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최후의 보루, 수술실 절반 문 닫아"…살릴 환자도 못살린다 [의료공백 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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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수술실이 불이 꺼진 채 비어있다. 사진 병원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이 시작된 지 6개월 1주일 지났다. 전공의 1만3531명 중 1186명(8.8%, 23일 기준)만 근무하고 있다. 의료인력의 40%를 차지하던 전공의 공백의 한계점을 지나면서 곳곳에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차 쓰나미는 응급실에 닥쳤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게 수술실이다.

응급실은 의료진의 비명 속에서도 중증환자의 대부분은 진료하고 있다. 수술실은 다르다. 전공의 이탈 후 40~50%의 수술방을 닫았다. 가장 큰 이유는 마취과 전공의 이탈이다. 마취과 의사는 수술실의 지휘자이다. 수도권의 한 권역응급센터의 교수는 "전공의 4명이 수술방 하나씩 들어가고 교수 1명이 책임자로 마취를 담당했는데 지금은 전공의가 없으니 교수가 1개 수술방밖에 못 들어간다"고 말한다. 수술실이 줄어든 1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간이식의 35~40%를 담당하는 서울아산병원은 의대증원 파동 여파로 마취과 전임의(펠로)·전공의가 모두 빠져나갔다. 수술 보조 같은 건 진료지원 간호사(PA)가 맡지만 마취 분야는 불가능하다. 간 이식 건수가 지난해 2~8월 276건에서 올해 2월~이달 27일 168건으로 줄었다. 무려 39% 줄었다. 주당 9~10건에서 5~6건꼴로 줄었다. 내년 2월까지 이식 대기자가 줄을 섰다. 대기가 의료 파동 전 석달에서 6개월로 두 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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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간 이식은 적절한 시점에 수술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인공 간이나 에크모(인공 심폐기기) 같은 첨단기기도 없다. 유일한 살길이 이식인데, 수술 대기가 길어지면서 이식 기회를 놓치고 숨지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측은 2~8월 최소한 10명 이상이 대기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병원만 그런 게 아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이식수술은 여러 진료과의 의료진 10명 이상 투입되는 큰 수술이다. 게다가 마취과 인력 부족 등이 겹쳐 현재 비상진료 체계에서는 수술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27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전국 이식의료기관의 간·신장·심장·폐·췌장 등 5개 장기의 이식 건수(뇌사·생체 기준)가 지난해 2~6월 1796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1270건으로 줄었다. 이들 장기는 생명에 직결된다. 행정안전부·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식 수술이 줄면서 2~5월 이식 대기 중 사망한 사람이 1013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942명)보다 71명(7.5%) 늘었다. 이 교수는 "살릴 수 있는 사람인데…"라고 말한다.

장기 이식은 주로 뇌사(腦死)자가 기증한 숭고한 장기가 쓰인다. 올 2~5월 뇌사추정자는 959명으로 지난해 동기(946명)보다 오히려 늘었다. 그런데도 의료 파동 탓에 수술이 줄면서 이식 수술이 거꾸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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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장·뇌질환 수술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은 최근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대동맥 박리를 찾아냈다. 당연히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데, 마취과 의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수고문 끝에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대동맥 박리는 분초를 다투는 초급성 질환인데, 병원을 알아보고 이송하느라 1~2시간 지체됐다.

이 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심장마취 의사는 일반 마취과와 달리 전문성이 요구된다. 최근 심장 마취전문 의사 4명 중 3명이 사직하면서 응급 수술이 불가능해졌다"며 "관상동맥우회로 수술, 심장판막수술 같은 심장병 수술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 병원에는 충남 당진, 경기 평택 등지에서 심장질환자가 실려온다. 월 1~2회 응급 수술을 했으나 마취과 의사난으로 지금은 0으로 줄었다.

부산대병원도 초긴급 수술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배용찬 부산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마취과 의사를 분야나 교수별로 분산 배치하면서 내가 하는 수술이 종전의 20~30% 수준으로 줄었다. 전신 마취가 필요한 수술은 어렵다. 선천성 얼굴 기형 환자는 수술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적기 대처가 어렵다. 이런 것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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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마취과 의사가 마취통증의학과로 개업하는 게 수술실 대란을 부추긴다. 올 4~6월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마취과 전문의는 806명, 동네의원(마취통증의학과 의원 등)에는 2575명이다. 동네의원에서 마취 대신 통증 치료를 한다. 지난해 4~6월(2460명)보다 오히려 늘었다.

한동우 대한마취통증의학회 기획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마취과 의사 부족이 진행돼 오다 이번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면서 "마취통증의학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늘고 있지만 수술실 마취과 의사보다 통증 분야가 인기를 끈다. 수술실 마취과 의사는 항상 대기해야 하고, 힘든 분야인데도 필수의료 과로 취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료개혁의 불을 댕긴 개두(開頭) 수술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신승훈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 수술은 보통 4~10시간 걸린다. 종전에는 수술 시작과 마무리를 전공의들과 함께 했는데, 이젠 교수 혼자 한다"며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안정되는 걸 보려면 30분~1시간 더 지나간다. 이런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응급 수술이야 몸을 던져 막지만, 뇌동맥류 결찰술, 뇌동맥류 색전술 등의 정규 수술은 절반 정도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중증환자를 보는 의사는 365일 24시간 환자를 봐야 하는데, 이 부담을 덜 해결책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외래-입원-수술'로 이어지는 진료의 흐름 중간중간에 장애물이 생겼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은 "전남이나 동해에서 발생한 심장질환자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그 지역에서 수술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일부 병원에서는 흉부외과뿐 아니라 마취과 인력이 번아웃(소진) 되면서 수술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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