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가계부채 급증 조짐에…은행들 결국 대출 만기‧한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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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대출 한도를 직접 줄이기 시작했다. 가계 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지만, 큰 효과 없이 실수요자 부담만 늘렸다는 비판 때문이다. 다주택자와 갭투자자를 대상으로 대출 문턱 높이기가 확산할 전망이다.

KB 수도권 주담대 만기 50→30년으로 줄여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의 대출 한도 축소는 최근 가계 대출 급증세를 이끄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KB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현재 최장 50년(만 34세 이하)인 주담대 대출 기간을 수도권에 있는 주택에 한해서 30년으로 일괄 축소한다. 지난달 KB국민은행은 다주택자에 대한 신규 주담대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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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이번 발표는 수도권 주택을 대상으로 한 주담대 제한 ‘2탄’ 성격이다. 현행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서는 대출 기간이 줄면 빌릴 수 있는 돈도 줄어 사실상 한도 축소 효과가 난다.

실제 줄어드는 대출 한도는 클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 DSR 40% 규제에서 연봉 7000만원의 직장인이 연 4% 금리로, 40년 만기 주담대를 빌리면 최대 5억58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대출 기간이 30년으로 줄면 한도도 4억8800만원으로 7000만원이 감소한다.

생활안정자금, 모기지 보험도 제한 확산

KB국민은행은 또 29일부터 주택을 담보로 해서 빌리는 생활안정자금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전에는 담보 가치만 인정되면 한도에 제한이 없었다. 우리은행도 다음달 2일부터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 한도를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도 비슷한 조치를 준비 중이다.

신규 주담대의 모기지보험(MCI·MCG) 적용도 막는다. 모기지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되는데, 서울은 5500만원, 경기도는 4800만원 정도의 대출 한도 축소 효과가 있다. 신한은행은 26일부터 해당 조치를 시행했고, KB국민은 오는 28일, 우리은행은 다음달 2일에 같은 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 KB국민은행은 건물이 없는 토지인 나대지의 담보 대출도 중단하고, 주담대 거치기간(신규 1년, 생활안정자금 3년)도 당분간 없애기로 했다. 원금 없이 이자만 내는 기간이 없어지면서 돈 빌리는 부담이 그만큼 는다.

은행, ‘갭투자용 전세자금대출’도 막는다

집값을 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제한도 본격 시작된다. 전세를 끼고 비싼 주택을 구매하면서, 본인은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실거주를 해결하는 갭투자자가 주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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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신한은행이 26일부터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주택 처분 등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막았다. 우리은행도 같은 조치를 다음달 2일부터 시행한다. KB국민은행은 다른 은행에서 갈아타기로 들어오는 전세자금대출을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 밖에 KB국민은행은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도 기존 1억~1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축소하기로 했고, 우리은행은 대출 모집인을 통한 대출 유치 금액 한도(2000억원 이내)를 제한하기로 했다. 적극적인 대출 유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대출 증가를 막겠다는 취지다.

다주택·갭투자·고소득 대출 더 막힐 듯

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넘어 대출 취급을 줄이는 이런 조치들은 당분간 확산할 전망이다. 금리 인상 방식이 여론 반발에 부딪힌 데다, 집값 급등세를 막기 위해서는 좀 더 강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이 필요하지 않는 차주들을 중심으로 돈을 덜 빌려주는 방식이 될 것”이라면서 “다주택자의 주담대, 유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 고소득자의 신용대출이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도 제한이 아니라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적용해 원래 정부 규제보다 적게 대출을 하는 방식도 검토 대상이다. 특히 현행 DSR 규제에 적용되지 않는 대출들이 이런 방식으로 한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도 DSR 예외 대출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은행권에 내부 관리 목적 DSR 산출을 요구한 상황이다.

실제 26일 은행연합회는 11개 이사은행 가운데 7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기업·씨티·전북은행)의 행장 또는 부행장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 대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은행연합회는 “각 은행은 실수요자 중심의 자금 공급은 유지하되, 실수요와 무관한 갭투자 등 투기나 부동산 가격 부양 수단 등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자율적으로 다양한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행 통한 우회 규제 논란…“소비자 발품 팔아야”

다만, 정부가 은행을 통해 우회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란이 남아있다.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제한에 나서면서 시장에 좀 더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은행별로 대출 정책이 다 달라서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데다, 이러한 대출 제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지방은행이나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별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 제한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은행에서 어떤 대출이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금융 소비자가 직접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면서 “집값을 잡기 위해선 은행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 DSR 예외를 줄이는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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