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딥페이크 성범죄’ 심각…방치한 정부·플랫폼 문제 따져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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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53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위원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가 지난달 27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독자위원들은 8월 한 달간 중앙일보 지면과 디지털에 실린 주요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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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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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올림픽 관련 기사가 많은 한 달이었다. 8월 7일자 18면 ‘한팔로 한계 깬 당신, ‘꿈메달’입니다’ 기사는 성적 위주의 올림픽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더 본질적인 측면을 다룬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5일자 2면 기사에서는 재일동포 유도 대표 허미미 선수의 메달 소식을 전하면서 ‘허미미 파리서 진짜 한국인 됐다’고 제목을 달았다. 이중국적자였던 허 선수가 일본 국적을 포기한 때는 지난해 12월이다. 메달을 따는 등 어떤 성취를 해야 ‘진짜 한국인’이 된다는 식의 느낌을 줄 수 있다.

7일자 5면 기사는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무능한 자유주의자’ ‘급진적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영어 ‘리버럴(liberal)’을 ‘자유주의자’로 번역 보도한 것인데, 미국에서 ‘liberal’은 ‘conservative(보수)’의 반대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진보’나 ‘좌파’로 번역해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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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혜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8월 8일자 ‘올림픽 금 딴 첫 하버드대 졸업생’ 기사는 선수의 위대함이 상품화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게다가 하버드생이 올림픽 금메달을 처음 딴 것도 아니다. 육상 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딴 게 정확한 팩트다.

15일자 ‘필리핀 이모님 영어 잘한다 소문에 강남 워킹맘 몰렸다’ 기사는 지나친 비약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신청을 강남·서초·송파 등 서울 남동부 지역에서 많이 한 것은 그 곳에 워킹맘들이 많이 살아서이지 영어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6일자 ‘전통시장에 비닐 지붕 씌웠더니 MZ세대 몰려왔다’는 기사는 부정적인 뉴스들 속에 단비 같은 기사였다. 희망적인 좋은 사례를 통해 해법을 제시하는 긍정적 저널리즘을 보여준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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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광복절 다음날인 8월 16일자 1면에서 가장 큰 글씨로 제목이 달린 기사는 ‘한 명만 낳아도 더 준다…‘저출생 연계’ 연금 개혁’이었다. 1년을 통틀어 국가 지도자가 중요한 메시지를 내고 이를 국민 전체가 생각해보기에 가장 적절한 날이 3·1절과 광복절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실 관계자와 통화를 해서 얻은 데이터와 정보를 제시한 기사인데, 왜 이날 1면에 이렇게 편집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이날 4면엔 ‘한국판 NED ‘북한 자유인권펀드’…북 주민에 바깥세상 알린다’ 기사는 북한 인권 문제와 미국 민주주의기금(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을 연결시킨 정부의 과한 어젠다 설정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 안타깝다. 1면 ‘윤 대통령 8·15 독트린’ 기사도 ‘독트린’이란 명명을 할 만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이를 중앙일보가 지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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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철호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8월 16일자 ‘고령 운전, 면허 반납만 답 아냐…미국·일본 보험사가 내놓은 묘수’ 기사는 재교육 과정을 이수하거나 사고 예방 장비를 부착한 고령 운전자의 보험료를 깎아주는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좋은 정보가 되는 인상적인 기사였다. 14일자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사의 표명’ 기사에 ‘최근 부패방지국장 직무 대리를 수행했던 고위 간부 사망에 대한 순직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라는 문장이 있다. 직무대리가 사망한 건지 직무대리를 옆에서 도와줬던 간부가 사망한 건지 모르겠다. 권익위 보도자료에 이렇게 나와 있더라도 독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데스킹이 필요하다. 올림픽과 관련해 안세영 선수의 발언이 많이 보도됐다. 이 문제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전문가적인 시각과 해외 사례 등을 담은 보도가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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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이영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장=8월 13일자 1면에 ‘안보 투톱 깜짝 교체’ 기사를 게재하면서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해서는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는 것 외에 아무 내용이 없었다. 안 전 재판관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적임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장이 이렇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만큼 가벼운 자리인가 의문이 들었다. 야당이 판사 임용 자격을 완화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대해 21일자 8면 기사에서 “이재명 대표의 재판을 앞두고 사법부와의 관계 개선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며 다소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 그런데 하급심의 심각한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해 재판 능력이 우수한 법관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법원조직법 개정도 필요하다. 중앙일보가 사법부의 문제에 두루 관심을 갖고 더욱 심도 있는 문제 제기를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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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위원장)=8월 12일자 ‘은퇴 ‘베테랑’ 재고용, 해법 급하다’ 기획은 고령 인력 활용법을 제시한 시의적절한 기사다. 저출산 때문에 젊은 인력 수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은퇴자의 경력·경험·지식을 사장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한 때다. 일본만 하더라도 정년 후에 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심층적으로 일본의 사례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의정갈등이 6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제 일을 하고 있는지 짚어야 될 때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만성적인 문제로 보고 포기하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도록 좀 더 주의를 환기하는 보도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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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웅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올여름 더위는 온도와 열대야 지속 면에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울 만큼 대단했다. 8월 5일자 ‘여주 40도, 주말까지 질식 폭염’ 등 중앙일보도 폭염 기사를 여러 차례 다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날씨 보도에 치중했고, 이로 인한 농가와 어민의 피해, 소외된 사람들의 어려움, 폭염으로 인한 산재 등은 외면한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14일자 ‘극한 폭염 시대 두 도시 이야기’ 기사는 폭염에 대한 대안 모색 측면에서 좋은 기획이다. 도시숲 조성으로 ‘대프리카’에서 벗어난 대구와 노후 주택이 밀집한 광주 도심의 ‘광프리카’를 비교 보도하는 기사 형식이 독자들에게 더 와닿았을 것이다.

