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방비 2배로" 군사력에 목숨 건 폴란드… 'K방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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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중부 도시 키엘체(Kielce)는 인구 20만명이 안 되는 도시다. 11세기 사냥꾼들의 정착지로 세워진 키엘체는 12세기 만들어진 대성당으로 유명하다. 폴란드 역사에선 외세에 저항한 도시로 잘 알려졌다. 이 도시는 매년 이맘때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죽음의 상인’들로 북적인다. 폴란드의 대표적 방위산업전시회인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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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오른쪽)이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 한국관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가운데)과 둘러보고 있다. 방위사업청

올해로 32번째인 전시회는 지난 3~6일(이하 현지시간)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엔 769개 업체가 참가했고, 계약 액수가 20억 즈워티(약 6900억원)이었다. 미국의 군사 전문 매체인 디펜스 뉴스(Defense News)는 폴란드 국방비의 기록적 증액 덕분에 전 세계 방산업계들이 MSPO로 몰려들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폴란드 정부는 2025년 예산 초안을 발표했는데 국방 예산안은 역대 최대인 1870억 즈워티(약 65조원)였다. 이는 폴란드 국내총생산(GDP)의 4.7%일 예상이다. 2023년 폴란드 국방비는 920억 즈워티(약 32조원ㆍGDP 3.9%)였다. 올해는 1370억 즈워티(약 47조원ㆍGDP 4.2%)였다. GDP 대비 국방비는 2023년부터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방비를 2년 사이 2배로 늘리겠다는 뜻이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3일 MSPO 개막식에서 “우리가 필요한 건 안보, 안보, 그리고 안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15일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폴란드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서 도날드 투스크 총리는 “(폴란드의 목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군대를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국방부는 7월 4일 러시아의 호전성을 언급하면서 “현재의 지정학적 도전에 직면해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니 방산업계가 폴란드로 몰릴 만하다. 한국 K방산의 2022년 ‘폴란드 대박’이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폴란드가 정말 방산업계의 ‘엘도라도(황금도시)’일까.

입이 떡 벌어지는 폴란드의 무기 도입 사업

폴란드의 ‘무기 장바구니’에 굵직굵직한 사업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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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폴란드의 첫 F-35A 롤아웃 행사가 열렸다. 폴란드는 F-35A에 폴란드의 기병인 후사르(Husarz)라는 별명을 붙였다. 32대를 계약했고, 32대를 더 사려고 한다. 록히드 마틴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라이트닝Ⅱ 32대 구매(46억 달러). 32대 추가 구매 검토

F-15EX나 유로파이터 타이푼 32대 구매 검토

AH-64E 아파치 공격 헬기 96대 구매(10억 달러)

노스럽 그루먼의 통합 전투 지휘 시스템(IBCS) 구매(25억 달러)

에어로스탯(Aerostatㆍ밧줄로 지상에 묶인 기구) 기반 조기 경보 레이더 시스템 4식(10억 달러)

재래식 잠수함 3~4척 구매하는 오르카(ORKA) 계획

계약 액수만 91억 달러(약 12조 2000억원)다. 여기엔 한국과 미국에 이미 주문했거나 계약한 물량은 빠졌다. 입이 떡 벌어진다.

이처럼 폴란드가 국방력 강화에 서두르는 이유는 이웃인 러시아 때문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적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 희생자는 폴란드라 믿고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방장관을 지냈던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하원의원은 지난 2월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러시아를 저지할 수 있는 시간이 3년밖에 없다”고 말했다.

좋다.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무기를 많이 사고, 군사력을 빨리 키우려는 이유는 잘 알겠다. 그렇다면 폴란드가 이런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안보 위협에 2년 사이 2배가 뛴 국방비

우선 폴란드 경제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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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폴란드 국군의 날 때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이 비에스와프 쿠쿠와 총참모장과 함께 사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폴란드 경제는 나름 탄탄하게 성장했다. GDP 성장률은 2019년 4.5%, 2020년 -2.0%, 2021년 6.9%, 2022년 5.3%, 2023년 0.2%였다. 2023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원자재 수급이 어려워지고, 소비자 구매력이 주는 등 악재가 겹쳤다. 그러나 올해는 소비와 투자가 되살아나면서 GDP 성장률이 2.7%일 전망이다.

