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할아버지 댁 가던 초등생 끌려간 생지옥…다섯 번이나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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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강제수용 피해자 한일영(66)씨가 경기 수원시의 선감학원 아동인권유린 진실규명 추진회 사무실에서 8일 오후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한씨는 "내게 국가는 가중처벌감"이라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할아버지 만나러 가던 아이, 부랑아로 둔갑

국가는 한일영(66)씨를 다섯 번 잡아 가뒀다. 두 차례의 서울시립갱생원 생활과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모두 한씨가 강제로 끌려간 곳들이다.

1971년,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한씨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당시 한씨는 서울 성북구로 향하는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버스에 내려 삼선교 인근을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경찰에 붙잡혔다. “가평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부모님도 있다”고 말했지만 한씨는 무작정 파출소로 끌려갔다.

피아노 레슨을 받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한씨는 ‘종로3가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부랑아’로 둔갑해 경찰 기록에 남겨졌다. 그 길로 한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선감학원으로 보내졌다. 부랑아 교화를 명분으로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소년들을 강제수용한 곳이다.

숱한 강제노역과 폭행이 자행됐다. 혹한에서 일하다 동상에 걸려 한씨는 왼발가락 3개를 잘라내야 했다. 한씨는 1975년 썰물 때를 골라 인근 섬으로 간신히 탈출했다. 수많은 아이가 그처럼 탈출을 시도했다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겨우 찾아간 경기 가평 본가의 집 주인은 바뀌어 있었다. 실종된 한씨를 찾다가 불화가 생긴 부모님은 이혼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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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모습.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불행은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 싶어 프레스 공장에 취직해 새 삶을 준비했다. 1980년 8월 여름 휴가를 받아 동네 아이들과 함께 뚝섬유원지 수영장으로 간 한씨를 경찰이 불렀다. 또다시 영문도 모른 채 성동경찰서로 끌려간 한씨는 삼청교육대로 보내졌다.

왼손 팔목에 새긴 문신이 화근이었다. 선감학원 수용 당시 한씨는 연탄으로 ‘삶’이라는 작은 글자를 몸에 새겼다. 한씨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보면서 위로를 받아 새긴 문신이었다”고 했다. 그해 10월 삼청교육대에서 도주했다가 붙잡힌 한씨는 공주교도소에서 1년을 보내야 했다.

정규직은 꿈도 못 꿨다. 한씨는 “경찰이 다니는 직장을 수시로 찾아와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 현장의 ‘데모도(조공·助工)’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40년이 지난 2020년이 돼서야 한씨는 비로소 삼청교육대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씨 자신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피해도 있었다. 지난 2월 한씨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한 조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씨가 두 차례 서울시립갱생원에 수용됐다는 기록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제야 기억 저편에 밀어둔 악몽이 되살아났다.

선감학원에서 나온 한씨는 1977년 미아리 자활근로대에서 넝마주이를 하다 경찰에 단속됐다. 그 길로 성인 부랑자 시설인 서울갱생원으로 강제 수용됐다. 바깥 사회에서 건달 생활을 하던 이들이 소위 ‘통·방장’ 역할을 하면서 가혹 행위를 일삼는 곳이었다. 낮에는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공사장 단순 잡역에도 투입됐다. 갱생원에서 겨우 탈출한 한씨는 “같은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르면 가중처벌을 하는데, 내게 있어선 국가가 가중처벌감이다”라고 말했다.

강제수용한 뒤 인권침해…“회전문식 입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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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성인부랑인수용시설 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간담회에서 피해자 이영철(가명)씨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씨는 1973년 대구역 대합실에서 대구시청 직원에 의해 대구시립희망원에 보내진 뒤 23년 동안 시설을 떠돌면서 지냈다. 뉴스1

한씨와 같이 여러 시설에서 강제수용된 ‘다중 피해자’가 즐비했다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서울시립갱생원·대구시립희망원·충남 천성원(성지원, 양지원)·경기 성혜원’ 총 4곳의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37년 동안 은폐된 전국 부랑인 수용시설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규명한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 시설들은 1975년 정부의 부랑인 단속 및 강제수용의 근거 규정이었던 내무부 훈령 410호 등을 근거로 운영됐다. 부산 형제복지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형제복지원은 1987년 인권 침해 사실이 알려져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서울시립갱생원 등은 사정이 달랐다. 1987년 당시 신민당이 충남 천성원을 방문 조사하려 했지만, 시설 측이 국회의원과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진상규명이 흐지부지됐다.

이번 조사에선 수용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시설로 넘겨진 ‘회전문 입소’ 사실이 확인됐다. 1986년 형제복지원(부산)에서 성혜원(경기)으로 전원된 수용자(69명) 중 신상 자료가 남은 9명의 기록을 보면 본적이나 주소가 경기 지역인 경우는 단 2건이었다. 경기 성혜원 수용자 박모씨는 “형제복지원에서 폭행을 많이 당해 몸이 시퍼렇게 된 사람들이 성혜원에 와서 한 달 있다가 대구 희망원으로 가고, 희망원에서 있다가 폭행을 심하게 당하면 인천 ○○원에 보내는 식으로 ‘뺑뺑이’를 돌렸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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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충남 천성원 산하 양지원에서 작성된 보호자신병각서.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가혹 행위가 만연한 시설에서 죽음은 예삿일이었다. 1980년 시립갱생원의 수용자 1086명 중 262명, 1985년 시립희망원에선 1320명 중 135명이 숨졌다. 죽음조차 이용당한 이들도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성지원에서 1982년부터 10년간 시설 사망자 시신 117구를 해부 실습용으로 한 의과대학에 넘긴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천성원과 시립희망원의 경우 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를 출생 직후 입양 알선기관에 넘기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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