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해외 입양은 보내면서, 국내 국제부부 입양은 거부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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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한국인 아동 입양을 희망하는 토마스 팔렛(오른쪽)과 한국인 아내. 사진 토마스 팔렛

부산에 거주하는 영국인 토마스 팔렛(42)은 2019년 5월 한국 국적 강모(47)씨와 결혼해 F-6(결혼이민) 비자를 받았다. 두 사람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인 나이를 고려해 결혼 약 1년 전부터 임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연 임신에 실패했고 난임 치료를 시작하는 동시에 입양이라는 선택지도 함께 고민했다. 오랜 논의 끝에 한국 국적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심한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대한사회복지회·동방사회복지회 등 입양 전문기관을 찾았지만 세 곳 모두로부터 입양신청을 거절당했다. “국내에서 입양하려면 부부 모두 한국 국적이어야 한다”, “한국 거주 국제 부부를 위한 입양 프로그램이 없다” 등의 이유였다. 한 기관은 팔렛에게 “(영국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하면 입양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고 한다.

팔렛은 지난해 3월 국민권익위원회에 ‘한국 내 국제 입양 허용’ 민원을 제기했다. 한국에서 영어학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영국에 돌아갈 계획이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권익위는 “현행 입양특례법상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자격을 갖췄다면 국내 보호 아동을 입양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지난 1월엔 주한영국대사관으로부터 “한국 법에 따라 이뤄진 입양은 영국법에 따라 자동으로 인정되고, 팔렛이 앞으로 영국에 거주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영국 입양법규를 따를 필요도 없다”는 확인도 받았다. 팔렛은 권익위와 영국대사관의 서류를 토대로 다시 입양신청 절차 등을 문의했지만 입양기관들은 재차 거절했다. 팔렛은 “한국인 부인과 아동이 태어난 한국에 살며 양육하려는 것인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입양 심사조차 받지 못한다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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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6일 주한영국대사관이 토마스 팔렛에게 보낸 입양 적합성 관련 서신. 대사관은 ″토마스 팔렛은 영국에 영구 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입양을 하려 할 때 영국 입양 법규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진 토마스 팔렛

매년 한국 아동을 해외로 입양보내면서도 국내에선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외국 국적이면 아동을 입양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지만 양부모 자격 심사를 맡은 입양기관 등에서 꺼리기 때문이다. 대구에 사는 미국 군무원 윌리엄슨과 부인 이숙(49)씨도 비슷한 사례다. 부부는 지난 2021년 5월부터 미성년자 A씨가 낳은 우주(4·가명)군을 3년 3개월째 위탁 보육하고 있다. A씨가 두 사람에게 입양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부부도 이미 정이 든 우주군을 넷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구청은 “입양기관에 먼저 아이를 보낸 뒤 한국 국적인 부모를 우선으로 입양 신청을 받고 지원자가 없을 경우에 입양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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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가정위탁으로 양육하는 아이를 입양하길 원하는 이숙 윌리엄슨씨 가족과 위탁양육 아기의 돌잔치 사진. 미군 군무원으로 근무하는 이씨의 남편은 한국 근무 연한을 채워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이씨는 아이 위탁 양육 때문에 남편, 두 딸과 생이별한 채 대구 캠프 워커에서 주한미군 장교로 근무하는 큰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진 이숙 윌리엄슨씨

한국 거주 국제 가정이 입양에 성공한 사례는 지난해 11월 데이비드 제(David Jea) 전 주한미국대사관 영사 부부가 유일하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미 국무부 부부 외교관인 제 전 영사 역시 부모가 친권을 포기한 5살 아기를 4년간 위탁 양육하다가 입양을 시도했지만 처음엔 거부당했다. 결국 법원에 두 번의 입양허가 소송을 벌이며, 임기가 끝난 후에도 부부가 교대로 미국과 한국을 오간 끝에 3년 반 만에 승소해 허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입양기관 심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에 직접 소송을 내서 입양 허가를 받아낸 것 모두 굉장히 이례적이며, 한국 아동을 한국에 살았던 외국인 부부가 입양한 특이한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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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데이비드 제 전 주한미대사관 영사(오른쪽), 그의 입양 딸 마들렌. 김미애 의원 페이스북.

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간 해외로 입양된 한국 국적 아동은 2903명, 같은 기간 국내 아동의 전체 입양 수(6817명)의 42.3%였다. 연평균 290명의 아동을 해외로 보내면서도 한국에서 아기를 키우겠다는 국제 부부에게 입양이 허락되지 않는다.

민지원 변호사는 “국내 거주 국제 부부의 입양을 막는 것은, 입양 부모를 국내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 해외 입양을 허용한다는 입양특례법 7조에 오히려 위반되는 셈”이라며 “사안마다 아이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종합적,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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