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中, '인터넷 신분증' 도입 반발에… 명문대 교수들 SNS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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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중국 베이징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다. 중국 공안부와 국가인터넷판공실은 지난달 말 인터넷 전용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는 행정 규칙 도입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대학 교수와 네티즌 사이에서 각종 인터넷 서비스 이용에 통제가 강화될 것을 우려하는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당국이 편의성을 이유로 인터넷 신분증 도입을 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정부 입장에서 불편한 게시물을 올리면 인터넷 서비스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일부 대학 교수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하자 중국 당국이 관련 소셜네트워크(SNS) 계정을 폐쇄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중국 공안부와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달 26일 ‘국가 네트워크 신분인증 공공서비스 관리규칙(이하 규칙)’ 초안을 발표했다. 일반 주민등록번호와 주민증과 비슷한 인터넷 전용 ‘인터넷 번호(網號)’와 ‘인터넷 신분증(網證)’을 국가가 일률적으로 발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형식적으로 오는 25일까지 일반인 의견을 청취한다며 관련 웹사이트와 이메일, 일반 주소 등을 공지했다.

공안부는 이런 ‘규칙’을 공개하면서 인터넷 신분증을 시범적으로 발급하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도 배포하기 시작됐다. 인터넷 신분증을 발급받으려면 안면 인식, 휴대폰 인증 등을 거쳐야 한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인 타오바오, SNS 플랫폼 위챗, 샤오훙슈 등 71개 회사가 시범 사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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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둥옌 칭화대 법학원 교수. 홍콩명보 캡처

칭화대 법대 교수 “인터넷 특권화 조치”

그런데 일부 명문대 교수들이 반대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라오둥옌(勞東燕·50) 칭화대 법학원 교수는 지난달 29일 웨이보(微博, 중국판 X)에 “인터넷 번호, 인터넷 신분증은 모든 네티즌을 대상으로 설치하는 감시 기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커다란 사회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며, 부처 수준의 행정규정에 불과해 상위의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규칙’의 진짜 의도가 개인정보 보호인지, 인터넷에서 개인의 언행을 관리 통제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라오 교수는 또 “인터넷 신분증 제도는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특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발언과 댓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라오 교수의 이 게시물은 검열 당국에 의해 삭제된 상태다. 8일 현재 해당 계정은 “관련 법률·법규를 위반해 해당 이용자는 현재 발언 금지 상태”라는 안내문이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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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둥옌 칭화대 법학원 교수의 웨이보 계정 화면. “관련 법률·법규를 위반해 해당 이용자는 현재 발언 금지 상태”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웨이보 캡처

“자국민 추적해선 창조국가 될 수 없어”

인터넷 신분증을 2000여년 전 진(秦)나라의 호적 제도에 비유하는 글도 등장했다. 황위성(黄裕生·59) 칭화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3일 웨이보에 “진정한 현대화 국가는 절대 ‘편호제민(編戶齊民)’ 국가가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번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황 교수는 “한 나라가 자기 국민을 투명한 국민으로 만들고, 언제라도 추적하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바둑돌로 만들고자 시도한다면, 그런 나라는 활력 있고 창조력을 가진 국가가 될 수 없다”며 “모든 창조력은 심연에 숨어있고, 모든 활력은 감시 없는 자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중국식 현대화가 목표와 방향이라면, 고대의 ‘편호제민’을 향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더 자유롭고 더 개방적이고 더 자립적이며 더 문명화되고 부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일 우리가 중국식 현대화에 믿음과 자신이 있다면 이러한 현대화는 서방의 현대화가 국민을 감시 통제하는 것보다 더 적게 국민을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가 언급한 ‘편호제민’은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호적 제도를 말한다. 군주가 모든 국민을 호구 단위로 기록해 기존 호족을 폐지하고 모두를 신하로 편성한 제도였다.

황 교수의 웨이보 글도 라오 교수와 마찬가지로 검열로 삭제됐고, 계정도 폐쇄됐다. ‘규칙’에 의견을 제시하자 ‘재갈’을 물린 셈이다.

일반 네티즌이 공안부를 기소하는 일도 발생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에 사는 푸원(傅文)이 지난 2일 공안부를 법원에 기소했다. 푸원은 아직 발효되지 않은 ‘규칙’의 의견 청구 기간에 인터넷 신분증 시범 앱을 배포한 행위는 불법이라고 기소 이유를 들었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는 2012년 출범 이래 인터넷 여론 통제를 강화해 왔다. 그해 12월 SNS 실명제 방침을 내세웠고, 2017~2021년 인터넷 안전법, 데이터 안전법, 개인정보 보호법 등 3대 인터넷 통제를 위한 법률을 입법 시행했다. 이번 ‘규칙’도 1조에서 이들 법안을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2022년엔 SNS를 이용할 때 발신지 정보를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지난해엔 SNS에서 시사를 다루는 인플루언서의 실명 공개를 시행했다. 지난해 검열 당국이 접수한 부적절한 인터넷 게시물의 통보 건수는 2억 건을 넘었다. 이는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11억 명을 넘어섰다. 이와 관련, 서방 언론에선 이번 인터넷 신분증 도입 논란에 대해 “중국 국민의 정보 취득 경로가 SNS로 집중되면서 당국이 인터넷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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