시민에게 개방하기로 약속했다. 한강이 보이는 전망대나 북카페·도서관·사우나·수영장·골프장·헬스장 등이 개방을 약속한 시설이다.

대신 서울시는 혜택을 줬다. 동(棟) 간 거리(인동간격) 기준을 완화했다. 이 바람에 아크로리버파크는 가구별 한강 조망률이 약 30% 증가했고, 래미안원베일리도 햇살이 잘 드는 가구가 늘었다.

그런데 막상 재건축이 끝나고 입주를 시작하자 주민들은 태도를 바꿨다. 아크로리버파크는 2016년 8월부터 2018년 5월까지 개방을 거부했고, 래미안원베일리도 지난 6월 1일부터 22일 동안 아파트 거주자가 아니면 전망대 출입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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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측면 출입구에 철제 담장이 설치돼있다. 해당 담장의 높이는 약 1.3m로, 2m를 넘지 않아 건축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장서윤 기자

다만 서초구가 이들 아파트에 소유권 이전 고시 취소,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예고하면서 강력히 나서자 백기 투항했다. 현재 래미안원베일리·아크로리버파크는 시설을 다시 개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서울시 대책에도 허점은 있다. 이번 조치가 입주민 공동시설에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아너힐스와 개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블래스티지는 통행로를 막아서 문제가 됐다.

이들 아파트는 개포근린공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다. 10만5466㎡ 크기 대형 공원과 진·출입이 가능한 입구가 총 8개가 있다. 이 중 5개가 아파트 단지와 이어져 있다. 이 때문에 정비사업 과정에서 일반인도 통행할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인허가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입주민만 드나들 수 있게 단지에 1.5m 높이 담장을 설치했다. 통행로를 개방하면 보안·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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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뉴스1

개포택지개발지구상지구단위개발에 따르면 해당 지구에 들어서는 공동주택 담장은 0.8m 이하로 설치하고, 재료도 생울타리만 적용해야 한다. 즉, 키가 작은 나무·꽃을 심어 경계를 표시하는 정도는 허용하지만, 지금처럼 철제 담장으로 보행을 막으면 불법이다.

담장이 공공보행로를 막아버리면 국토계획법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이후 시정하지 않으면 시정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또 높이 2m 이상 담장을 설치해도 건축법상 이행강제금 부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디에이치아너힐즈·래미안블래스티지 불법 펜스는 높이(1.5m)나 공공보행로 규정을 교묘하게 회피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시정 지시 미이행에 따른 벌금 부과가 불가능하다. 대형 공원 전체가 사실상 두 아파트 입주민 전유물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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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디에이치아너힐즈. 저층 임대 동 뒤로 고층 일반 동이 들어서 있다. 김민중 기자

이에 대해 강남구 관계자는 “불법 시설물(철제 담장)을 자체적으로 정비하도록 아파트 측에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아직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서경찰서에 이들 아파트를 고발했지만, 경찰이 래미안블래스티지는 무혐의 처분하고 디에이치아너힐스는 벌금 100만원만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는 “수사 결과만 통보받고 처분 사유를 받아보지 못해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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