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5단고음' 옥주현 "난 악플수집가…집까지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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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첫 남장여인 연기 옥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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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오스칼을 맡은 옥주현. 5단고음 등 경이로운 가창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1980년대의 소녀들에게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몹시 특별했다. 1972년 탄생한 일본 순정만화인데, 한 권씩 나오는 해적판을 기다리며 서점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혁명기 프랑스 귀족들의 화려한 복장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하얀 군복에 금발머리 휘날리는 ‘오스칼’에 사로잡혔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사랑받는 ‘남장여인’이라는 오스칼의 세계는 소녀들의 오묘한 욕망과 내숭의 결정체였다.

그 소녀들이 중년이 된 지금, 오스칼이 만화를 찢고 나왔다. 7월 개막한 화제의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다. 본고장 일본에서는 1974년 여성들만의 뮤지컬로 유명한 다카라즈카 가극으로 무대화되어 5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의 EMK컴퍼니가 최초로 남녀가 함께 하는 뮤지컬로 창작했다. 오스칼은 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맡지만, 우렁차게 호령하는 남장여군에 찰떡인 건 역시 최고 스타 옥주현이다.

훤칠한 체격과 카리스마 넘치는 발성은 워낙 정평이 났지만, 5단고음 등 초고난도 넘버들로 점철된 ‘옥스칼’의 무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른 두 배우와 악보부터 다르다. “창작이니까 배우도 같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거든요. 연출님도 대본에 제 모습을 많이 담았다고 하셨지만, 노래도 제 버전은 제 생각이 반영됐어요. 5단고음은 원래 가사들을 삭제하고 넣었는데, 감정이 폭발해 뚜껑을 날려야 되는 장면이거든요. 음악감독님과 의견 나누며 트라이하게 된 건데, 고생스럽지 않아요. 그 감정에 딱 들어맞는 보물찾기를 한 거죠.”

원작은 프랑스혁명을 배경 삼은 6각, 7각의 복잡한 사랑이야기다. 일본판은 ‘오스칼과 앙드레 편’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 편’이 따로 있을 정도로 로맨스에 집중하는데, 한국판은 로맨스는 거들 뿐, 혁명에 방점을 찍은 전혀 다른 무대다. “로맨스에 설레었던 분들은 아쉬울 수 있죠. 사실 개막이 연기될 정도로 오랜 제작기간을 거쳤는데, 초기 대본에는 오스칼이 마음을 표현하면 앙드레가 옷을 팍 찢어버리고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도 있었어요.(웃음) 우리 작품은 결국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핸드폰만 보면서 살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남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연출님이 던지고 싶었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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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오스칼로 분한 모습. [사진 EMK컴퍼니]

옥주현은 2005년 ‘아이다’로 데뷔한 이래 20년간 뮤지컬판을 쉼 없이 달려왔다. 20년 전만 해도 뮤지컬 여주인공은 뻔한 공주형 캐릭터가 많았지만, 그는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트 등, 늘 허를 찌르는 배역에 도전하며 뮤지컬이 주목하는 여성상을 확장시켜 왔다. 남장여인은 처음이지만, 모든 넘버의 가사가 다 자기 이야기처럼 들릴 정도로 오스칼에 푹 빠져 있었다. “오스칼의 생각과 제 생각이 너무 비슷해요. 연출님도 남들이 뭐라든 뛰어드는 용기가 저와 되게 닮아 보인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도 그렇거든요.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란이 잠깐 있어도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달라질 수 있잖아요.”

어떤 목소리 말인가요.
“요즘엔 극장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전시회도 몇백년 전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신경 쓰는데, 살아있는 배우들 컨디션도 신경 써 주면 좋겠어요. 가습 설비도 없는 극장도 있어요. 로또 몇 번 당첨돼서 최상의 컨디션 갖춘 뮤지컬 전용극장 짓는 게 제 소원이죠.”
유명세 탓에 유독 기대치가 높은데요.
“남들의 평가에 스트레스 받기보단 무대에서 스스로에게 욕하고 싶은 순간을 안 만들려고 해요. 정말 시험 공부하듯이 열심히 해요. 뭔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전 정말 지구 끝까지 파거든요.”

그는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부쩍 여유로워 보였다. 최근 방송에서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던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이젠 초탈한 듯했다. 몇해 전 떠들썩했던 ‘친분 캐스팅’ 논란에 대해서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에 걸맞는 일을 했을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가수로 출발했는데 뮤지컬을 그토록 사랑하게 된 계기라면.
“2008년 ‘시카고’로 여우주연상을 너무 빨리 받았어요. 자격도 없는데 받은 것 같아 더욱 채찍질하게 됐죠. 근데 제가 빚 갚느라 힘들던 시기가 있었어요. 오직 나 혼자밖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공연과 빚 갚는 생활의 경계에서 이성을 잡고 있기가 너무 힘든 시절이었죠. 죽을까 갚을까를 고민하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 시절을 보냈어요. 지나고 보니 이 무대가 나를 살게 했구나 싶고, 그 소중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됐죠.”
여배우로선 티켓파워가 독보적이죠.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나, 오스칼’이란 노래처럼 매 순간마다 난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증명하며 살았을 뿐이죠. 조각가에 비유하길 좋아하는데, 돌을 마치 실크처럼 표현하는 조각가 같은 장인정신으로 공연을 해요. 우린 죽고 나서 남겨지는 게 없으니 매 순간을 걸작으로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일부분을 뚝 떼어내 보여주는 프레스콜을 싫어해요.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시간으로 쌓아올린 아트를 어떻게 부분 시연으로 맛을 알 수 있나요.”
친분 캐스팅 같은 구설수는 왜 따라다닐까요.
“선배가 후배를 도와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후배 레슨을 해 줬을 뿐이에요. 좋은 악기를 갖고 있고, 다른 욕심 없이 본업에 진실한 후배라면 누구라도 돕고 싶거든요. 저는 떳떳하지만, 그 당시 일어났던 소란 때문에 내가 정말 갑질을 했나 돌아보게 됐어요. 만일 저도 모르게 저한테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사과하고 싶은데, 그저 바람을 타고 같이 던지는 사람들은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본인을 ‘악플수집가’라고 했던데.
“악플러도 다양한데, 지능이 떨어지거나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죠. 만나보면 시간과 수고가 아까워져요.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 너무 마주해야 될 것 같은 사람들은 만나야죠. 제가 어느 날 집까지 찾아갈 수도 있답니다.(웃음)”

악플이 달릴지 몰라도, ‘순간의 마스터피스’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그가 멋져 보였다. 누가 뭐라든 옥주현의 장인정신은 무대가 증명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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