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들창 내고 한지 감싸니…알파룸이 사랑방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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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창(왼쪽)은 아파트 알파룸에 숨통을 냈고, 한지로 만든 집은 전시장에 가볍게 매달렸다. 한국적 공간의 구조·소재·정서를 현대 생활에 가져온 ‘방, 스스로 그러한’ 전시장면. [사진 아름지기·그루비주얼]

“알파룸 어떻게 꾸밀까요?” 집 꾸미기와 관련해 요즘 많이 나오는 질문이다. 알파룸은 아파트 평면 설계에서 남는 내부 자투리 공간. 방으로 쓰기에는 작은 이 공간은 거주자 취향과 요구에 따라 식재료 보관창고, 미니 공부방, 홈바 등으로 변신해, 다 똑같을 것 같은 아파트에 개성을 더한다. 서울 효자로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전시 ‘방(房), 스스로 그러한’에서 맨 처음 만나는 공간이 알파룸이다. 최윤성 아름지기 아트디렉터는 한옥의 사랑방에서 알파룸 연출의 실마리를 찾았다. 벽에 들창을 내 좁은 공간에 숨통을 틔우고, 알파룸 밖 응접실과 연결했다. 수납장 앞에는 보료를 응용한 이동식 데이베드를 뒀다. 그는 “한옥 건축의 중첩미를 현실에 반영할 묘를 들창에서 떠올렸다. 들창을 통해 공간이 겹쳐지면서 깊이감을 주고 풍성해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적 공간이 과연 현대 생활과 동떨어진 걸까. 우리 의식주를 주제로 매년 가을 전시를 열어온 아름지기가 올해 전시(‘방, 스스로 그러한’)를 통해 던지는 질문이다. 한국미의 특징을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 삶에 스며든 한국적 공간의 현대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2014년 ‘소통하는 경계, 문’, 2017년 ‘해를 가리다’, 2020년 ‘바닥, 디디어 오르다’에 이어, 이번에는 벽·천장·바닥이 모인 방을 공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창·병풍·한지 등 한옥 건축의 구조·소재를 활용해 한국적 미를 담은 인테리어를 제안한다. 김민재·김찬혁·박지원·최원서, 스튜디오 히치,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등 9개 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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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창(왼쪽)은 아파트 알파룸에 숨통을 냈고, 한지로 만든 집은 전시장에 가볍게 매달렸다. 한국적 공간의 구조·소재·정서를 현대 생활에 가져온 ‘방, 스스로 그러한’ 전시장면.권근영 기자

디자이너 임태희는 한지로 만든 집을 전시장에 매달았다. 좌탁도 창틀도 액자도 모두 한지로 감쌌다. “손가락으로 한지 창호에 구멍을 내자 할머니는 그 자리에 한지를 꽃 모양으로 오려 붙이셨다. 방학이면 머물던 할머니의 한옥 창호지 너머 눈부신 아침 햇살도 아직 기억한다”는 그는 한지로 아늑함이라는 정서를 시각화했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집공방은 한옥 가리개의 유연한 공간 분할 방식을 가져왔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 묘주도의 삼선병(세 개의 날개를 가진 병풍), 조선 동궐도 속 취병(대나무로 틀을 짜 식물을 심은 정원용 병풍), 옛사람들이 야외 활동할 때 쓰던 삽병(한 폭 병풍을 지지대에 끼워 세우는 가벽) 등이다.

한국적 공간에 맞는 가구도 있다. 온지음 디자인실 이예슬은 고구려 무용총 접객도 속 삼발이(소형 입식 상)를 보며 ‘고구려 왕이 가구를 만들라고 한다면 어떤 소재를 활용할까’ 자문했고, ‘철보다 가벼운 가죽에 옻칠하면 화살촉과 총알이 뚫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숙종실록』 기록을 참고했다. 그 결과물이 옻칠로 마감한 가죽 상판을 세 개의 금속 다리가 받친 탁자다.

아름지기 신연균 이사장은 “재료가 지닌 고유한 물성을 존중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태도를 통해 만들어진 한국의 미감이 현대 주거 공간에 스며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름지기는 우리 문화유산을 보살피고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 비영리 문화단체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성인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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