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국 또 침체 공포…코스피 2600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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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뉴욕증시가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가 크게 흔들렸다. 4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3.15% 빠진 2580.8로 마감하며 2600 아래로 주저앉았다. 코스닥 지수도 3.76% 내린 731.75를 기록했다. 지난달 5일 ‘블랙 먼데이’ 이후 한 달 만의 최대 낙폭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65조원, 코스닥 시장에서 14조원 등 하루에만 총 79조원이 증시에서 증발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의 공포를 키운 건 미국 노동절 연휴가 끝난 직후 나온 제조업 경기 위축 신호였다. 3일(현지시간)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집계한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2로 예상치(47.5)를 밑돌았다.

Fed, 이달 빅컷 가능성 41%…내일 고용지표가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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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코스피가 전일 대비 83.83포인트(3.15%) 내린 2580.80으로 마감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이 수치가 50 아래면 경기가 위축됐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미국 제조 업황이 다섯 달 하강 국면에 있음을 뜻한다. 이날 S&P글로벌이 발표한 별도의 8월 제조업 PMI도 두 달 연속 50을 밑돌았다.

시장이 이 지표에 민감한 건 고용 창출에 대한 기여도 때문이다. 제조업 침체는 고용 감소→소비여력 하락→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증시를 뒤흔들었던 한 달 전 블랙 먼데이도 잇따른 제조업 지표 부진 신호에 이은 고용 지표 부진으로 촉발됐다.

이에 더해 애틀랜타연방은행은 이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예측 모델인 ‘GDP나우’를 통해 올해 3분기 GDP 증가율 예측치를 지난달보다 0.5%포인트 낮춘 2%로 제시했다. ISM 제조업 조사위원회의 티머시 피오레 위원장은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과 선거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면서 수요가 억눌린 상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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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최근 중국과 유로존의 부진한 성장 전망까지 맞물려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글로벌 증시를 짓눌렀다. 뉴욕증시에서 S&P500 지수는 2.12%,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51% 내렸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3.43%)는 최근 인공지능(AI) 회의론과 맞물려 하락 폭이 더 컸다. 지난달 5일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이날 코스피 종목은 937개 중 862개가 하락세로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3.5% 내리며 가까스로 7만원에 멈춰섰고, SK하이닉스는 8% 급락하는 등 반도체주의 타격이 컸다.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 착수 등으로 엔비디아 주가가 9.5% 빠지며 반도체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영향이 컸다. 네이버(-4.7%), 카카오(-5.7%) 등 주요 종목 대부분도 코스피보다 더 크게 하락했다. 4일 달러당 원화가치는 전날 대비 0.80원 하락한(환율 상승) 1342.2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국제유가 WTI 70달러…연중 최저치
일본 닛케이255지수(-4.2%), 대만 자취안지수(-4.5%), 중국 상하이종합주가지수(-0.67%), 홍콩 항셍지수(-1.1%) 등 아시아 주요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 더해 AI 거품론, 엔캐리 트레이드(저렴한 엔화로 산 해외자산을 되파는 현상) 청산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올 3분기에 고점(21%)을 기록하고 4분기부터 18%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모건스탠리는 “AI 산업 투자 랠리는 영원하지 않다. 결국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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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떨어진 코스피

국제유가도 맥을 못 췄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3.21달러(4.36%) 내린 배럴당 70.34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침체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이 특정 데이터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 정도로 크지 않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노동시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Fed의 실업률 장기 목표(4.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며 “아직 경기 침체를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증시 급락은 실제로 경기 침체 우려 가능성이 커졌기보다는 투자 심리가 악화한 탓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선은 오는 6일 발표되는 8월 비농업 고용 지표에 쏠린다. 이 지표는 지난달 예상치(18만5000명)를 크게 밑돈 11만4000건을 기록하며 경기 침체 우려를 촉발했다. 월가에선 신규 고용이 10만 명 이하로 나오거나 실업률이 4.4~4.5%로 오르면 Fed가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 3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 FOMC에서 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은 41%로 1주일 전보다 5%포인트 올랐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팀장은 “미국 경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면 빅컷과 큰 폭의 달러 약세 가능성도 작아져 투자 심리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4일 미국 구인·이직 보고서, 5일 8월 ISM 비제조업 PMI, 6일 8월 고용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창용 한은총재, 금리인하 신중 입장 유지
미국이 빅컷에 나선다면 이는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시점을 놓쳤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그간 정치권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은 내수 부진을 이유로 한은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해 왔다. 그러나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면서도 “금융 안정 등을 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해 볼 때”란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집값 급등세 때문에 인하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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