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격호 리더십 기려야" 평전 만드는 신영자 모녀…불편한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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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신격호 롯데장학관에 롯데그룹 전직 최고경영자(CEO)들이 신격호 평전 준비를 위해 모인 가운데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경미 기자

“신격호 회장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업뿐이었다. 80대 중반이 돼서도 ‘나는 일하는 게 아니야. 이게 내 삶이야’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이철우 전 롯데쇼핑 대표)

“1979년, 한국에선 생소했던 구찌를 처음 면세점에 들여왔을 때 기뻐하던 신격호 회장의 모습이 생생하다. 롯데는 면세 사업을 통해 국내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고 고용 창출, 인재 교육에도 이바지할 수 있었다.”(최영수 전 롯데면세점 대표)

지난 4일 서울 마포에 있는 신격호 롯데장학관 대회의실. 롯데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과 그룹의 역사를 함께 썼던 전직 최고경영자(CEO) 십여 명이 모여 신 회장과의 일화를 공유했다. 경영자로서 신 명예회장을 조망하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조직된 ‘신격호 CEO 리더스포럼’의 세 번째 행사다.

신 명예회장의 장녀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이복누나인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과 신 의장의 장녀인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이날 포럼을 찾았다. 롯데재단은 롯데 OB들이 ‘내가 겪은 신격호 회장’을 주제로 작성한 원고 50여 편을 모아 다음 달 ‘신격호의 꿈, 함께한 발자취: 롯데 CEO들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평전을 출간할 계획이다.

지난 6일에는 롯데 전직 CEO 30여 명과 롯데재단 관계자 등 약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전 원고에 대한 시상식도 개최했다. 신 의장은 “원고를 써주신 롯데그룹 전직 CEO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롯데재단에서 아버님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이어받아 후대에도 전하겠다”고 말했다.

"창업주 정신 기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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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평전을 준비 중인 롯데그룹 전직 최고경영자(CEO)들과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 장혜선 롯데재단 이사장이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신격호 롯데장학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경미 기자

9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평전 초고에는 롯데쇼핑,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롯데월드, KP케미칼(현 롯데케미칼), 롯데중앙연구소 등 주요 계열사 전직 CEO가 경험한 신 명예회장의 경영 일화가 담겨 있었다. 2007년부터 5년간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면 롯데월드 테마파크에서 시작해 롯데마트 월드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12개층의 매장을 3시간 동안 점검하고(정기석 전 롯데월드 대표), 롯데제과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우유나 물은 반드시 업계 1위 제품을 사용하라고 지시하는(김창규 전 롯데건설 대표) 등 치밀한 조사와 분석에 기반해 내실 경영에 집중하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특징이었다는 설명이다.

평전 집필에 참여한 이철우 전 롯데쇼핑 대표는 “한 기업인에 대해 계열사 CEO들이 글을 모아 기록한 평전은 전례가 없는 일로 알고 있다”며 “신 명예회장의 집념과 목표를 이룩하기 위한 열정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격호 사업에 불편한 롯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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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장학재단은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 '신격호 롯데장학관' 1층 로비에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흉상을 제막했다. 사진 롯데장학재단

하지만 롯데재단과 전직 임원들의 이런 활동에 롯데그룹은 불편한 기색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전임 CEO는 “롯데지주 차원에서 평전 준비 작업을 반대하고 집필 작업을 중단할 것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룹은 비상경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주사의 승인을 받지 않은 활동을 전개하느냐는 지적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롯데그룹과 재단의 엇박자는 올해 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앞서 롯데그룹은 올해 1월 신 명예회장의 기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4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이곳은 지난 2021년 신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흉상과 기념관을 조성한 장소다. 반면 롯데재단은 올해 2월 울산의 신 명예회장 선영에서 4주기 추모식을 열었고 4월에는 서울 마포 신격호 롯데장학관에 흉상을 건립했다.

롯데재단은 지난 5월 신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더 리더’를 제작하기도 했다. 재단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을 공연에 초대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축하 화환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울산 신격호 기념공원 조성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롯데재단은 신 명예회장의 생가와 롯데별장 인근에 기념관과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롯데별장은 신동주·신동빈 형제가 절반씩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다. 롯데재단 관계자는 “재계 순위에 비해 빈약한 창업주 생가가 그룹의 격에 어울리는 지역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호응을 보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회장과 달리 롯데그룹 측의 회신이 없어 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주 부각 지나쳐, 반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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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신격호 롯데 창업주 4주기를 하루 앞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1층에 마련된 신격호 명예회장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그룹 측은 “재단의 활동은 그룹과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창업자의 업적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활동은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살 수 있다”며 “현재 재단의 활동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이끄는 롯데가 실적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신영자 의장이 신 명예회장의 경영능력을 강조하고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상황에 롯데그룹이 불편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 의장의 두 딸인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장선윤 호텔롯데 전무가 신유열 전무의 경영승계 작업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롯데재단 측은 “신 명예회장을 재조명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며 경영 참여와는 관계가 없다”면서 “현재 롯데그룹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만큼 창업자의 정신을 더욱 강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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