7일자 필리핀 가사관리사 입국 관련 기사는 필리핀 노동자 관점에서 인종차별 등에 대한 우려를 중심으로 보도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구현되고 정착하기까지 해결해야 할 내용을 다루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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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8월 9일자 1면 ‘서울 그린벨트 풀어 8만 가구 공급’ 기사는 정부가 부동산 종합대책의 하나로 서울과 서울 인근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그린벨트 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주택 공급 문제의 해결이 당장에 시급할지 모르나 이제 우리나라도 환경 문제에 더 신경써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6일자 4면 ‘하루 235조 증발, 더 커진 R의 공포’는 증시 대폭락이 있었던 5일 블랙 먼데이를 다룬 기사다. 이후 열흘 넘게 지나서야 엔 캐리 청산 문제에 대한 기사(19일자) 등 관련 분석 기사가 나왔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끝난 것이 아닌데, 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기사가 즉각적으로 있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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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연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8월 19일자 AI 면접관 시대에 대한 기획 기사는 흥미로운 한편 아쉬움도 남았다. 변화하는 흐름을 짚어준 것은 좋았지만 AI의 의사 결정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전혀 다뤄지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해외에서는 알고리즘이 지닌 편견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차별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HR(인사관리)에서의 AI 활용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추세다.

27일자에 보도된 ‘딥페이크 성범죄 무차별 확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n번방 사태가 발생한 것도 2년 전이고, 생성형 AI 기술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우려는 계속 제기돼왔다. 그동안 이를 방치한 정부와 기업, 플랫폼과 교육 시스템 등의 문제를 살펴보는 기사가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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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부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28일자 4면 ‘문 정부서 빚 늘려놔 힘들어…긴축 유지하되 쓸 데는 쓴다’ 기사 등 2025년 예산안에 대한 일련의 보도들은 정부의 기조를 전달하는 게 그치고 있어 아쉽다. 예산안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함께 제공됐어야 했다.

사안의 중요성과 복잡성에 비해 충분한 맥락화가 이뤄지지 못한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26일자 ‘부모·자식 더블케어…‘젊은 노인’ 등골 휜다’ 기사는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적인 부담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쉬웠다. 돌봄의 사회적·국가적 책임에 대한 미약한 인식과 관련 법·제도의 미비점 등 구조적 문제를 짚지 않으면 논의가 자칫 대증요법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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