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감독이 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트위스터스’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토네이도 장면 촬영 중 진짜 폭풍이 몰아닥쳐 세트장을 초토화했다. 세트장을 다시 짓자 또 불어온 폭풍이 모든 걸 다시 날려버렸다. 세트장 텐트를 눌러둔 콘크리트까지 말이다.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트위스터스’(14일 개봉) 현장에서 있었던 실화다.

지난달 말 북미 개봉을 시작으로 전 세계 2억7780만 달러(3826억원) 흥행 돌풍 중인 영화 ‘트위스터스’ 주역들이 7일 서울 CGV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시사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위스터스’는 1996년 한국에서도 흥행한 헬렌 헌트 주연 영화 ‘트위스터’의 28년 만의 리메이크판이다. 미국 중부지역의 고질적 자연재해 토네이도를 쫓는 이들의 사투와 사랑을 그렸다.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다.

영화 트위스터스 [사진 IMDb]

영화 자체도 박진감 넘친다. 첫 5분 만에 토네이도의 가공할 파괴력을 무섭게 설득시킨다. 주인공 케이트(데이지 에드가-존스)가 대학 시절 토네이도에 무모하게 맞섰다가 친구들을 잃는 재난 상황이 스크린을 뚫고 관객의 숨통을 죄어온다. 케이트가 트라우마를 힘겹게 극복하고 다시 사람들의 일상을 무자비하게 집어삼키는 토네이도와 정면 돌파하는 여정이 상영시간 122분간 실감 나게 펼쳐진다.

재미교포인 자신의 가족 이민사를 담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윤여정),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안은 정 감독이 이날 주연 배우 데이지 에드가-존스, 애슐리 J 샌드버그 제작 총괄 프로듀서와 함께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정 감독은 먼저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를 직접 감독했다는 게 꿈을 이룬 것 같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감격을 드러냈다.
이어 “실제 (토네이도 발생지인 미 중부) 아칸소 농장에서 자랐다”는 그는 “‘미나리’에도 나오는 장면인데, 아칸소에 이사 가고 2~3주 만에 인생의 첫 토네이도가 찾아와 우리 집을 비껴갔다. 당시엔 어린 나이라 두려웠는데, 그 지역에 살다 보면 토네이도가 익숙해져서 사람들이 구경을 나간다”면서 “이 영화는 실제 자연현상에서 영감을 받았고 관객이 직접 토네이도를 경험해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또 “고향 동네 분들이 극장에 자주 가지 않는데 오클라호마ㆍ아칸소 근처 지인들이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봤다'고 많이들 연락해 왔다. 제겐 큰 의미”라고도 덧붙였다.

독립영화 ‘미나리’에 이어 신데렐라 같은 블록버스터 데뷔다. 샌드버그 프로듀서에 따르면 ‘트위스터스’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이 지역(토네이도 발생지)을 이해하고, 살아본 사람, 토네이도에 대한 경험. “나도 ‘미나리’ 팬”이라 밝힌 샌드버그는 “루카스 필름 친구들에게 '정 감독은 '스타워즈' 시리즈 '만달로리안'에서 특수효과와 거대한 스케일에도 탁월했다'고 들었다"며 "그는 ‘트위스터스’ 시나리오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적임자였다”고 설명했다.

주연 호흡도 원작 못지않다. 에드가-존스는 넷플릭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어릴 적 버려져 습지에서 살아온 소녀 연기로 주목받은 신예. ‘탑건:매버릭’의 파일럿 역할로 급부상한 글렌 파월이 토네이도로 인기를 얻는 유튜버 타일러가 되어 케이트의 성장담에 위트와 로맨스를 불어넣었다.

영화 '트위스터스'(14일 개봉)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 정면돌파에 나서는 재난 블록버스터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토네이도 자체. 오클라호마 시골 야외에서 토네이도 특수효과를 구현해, 파나비전 XL 카메라, 핸드헬드 ARRI 435 등 카메라로 35㎜ 필름에 새겨나갔다. 현대적이지만 향수가 느껴지는, 더욱 생생한 화면을 위해서다. 디지털 촬영보다 제작비 부담이 큰 필름 촬영을 납득시키기 위해 정 감독은 필름으로 촬영한 ‘미나리’ 토네이도 장면과 오리지널 ‘트위스터’를 섞은 영상을 스필버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기도 했단다. 정 감독은 “1996년 영화는 실제 캔자스에서 밤에 야외촬영을 했다. 저 또한 블루스크린 촬영한 특수효과 화면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구현하고 싶었다”면서 “관객이 최대한 액션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90년대 영화들을 참고했다. 당대 작품들처럼 한 장면에 많은 에너지를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 기상사건과 관측을 기반으로 10가지 토네이도와 날씨 환경을 디자인해 영화에 넣었다. “영화 역사상 컴퓨터그래픽(CG)로 만들어진 날씨 시뮬레이션, 토네이도 중 가장 복잡하고 진짜 같은 작업물”(CG 슈퍼바이저 벤 스노우)이 그렇게 탄생했다.

재난 특수효과 볼거리뿐 아니라 피해 지역의 무너진 일상도 공들여 표현했다. 특히 최후의 토네이도를 피해 주민들이 영화관에 대피한 장면에선 고전 영화가 상영되던 스크린을 찢고 실제 돌풍이 극장 안에 불어닥친다. 사람들이 똘똘 뭉쳐 서로를 구한다. 정 감독이 처음 대본을 읽고 가장 좋았다는 장면이다. 팬데믹 이후 여전히 회복 중인 극장가를 메타포로 삼았다. “세상이 휴대전화 크기로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그는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극장이 좋은 메타포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극장이 모두 함께 뭉쳐 보다 크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고 나누기에 좋은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트위스터스'(14일 개봉)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 정면돌파에 나서는 재난 블록버스터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실제 기후캠프, 토네이도 추적자들을 찾아가 공부하고 지역 억양을 익혔다는 에드가-존스는 “이 영화에선 토네이도가 케이트가 극복하려고 하는 내적 괴물을 상징한다”라고도 해석했다. “케이트는 토네이도를 두려워하지만, 매료되어 쫓아다닌다. 두려움 끝에 자신을 극복하고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면서다.
정 감독에겐 ‘트위스터스’가 바로 토네이도 같은 작품이었다. “처음엔 내가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두려웠다”고 털어놓은 그는 “두려워서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 영감을 주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토네이도는 거대하고 경외심을 일으키는 존재죠. 큰 스크린이 있는 극장에서 경험해보면 더 몰입감을 느낄 겁니다.” 14일 개봉, 돌비 시네마‧스크린 X‧4DX‧아이맥스 등 특별관에서도 상영한다.

정이삭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데이지 에드가 존스, 애슐리 J, 샌드버그 제작 총괄 프로듀서가 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트위스터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트위스터스'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 정면 돌파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