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왜 아직도 응급실에 있니" 동료들도 떠난다…응급의 번아웃 [의료공백 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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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응급실 환자를 보는 모습. 중앙포토

"버티고 버텨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사명감으로 남았던 사람들마저 모조리 손잡고 응급실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의 응급실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공의 이탈 사태가 6개월을 넘어서며 필수의료 최전방인 응급실의 의료진들이 극심한 번아웃(소진)을 겪고 있다. 최근 건국대 충주병원·아주대병원 등에서 응급실 의료진들이 견디다 못해 줄사표를 내기도 했다. 남궁 교수는 응급실 의료진의 집단 사직 행렬에 대해 "이 상황에 당연한 일"이라며 "갈수록 이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돼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곳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은퇴를 앞둔 노(老)교수님을 포함해 8명뿐”이라며 “3교대 근무, 하루걸러 야간 당직을 해가며 버티고 있지만 밤낮 가리지 않고 응급실 의사가 나 홀로 근무를 하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24시간 중증 응급환자 치료를 맡는 의료기관이다. 그런데도 야간의 응급실에는 의사 한 명이 진료를 맡게 된다는 얘기다.

남궁 교수는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에게 후속 진료가 어려워지는 게 가장 문제”라며 "환자를 받을 수가 없어지니 극심한 무력감을 안겨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외상 환자는 엮인 과가 많다. 일반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등 그 시간에 그런 진료과에 당직 의사가 좋은 컨디션으로 병원에 있어야 하지만 (의료공백 사태 이후) 그러기가 더 힘들어졌고, 당직이 있더라도 한 번에 3~4명의 의료진이 필요한 수술을 할 수가 없어서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 한밤중에 서울 한복판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젊은 환자 팔다리가 터져나갔다는 119 연락을 받았다”며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는 말에 ‘미쳤냐’는 소리를 들으며 수용해서 일단 살렸다. 내일 아침에 다른 과 전문의들이 봐주기를 바라며 그리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전에도 24시간 중증환자 진료는 어려웠는데 이번 사태가 결정타를 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응급실을 나서 개업 대열에 선 동료들이 ‘막상 가보니 정말 편하고 좋다’고, ‘왜 아직도 거기서 일하고 있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시한폭탄이 돼버린 의료체계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병원을 나선 전공의들을 어떻게든 다시 불러모아야 할 텐데, 이미 골이 깊어진 상황이라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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