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자존심 팔 순 없다’ US스틸 일본 매각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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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클레어튼의 US스틸 공장 전경. [AP=연합뉴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합병(M&A) 계획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은 4일(현지시간) 정부 소식통들을 인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소식통들을 인용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지난달 31일 일본제철에 서한을 보내 이번 M&A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2위인 US스틸이 일본제철에 인수될 경우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의 근간이 되는 철강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논리다. CFIUS는 외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승인 권한을 가진 재무부 주도 정부 기구다. M&A 무산 전망 보도에 이날 US스틸 주가는 전일 대비 17.5% 하락했다.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제철이 30억 달러가량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며 “이 돈은 US스틸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직원들의 일자리를 보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협상이 깨지면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일본제철의 돈과 기술이 없으면 US스틸은 미국 내 공장 여러 곳의 문을 닫고, 본사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치권이 아무런 대안도 없이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각 무산 전망 보도에 US스틸 주가 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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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US스틸 본사 앞에서 일본제철과의 합병을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US스틸 근로자들. 이들과 달리 US스틸 노조와 미국철강노조,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고용 불안과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합병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제철은 5일 성명에서 “CFIUS로부터 심사 결과를 받지 못했다”며 “이번 인수가 국가 안보상 우려가 없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명확하게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제철의 US스틸 투자는 일본제철만 실행할 수 있다”며 “US스틸과 미국 철강업계 전체는 더 강고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제철은 지난해 12월 149억 달러(약 19조9000억원)를 투입해 US스틸을 인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철강 생산량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은 세계 24위인 US스틸을 인수해 세계 3위로 몸집을 불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같은 달 CFIUS 심의를 요청했으며 백악관은 당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승인하기 전 이번 거래가 국가 안보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US스틸 주주들은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지만, 전미철강노동조합(USW) 등 노조는 반대에 나섰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근거지였던 펜실베이니아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경합주(swing state)인 만큼 US스틸 매각은 대선 이슈가 됐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노동자 표심을 고려해 합병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US스틸을 일본제철에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제철 “인수가 20조원, 미국 기업 유지”
대통령 재임 당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웠던 트럼프는 지난 1월 “재집권하면 인수를 막겠다”고 공언했다.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바이든도 지난 3월 인수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의 대선후보 사퇴 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해리스는 미국 노동절인 지난 2일 바이든과 함께 피츠버그를 찾아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선언했다. WP는 “미국의 동맹인 일본 기업이 참여한 거래를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은 해리스가 노조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해리스의 발언 직후 일본제철은 “미국 내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겠다”며 “US스틸을 미국 기업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US스틸을 인수하더라도 이사회 대부분을 미국 시민권자로 하고, 3명의 사외이사 역시 미국 시민권자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해고나 공장 폐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합병 무산은 미·일 간 외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제철은 인수가 무산되면 5억6500만 달러(약 7550억원)의 위약금을 물 수 있다. 닛케이는 노무라증권 보고서를 인용해 “US스틸 인수는 일본제철에 있어 중요한 성장 전략으로,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한 경우 새 성장 전략 등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인수 무산이 일본제철에도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일경제협의회는 5일 성명을 내고 “(인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많은 우려가 있다”며 공정한 심사를 요구했다.

올해로 123년 역사의 US스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존 피어몬트 모건이 설립한 회사다. 한때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으나, 20세기 후반 한국·중국·일본 등의 철강회사들이 약진하며 경영 악화에 시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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