그래도 폴란드 못잖게 안보 위협이 큰 한국과 비교하면 좀 과하다는 느낌이다. 한국의 내년도 국방 예산안은 61조 5878억원이다. 2023년은 57조 143억원(GDP의 2.8%)였다.

스톨홀롬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3년 전시가 아닌 평시 국가 중 알제리(8.2%), 사우디아라비아(7.1%), 오만(5.4%), 이스라엘(5.3%), 쿠웨이트(4.9%) 다음이 폴란드였다. 대부분 중동 산유국들이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폴란드의 GDP는 2023년 전 세계 21위였다. 한국은 13위였다.

올해 기록적인 국방비 증액의 배경엔 우여곡절이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총리와 대통령의 이원집정제로 운영된다. 지난해 말 총선에서 투스크 총리가 8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그는 두다 대통령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양측이 내년 예산안에서 붙었다. 투스크 총리는 재정악화를 들며 예산을 삭감하려 했지만, 두다 대통령이 반대했다. 결국 내년 예산안이 예상보다 올랐고, 국방 예산안의 증가율은 더 가파랐다. 내년 재정적자는 GDP 대비 5.5%로 올해(5.1%)보다 더 높아진다.

일단 두다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그의 임기는 내년 8월에 끝난다. 이미 재선했기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그의 법과 정의당이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비싼 무기값보다 만만찮은 운용비가 걸림돌

폴란드 국방비엔 두 종류의 ‘버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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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폴란드에서 열렸던 나토 지상군 연합 훈련인 드래곤 24(Dragon 24)에서 폴란드 육군의 K2 흑표 전차가 기동하고 있다. 폴란드 육군은 K2 외 미국의 M1A2C 에이브럼스, 독일의 레오파르트 2A4를 보유하고 있다. 레딧

하나는 폴란드 국가 개발 은행(BGK)가 운영하는 국군 지원 펀드다. 국방비와 별도로 폴란드 군사력 증강에 보태려고 조성한 국가 기금이다. 또 하나는 유럽방위기금(EDF)이다. 유럽연합(EU)이 대규모 기금으로 무기를 공동구매하는 프로그램이다.

폴란드 현지 군사 전문 매체인 디펜스24(Defense24)에 따르면 내년 국방 예산안은 1870억 즈워티는 국군 지원 펀드를 더한 수치다. 그런데 디펜스24는 국군 지원 펀드로 나가는 무기 구매 사업이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국군 지원 펀드 때문에 부채가 늘어나는 데 대해서 폴란드에서도 우려가 많다.

무리하게 무기를 살 수 있지만, 앞으로가 더 힘들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바로 유지보수운영(MRO) 비용이란 ‘걸림돌’이다. 미국과 나토의 무기는 최첨단이지만, 굴리는 데 돈이 많이 든다.

폴란드가 최대 64대를 바라는 F-35A의 경우 운용비로 악명이 높다. 미국 공군에 따르면 2023회계연도 F-35A의 1시간당 운용비는 3만 달러다. 2020년 공군 F-35A의 1대당 연간 운용비는 47억 8000만원이었다.

폴란드는 AH-64E 아파치 96대를 대량구매한다. 한국 육군 항공대가 폴란드 육군 항공대보다 규모가 크지만, AH-64E 유지보수를 버거워한다는 후문이다. 민간 업체가 정비를 도와주거나, 민간 업체에 외주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민간 업체에 줘야 하는 연간 정비비용이 상당할 것이다.

