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치매 앓는 월남용사 돈 뺏은 유공자…"보훈원 전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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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장안구에 위치한 보훈원 외경.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 운영하는 보훈원은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이다. 손성배 기자

의탁할 곳이 없는 국가유공자가 모여 사는 보훈시설에서 수천만원대 사기 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과 보훈 당국은 국가유공자가 또 다른 유공자를 상대로 한 비슷한 사기 사건이 있었는지 입소자를 상대로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국가보훈부 산하 보훈공단이 운영하는 수원보훈원 입소 국가유공자 김모(72)씨를 준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8일 밝혔다. 김씨는 국가유공자 임모(75)씨를 속여 8600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는다.

수원 장안구에 있는 보훈원은 가족 등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국가유공자와 배우자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현재 115명이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아 국가유공자가 된 김씨는 2018년 3월 보훈원에 입소했다. 당시 보훈원 입소자 평균 연령은 88세로, 김씨가 가장 젊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였던 피해자 임씨는 이듬해 3월 보훈원에 들어왔다. 임씨는 젊었을 때 머슴으로 일하며 곤궁한 생활을 하다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돌아와서도 일용직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임씨가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치매 증세가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는 임씨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환심을 산 뒤 “내가 경비원으로 일하면 월 2000만원을 버는데, 형님(임씨) 보호자 역할을 할테니 우선 3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임씨 명의로 체크카드를 만든 뒤 비밀번호를 바꿔 사용했다. 이런 방법으로 김씨는 임씨가 평생 모은 돈 2억 2000만원 중 8600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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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원에서 거주하는 국가유공자가 치매에 걸린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유공자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손성배 기자

경찰은 보훈원장과 사회복지사, 입소자, 요양보호사 등을 조사하고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김씨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지난 13일 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강원랜드 카지노에 자주 다녔고 도박 때문에 차량을 압류당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가 머물던 방에선 스포츠토토 종이가 수십장 발견됐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보훈원 관계자는 “공동생활에 부적격하다고 판단해 규정에 따라 김씨를 강제 퇴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보훈 당국은 보훈원에서 비슷한 사기 피해 사례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입소자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경찰도 정부에 제도 개선 건의를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입소자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준사기 범행에 대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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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보훈당국은 비슷한 사기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입소자를 상대로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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