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 사람 스펙 좋지만 곧 나가"…요즘 AI 면접관, 별걸 다 안다 [채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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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면접을 보고 있는 지원자 모습을 챗gpt를 통해 일러스트로 표현한 이미지. 챗gpt

10년 차 미디어 스타트업의 대표 A씨에게 채용은 가장 어려운 과제다. 중소기업벤처부의 ‘예비 유니콘’(투자실적 50억원 이상,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선정될 만큼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른바 ‘고스펙’ 입사 지원자가 늘었다. 그런데 막상 뽑으면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다’‘회사와 가치관이 다르다’며 금방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량·인성 등이 기대와 다르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도 있었다.

A씨는 올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직원을 뽑았다. CEO 메시지, 전·현직자 리뷰 등 회사 관련 데이터를 학습·분석한 AI가 지원자 중 회사에 맞는 사람을 찾아줬다. A씨는 “채용은 어느 회사나 너무나 중요한데, 적은 인원으로 짧은 시간에 지원자를 깊이 있게 검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AI는 스펙보다는 우리 회사와 잘 맞는지만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게 가능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컬처 핏’ 맞춰 채용…LG·한화 등 140곳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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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식 제네시스랩 이사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제네시스랩 사무실에서 AI 면접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화면에 AI 휴먼 면접관이 보인다. 김경록 기자

이처럼 학벌·성적 등 ‘스펙’ 위주 직원 채용 방식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채용 시장에서도 AI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AI는 지원자의 스펙보다는 성향이나 ‘컬처 핏(culture fit, 회사와 얼마나 잘 맞는지 여부)’ 등을 파악해 맞춤형 인재를 찾아주는 일종의 전문 면접관 역할이다.

기존 채용 방식보다 회사에 더 잘 맞는 사람이 입사하다 보니 이직률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LG그룹·현대백화점그룹·한화 등 대기업과 공공기관 140여 곳에서 AI 면접을 통해 인턴이나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1대 100 전문 면접과 같아”…AI 면접관이 ‘말투’까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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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중앙일보는 재단법인 교육의봄과 함께 AI가 바꾼 채용 문화를 살펴봤다. AI 면접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한 제네시스랩 등을 방문해 AI 면접관이 어떻게 지원자를 평가하는지 체험했다.

AI 면접 방식은 간단했다. 노트북 또는 모바일을 통해 AI 면접 프로그램에 접속하면 화면에 뜬 AI 휴먼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인성·역량·직무적성 관련한 질문을 한다. 이후 카메라를 통해 녹화된 지원자의 답변 내용과 태도 등을 모두 분석해 점수를 매긴다. AI 면접관은 대기업 전·현직 인사 담당자 등 100여명의 전문가가 30만 명이 넘는 지원자의 면접 동영상을 본 뒤 평가한 내용을 학습한 프로그램이다.

육근식 제네시스랩 이사는 “짧은 면접 시간과 스펙으로는 알 수 없는 구직자의 역량을 100명의 전문가가 확인해주는 것과 같다”며 “인턴 채용의 경우 AI 면접만을 활용해 채용하는 경우도 있고, 정규직 사원은 AI 면접을 대면 면접의 판단이 맞는지 체크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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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AI 면접관은 면접 중 지원자의 발언 내용과 표정, 말투, 어조 등 모든 비언어적 행위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호감도·신뢰도·자신감 등을 각 5점 만점으로 평가한다. 정답이 있는 직무역량 질문도 답변 내용을 분석한 AI가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육 이사는 “두 가지 답을 말해야 하는데 하나만 답하거나, 꼭 들어가야 할 키워드를 정확히 말하지 않을 경우 사람 면접관은 통과를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AI 면접관은 감점하는 등 정확히 지적한다”며 “면접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면접 ‘운’이 AI 면접관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끌어모아 CEO도 몰랐던 회사 성향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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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연 그레이비랩 대표가 27일 서울 강남구 스파크플러스 코엑스점에서 AI컬쳐핏 채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6.27.

AI 면접관도 채용 시장의 수요와 기술 발전에 맞춰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CEO도 모를 수 있는 회사의 성향을 파악한 뒤 ‘맞춤 인재’를 찾아주는 AI도 등장했다.

HR 업체 그레이비랩은 자사 AI 서비스를 통해 국내 약 20만 개 기업의 대표 메시지, 전·현직자 인터뷰, 회사에 대한 평가, 관련 기사 등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의 비전, 성향, 가치관 등을 파악한다. 이후 해당 회사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진단 검사를 시행, 해당 회사의 ‘컬쳐 핏’과 맞는 인재를 찾아준다.

그레이비랩 오지연 대표는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회사와 맞지 않으면 퇴사할 수밖에 없는데, AI를 통해 그런 ‘미스매치’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또 회사는 AI를 통해 조직 문화를 진단해 현재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떤 점을 개선할 수 있을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AI 신뢰 얻으면 채용 시장도 변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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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로고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등 해외 주요 기업들도 채용에서 ‘스펙’을 보지 않는 추세다. 구글은 입사 후 고성과자들을 분석해 지원 당시 스펙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원 필수 자격에서 아예 학위를 제외하기도 했다.

오지연 대표는 “좋은 학교 출신이라고 업무를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국내 대기업 모두 공유하는 이야기”라며 “아직은 ‘스펙’ 데이터를 감으로 믿는 윗분들이 있지만, AI가 신뢰를 얻기 시작하면서 국내 채용 시장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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