게다가 폴란드는 최근 여러 나라에서 같은 종류의 무기체계를 사오면서 ‘무기 백화점’이 돼가고 있다. 전차에서 한국의 K2 흑표·미국의 M1A2C 에이브럼스·독일의 레오파르트 2A4, 다연장포에서 한국의 천무·미국의 하이마스(HIMARS) 등 무기체계 당 두세 가지인 경우가 제법 있다. 다양한 무기체계는 조종 방식과 작동 방식이 서로 다르다. 교육·훈련 과정을 달리 만들어야 하고, 유지보수도 어려워진다.

김민석 에비에이션위크 한국 통신원은 “옛날 소련과 동유럽 군대는 대부분의 무기를 치장물자로 잡고, 일부를 여러 장병이 돌려가며 움직이며 기량을 유지했다”며 “미국과 나토 무기들은 이렇게 운용하지 않는다. 평시 모든 무기로 훈련해야만 전시 작전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K방산 ‘폴란드 대박’ 휘청거릴까

폴란드가 국방비로 벅찰 수 있다는 예측은 전적으로 폴란드 국내 문제다. 그런데 그 유탄이 한국까지 날아올 수 있다. K방산의 ‘폴란드 대박’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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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도날드 투스크 총리(가운데 왼쪽)과 안제이 두다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15일 폴란드 국군의 날 행사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

투스크 총리는 재정 적자를 줄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규모가 큰 계약부터 꼼꼼하게 따져 저리 융자나 대금 상환 유예 등 유리하게 계약을 바꾸려고 한다. 미국과의 계약은 폴란드가 미국의 안보 공약을 바라기 때문에 건들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을까. K방산이다.

이미 두다 대통령과 투스크 총리는 K방산과의 계약을 놓고 다퉜다. 투스크 총리가 한국 무기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두다 대통령은 K방산 계약을 강행하겠다고 맞섰다. 이번 MSPO 기간에 한국과 폴란드는 K2 전차 2차 이행계약(180대)에 대해 협의했지만, 입장 차이를 크게 좁히지 못했다.

투스크 총리가 속한 시민 연단은 친유럽파다. 현 폴란드 정부는 독일연방군 주둔까지 검토하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과의 관계는 한일 관계와 같다.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상주하는 꼴이라 생각하면 된다. 앞으론 폴란드와 독일, 더 나아가 프랑스 등 나토 국가와의 군사 협력이 더 단단해질 것이다.

카시미르 풀라스키 재단의 토마스 스무라 프로그램 디렉터는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 이후 폴란드와 독일·프랑스의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들 국가의 방산업체가 폴란드 방위산업과 공동 프로젝트에 협력하는 데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K방산 계약은 주로 폴란드의 국군 지원 펀드로 집행되는데, 지난해 국군 지원 펀드의 불용액이 늘었다. 조짐이 안 좋다.

유럽방위기금으론 유럽 30개국 방산업체의 무기만 살 수 있다. 이미 사용 중인 장비의 경우 예외로 뒀지만, 궁극적으론 유럽 생산 무기로 대체해야 한다.

냉정하고 차분한 협상 전략이 필요

2022년 ‘폴란드 대박’ 덕분에 K방산은 한 단계 도약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냉정하고 차분해져야 할 때다. 한국은 지난 2월 폴란드에 금융 지원을 더 해줄 수 있도록 수출입은행의 법정 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렸다. 국내 시중 은행들의 공동대출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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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6일 K9 자주포 24문과 K2 전차 10대 등 1차 폴란드 수출 물량이 그디니아 항구에 도착했다. 화물선에서 크레인으로 내려지는 K9. 폴란드 국방부

그런데도 폴란드는 더 바라고 있다. 정부보증을 요구하면서, 더 좋은 조건의 금융 지원을 바라고 있다.

한국이 먼저 폴란드와의 계약을 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폴란드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 폴란드의 투스크 총리도 한국이 미국·독일·프랑스보다 더 좋은 방산 협력 파트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폴란드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한국에 강하게 나가고 있을 뿐이다.

상대를 이해하면서도 우리의 레드라인은 분명하게 긋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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